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배반 The Sellout』
폴 비티 장편소설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배반』.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을 풍자로 담아냈다는 책 소개글을 보고 책 내용이 참으로 궁금했다.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은 끊임없이 있어져왔고 한국 사회도 점점 다인종 사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국내외에서 계속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 더 관심이 갔다. 평등하다 하지만 아직도 만연해있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잊을만하면 터지는 인종차별로 인한 폭동 등을 바라보면서 과연 미국 작가가 바라보는 미국 사회, 그리고 흑인 작가가 바라보는 미국 내 흑인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심사위원단의 만장일치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배반 The Sellout』(2015)은 그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로스앤젤레스 교외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현대 미국에 노예 제도와 인종분리 정책이 복구되는 이야기로,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미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미국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것은 맨부커상 역사상 48년 만에 처음이다."

자신이 탈고한 모든 작품을 사랑하겠지만, 특히나 이 작품은 저자에게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평등에 대한 현주소를 따끔하게 지적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다른 저서들보다 더 뜻깊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평등이 무엇이고 인종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의 시간을 갖길 바랐을 것 같다.

 

 

 

책은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해 주인공(Me)이 어떻게 대법원까지 오게 되었는지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풍자를 통해 미국 사회에서 행해지는 인종차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책을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가 흑인에 대한 선입견으로 시작한다.

"흑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물건을 훔쳐본 적이 없다. 세금이나 카드 대금을 내지 않은 적도 없다. 극장에 표 없이 숨어 들어간 적도, 상업주의와 최저 임금제에 무심한 편의점 직원이 거스름돈을 더 주었을 때 그냥 받아 간 적도 없다. 빈집을 턴 적도 없다. 주류 가게에서 강도질을 한 적도 없다. (하략)"

"흑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렵다"라는 말과 함께 이어지는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것들이 실은 흑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임을 알 수 있다. 흑인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부도덕한 행동을 한다는 오판.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에 와있는 주인공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사건 번호 09-2606 미(Me) 대 미합중국"은 주인공이 사는 도시 디킨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사라진 도시를 찾기 위해 주인공이 "인종 분리 정책"과 "노예 제도"를 부활시킨 것이 문제가 된 내용이다. 사실 주인공은 노예 제도를 부활시킨 적이 없다. 자의적으로 호미니가 노예가 되겠다고 하며 주인공을 주인님이라 불렀고 강제노동도 없었으며 책의 마지막 부분(재판 이후)에서 호미니는 노예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노예제도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어찌 되었거나 이 이야기의 핵심인 인종 분리 정책은 호미니의 생일날 주인공의 연인인 유부녀 마페사의 버스에 쓴 "백인 우대석"이라는 문구에서 착안된 것으로 사라진 도시 디킨스를 되찾는데 사용된 정책이다. 

"그 표지판 때문이야. 사람들이 처음에는 불평을 하지만, 인종 차별을 보고 깨닫지. 그걸 보면 겸손해져.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깨닫게 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깨닫고. 그 버스를 타면 인종 분리의 망령이 디킨스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 같다니까"

그 후 친구 카스리마의 요청으로 학교와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방안으로도 이 정책을 사용하게 된다. 아이들의 생활태도가 바뀌고 학업성취율이 오르는 것을 보며 주인공과 호미니는 도서관 이용 시간을 백인과 유색인종 이용 시간으로 바꾸거나 영화관 층수 안내를 인종별로 바꾸는 등 끊임없이 인종 분리 정책을 펴나간다. "유색인종 전용"이라는 팻말을 붙인 가게의 손님이 오히려 특별한 손님 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하고, 병원에서는 자신의 의사를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등 인종 분리 정책이 오히려 디킨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바꾸기 시작한다.

"나는 버스를 보았다. 버스를 다른 눈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미션 오일을 땅에 뚝뚝 떨어뜨리는 사소한 권리를 상징하는 40피트짜리 고철 덩어리 이상의 어떤 것으로. (중략) <미국 흑인의 권리란, 신께서 주신 것도 헌법이 보장하는 것도 아닌 무형의 것임을 주장했던 바로 그 버스입니다>라고 말하는 광경을 떠올려 보았다."



"(상략) 로스앤젤레스에는 분명히 인종 차별의 파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깊은 우수와 인종적 좌절을 겪는 곳. 로드니 킹의 삶,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미국과 미국이 자랑하던 페어플레이 정신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풋힐 고속 도로의 갓길 같은 곳. 트럭 운전사 레지널드 데니를 콘크리트 벽돌과 술병으로 구타하며 수백 년 묵은 불만을 터뜨렸던 플로렌스와 노먼디의 교차로 같은 곳. 멕시코계 미국인들이 수십 년 동안 모여 살았는데 주차장과 핫도그 판매대를 갖춘 야구장을 짓는다며 얻어맞고 보상도 없이 쫓겨난 차베스 러빈 같은 곳. 메사와 센터 사이 7번가는 1942년 일본계 미국인들이 대규모 수용소를 향해 첫걸음을 뗄 때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던 파동 지점이다. (하략)"

책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지만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미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가 계속 이어지는데 미국의 역사와 미국 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각주가 달려 있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한 저자는 미국 사회의 숨겨진 본모습을 까발리기도 하고, 실명을 거론하기도 하며, 그간 흑인들이 수백년간 수차례 들어왔던 인종 차별적 발언들을 서슴없이 담아내고 있다. 

"(상략) 그리고 이 나라, 자기 정체성을 모르는 고등학생 동성애자 같은 이 나라, 백인 노릇을 하는 물라토 같은 이 나라, 끊임없이 미간의 일자 눈썹을 정리하는 네안데르탈인 같은 이 나라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나라는 공을 던져 맞힐, 호모라고 괴롭히고, 니거라고 짓밟고, 침략하고,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릴 상대가 필요하다. 야구처럼, 한 나라가 거울 앞에서 몸치장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실제로 거울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시체가 어디 묻혀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략)"

"백인들, <빈 방 없어요>라든가 <방금 마지막 자리가 나갔어요>라든가 <농구공 리바운드해> 이외에는 흑인에게 아무 할 말이 없었던 백인들이, 마침내 우리에게 할 말을 찾았다."

"나는 흑인 여자들을 항상 피부색으로 묘사하는 게 지겨워요! 꿀색이 어떻고! 다크 초콜릿색이 어떻고! 내 친할머니는 모카색이 감도는 카페오레, 망할 그레이엄 크래커 갈색이었다고 하다니! 대체 백인 여자들을 음식이나 뜨거운 액체의 색으로 묘사하지 않는 이유는 뭐죠? 어째서 이 인종 차별적이고 결말도 없는 책에 요구르트색, 달걀 껍질색, 스트링 치즈 피부, 저지방 우윳빛 백인 주인공은 안 나오는 거죠? 그래서 흑인 문학이 후지다는 거예요!"



"(상략) 나는 농부이고, 농부들은 타고난 분리주의자다. 우리는 밀과 겨를 분리한다. 나는 루돌프 헤스도, P.W.보타도, 캐피틀 레코드도, 현재의 미합중국도 아니다. 그 자식들은 권력을 쥐기 위해 분리를 원한다. 나는 농부다. 우리는 모든 나무, 모든 식물, 모든 가난한 멕시코인, 모든 가난한 흑인에게 햇볕과 물을 동등하게 얻을 기회를 주기 위해 분리한다. 우리는 모든 생물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준다."

사실 주인공이 분리 정책을 펴낸 것은 과거 인종 분리 정책과는 다른 이유에서 였다고 저자는 밝힌다. 과거 인종 분리 정책은 권력을 쥐고 유지하기 위해 인종 간 차별을 둔 것이라면 주인공의 인종 분리 정책은 불평등한 사회에서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분리한다는 것이다. 즉, 함께 있을 때는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으니 분리해서 균등한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데, 역차별을 통해 그들의 삶의 질이 더 좋아졌다는 책의 내용을 통해 현재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와 인종 간 발생하는 불평등함을 알리고, 유색인종으로 하여금 그들이 보이지 않는 차별(혹은 보이는 차별)을 얼마나 많이 받고 있는지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평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두 판사의 판결문에서도 나오는데,

"(상략) 비록 인종 분리니 노예 제도니 하는 것이 헌법에 맞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피고의 지역 사회를 규정하게 되었고, 그 인종 분리와 노예제를 재도입해서 지역 사회를 재건하려는 시도에 있어서, 피고는 우리가 미국인으로서 평등을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하략)"

"(상략)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분리하되 평등하다>는 정책이 윤리적인 근거에서뿐만 아니라 대법원이 분리가 평등할 수 없음을 발견했기 때문에 철폐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재판은, 분리가 정말로 평등한지를 자문할 것이 아니라, <분리되고 별로 평등하지 않지만, 전보다 형편은 훨씬 나아졌다>면 뭐가 문제인가라는 데 대해 자문해 봐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미 대 미합중국의 재판은 우리가 <분리>와 <평등>이란 말, <흑인>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에서 쓰는지 근본적으로 점검해 볼 것을 요구합니다. (하략)"


위 두 평결문을 통해 저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 즉 인종 분리 정책은 끝이 났지만 비가시적인 인종 분리와 인종 차별이 끊임없이 있어왔고 결국 그것은 모든 인종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며 이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말하고 있다.

 

 

 

 

"(상략) 역사의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이 적힌 종이가 아니다. 역사는 기억이며, 기억은 시간과 감정이자 노래다. 역사는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흑인이 신대륙에 팔려가 강제 노역을 하고 노예 해방이 된 후에도 백인들에 의해 온갖 차별을 받아 지금에까지 오게 된 그 모든 뼈아픈 역사는 아직도 그들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미국 내 흑인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지를 속 시원하게 꼬집어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하고는 초반부를 읽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이렇게 대놓고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할 수가 있을까. 이런 초특급 풍자는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았거니와 미국 사회와 특히 흑인 사회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으니 읽는 것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장의 심오함을 느낄 수 있었고 "대박"을 연발하며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이 책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저자가 의미하는 바를 전적으로 다 소화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주인공의 이름이 Me인 것은 주인공을 통해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밝히기도 하지만, 또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을 Me에 대입하여 이 부조리한 상황을, 불평등한 현실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길 원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인종차별은 특정 집단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 미국까지 가볼 것도 없이 한국 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도 만연해 있는 인종차별, 피부색에 따라 친절도가 달라지고 언행이 달라지는 것 또한 인종차별인 것이다. 내가 가해자일 때는 모르지만 피해자가 되면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를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할 뿐이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니까.


"(상략)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자동차 광고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것은 유대인, 동성애자, 도시적인 흑인이 아니라, 꽉 막힌 도로다."

책은 어려운 이야기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릎을 탁! 치며 "맞네 맞아"를 외칠만한 평소에는 생각지 못한 경쾌한 문장들도 나오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책을 접해보길 권한다. 번역된 책을 보면서도 어려움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원서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봤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자의 표현방식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껴보고 싶기도 해서이다. 정말 재미있게 그리고 아쉬움이 많이 남게 읽은 책이라 조만간 다시 읽으며 내용을 곱씹어 봐야겠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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