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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장편소설 · 임미경 옮김
지난 2013년 읽었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쓴 조엘 디케르의 신작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전작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터라 그의 차기작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그의 새 작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볼티모어의 서』는 양장본으로 제작된 두툼한 두께의 책 한 권이었다. 책을 받아본 첫 느낌은 왠지 모르게 책을 받자마자 나를 압도하며 어서 읽어보라고 유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께가 생각보다 두꺼워서 처음엔 '언제 다 읽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한 번 잡으면 손에서 놓기가 힘들 정도로 내용에 대한 몰입이 높아 금방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조엘 디케르와 마커스 골드먼!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첫 장을 펼쳤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커스 골드먼이 이 책에서도 역시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전작에서는 마커스와 절친인 해리의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마커스의 가족, 특히 볼티모어 골드먼(큰아버지네 가족)이 내용의 중심이다.
처음 큰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고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그 일"을 설명하기까지 오랜 시간을 뜸 들이며 어쩌다가 "그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마커스의 유년기 시절부터 조금씩 기억의 파편을 모아 독자에게 전달한다. 역시나 전작처럼 마커스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처음 "그 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좋지 않은 뭔가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것을 봐서 가장 비극적인 결말인 죽음을 떠올렸다.
사실 이번 작품은 그의 글에 매료된 내가 그의 글쓰기 방식을 파악해서 인지는 몰라도 내용 전반에 걸쳐 다음 이야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는 것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었다. 전작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작가의 구성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반전이라 불릴만한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고 전체적인 내용이 내 사고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에서 머문 것 같아 아쉬웠다. 예를 들면 처음에 누군가가 마커스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고 '파파라치 아니면 케빈이겠네' 싶었고 대략 어느 정도 그 내용이 들어맞았다. 그다음에도 우디나 루크와의 문제도 추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나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덮으며 "역시! 조엘 디케르!!"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내용은 마치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듯 큰 반전없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독자에게 크고 작은 문제들을 끊임없이 던지고 "그 일"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여 독자로 하여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힐렐, 우디, 큰아버지 부부, 스콧, 알렉산드라, 네빌 부부, 콜린과 루크 등등... 독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등장과 그들의 관계를 파악하여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저자와 함께 파헤치고 계속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풀면서 가장 큰 문제인 "그 일"에 다가갈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과 장치들이 책의 전반에 걸쳐 무수하게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게임을 하면서 1단계를 통과하니 2단계에 들어서고, 2단계를 통과하면 3단계에 들어서는 것과 같아서 책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상략) 우리가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바랄 이유는 없어.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달라. 행복이란 있는 그래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
"(상략) 사실 그 일은 깊은 오해 때문에 빚어졌어. 나는 그 당시 오해를 풀기에는 너무 고집이 셌고, 자존심이 강했지. 그런 점에서 네이튼과 나는 공통점이 있어. 냉정을 잃고 흥분해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외통수로 몰리고 나서야 크게 후회한다는 점에서 말이야."
마지막 무릎을 탁! 치며 "아!"를 외칠만한 부분은 없었지만, 책을 덮으면서 전작에서는 얻지 못한 교훈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질투심에 눈이 먼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얼마나 사람들이 사랑과 관심을 받길 원하는지 그리고 질투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질투심은 근본적으로 다른 대상을 두고 서로를 비교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므로 차이, 차별, 비교가 서로에게 얼마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순식간에 질투심에 사로잡혀 열등감을 느끼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 해서는 안되는 바보 같은 짓들을 하고 곧 후회하곤 한다. 결국 크고 작은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거나 누군가로부터 받아왔던 사랑과 관심이 사라졌다고 느꼈을 때 일어났던 것이었고, 질투심에 눈이 먼 자들의 행동을 보며 자신의 감정 하나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게다가 질투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되어 결국 죽음으로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며 비극은 결국 비극을 낳는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도, 내 가족에게도 누군가와의 비교 그리고 질투는 마음에 상처만을 남기는 행동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디의 등장이 볼티모어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마커스는 책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강조한다. 우디, 힐렐과 함께한 골드먼 갱단의 결속력과 그들의 우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돌아보면 우디가 볼티모어 골드먼 앞에 나타났을 때, 그리고 네빌 가족이 골드먼 가족 앞에 나타났을 때(특히 알렉산드라가 골드먼 갱단 앞에 나타났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 집단 내에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균열이 결국은 전체를 파괴했다는 것을 보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작은 행동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슬픔을 사울은 세 번이나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책의 끝부분에 임종을 앞둔 사울을 통해 작가는 엄청난 슬픔과 불행을 경험한 이들에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그 일이라고 하지 마라. 아니타도 그렇게 되었고,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정말 많았잖니? 앞으로도 그 일들이 계속 있을 테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만 해. 불행은 피할 새도 없이 밀어닥치지. 사실 그 일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정작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일들을 이겨내야 한다는 거야. (하략)"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결국 다른 사람을 만나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서로 성장하게 된다. 언제나 좋은 영향만을 미칠 수는 없을 테니, 서로 상처받거나 힘든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잘 대처하는지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하루를 통틀어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든 이후인데 요즘 낮잠도 안 자고 밤에도 늦게 자서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가 참 힘들었다. 워낙 책 읽는 속도도 느려 책을 읽다보며 어느새 새벽 3-4시가 되어 있었고 그 시간에도 잠자리에 들기보단 책을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잠시라도 눈을 좀 붙이자며 책을 덮는 순간에도 눈은 그다음 쪽을 향했다. 책을 덮으면 그다음엔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책 내용이 떠나질 않았다.
비록 전작에 비해 큰 반전은 느낄 수는 없었지만, 내용도 재미있고 구성도 탄탄한 소설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전작에서는 얻지 못했던 교훈까지 얻었으니, 오히려 전작보다 더 깊이 있는 내용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볼티모어 골드먼이라는 작은 사회를 통해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희로애락을 볼 수 있었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계속되는 반전으로 혼을 쏙 빼간 전작을 통해 "내가 바로 조엘 디케르다!"하며 등장했다면, 이번 신작은 깊이 있는 내용을 더해 "역시 조엘 디케르!"라고 모두에게 콕 못을 박은 듯하다.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대된다. 다음번엔 좀 더 빠르게 그의 새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