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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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여름엔 스릴러라며 다들 무서운 영화를 보러가지만, 난 무서운 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
영상이 기억 속에 콕 박혀서 떠나질 않아.. ㅠㅠ 그런데 신기하게 추리소설은 참 좋아한다. 스릴 넘치고 박진감 넘치는 내용에 푹 빠져 휘리릭 책을 읽다보면 왠지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며칠전 남은 뒷이야기를 두고 자러가기엔 너무나도 찝찝해 밤을 꼴딱 새버린 책이 한 권 나타났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by 박연선 

 

 

책표지만 보면 서있는 저 두명이 4명의 사람들을 매장한 것 같은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내가 읽었던 여타 다른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이 나오지 않는다. 어려운 전문용어나 특수약품 등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거나 범죄자를 잡지 않는다는 점이 지금까지 읽었던 추리소설과 다른 점이었다. 작고 조용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할머니를 보살피라고 남겨진 삼수생 백수 강무순이 무료함을 달래고자 시작한 소일거리가 점점 일이 커져 결국 욕쟁이 할머니 홍간난 여사와 모든 이들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미소년 꽃돌이까지 합세하게 되는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 과정이 참 웃기다가도 놀랍고 유쾌하다가도 명쾌했다. 

…그만 가자고 홍간난 여사를 부르려는데 홍간난 여사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상허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싶어 홍간난 여사의 시선을 따라가 봤더니 유미숙 엄마 아빠다. 일하던 차림 그대로인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옷차림이 깔끔하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혀."

"미숙이 엄마가 혀를 차더라고. 부영이네를 보믄서 쯧쯧쯧…… 남들이랑 똑같이 말이여."


박연선 작가가 오랜시간동안 시나리오 작가를 해온 것이 소설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화화나 드라마화될 부분까지 신경써서 글을 쓴 것일까. 왠지 이 책을 읽으며 '이거 영화나 드라마가 되면 누가 이 역을 맡으면 좋을까(강무순은 왠지 심은경이 하면 잘 할 것 같아.. 홍간난 여사는 김영옥 할머니!!!!!!!!!!!!!!!!)'를 생각하며 계속 책을 읽게 됬다. 그만큼 작가가 각 인물의 특성을 잘 묘사하고 있었고 각 인물들이 개성넘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부흥슈퍼 글래머 노파, 성냥개비 우편배달부, 바보 용 일영이 등 각 인물마다 강무순이 붙여놓은 매력터지는 별명 또한 재미지다.

… 게다가 그 숨막히는 타이트함이라니. 한 치수 작게 입는 게 유행이라지만, 맹세코 그건 한 치수 작게 입은 게 아니었다. 서너 치수 작았다. 쳐다보는 내가 갑갑할 정도로 겁나게 타이트했다. 게다가 남자의 허리춤에 매달린 그것,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색동 복주머니를 보는 순간 나는 예감했다. 이 남자! 평범하지 않다. 


홍간난 여사와 강무순의 대화를 읽고 있으면 귓가에서 둘의 대화가 들리는 듯 했다. 특히 홍간난 여사의 말투가 시할머님 말투같아서 수시로 시할머님 목소리가 음성지원이 됬다. 참 구수하고 찰진 말투에 추리소설에서 볼 수 없는 간간히 나오는 감동의 문구들까지.. 박연선 작가는 어쩜 이리 말을 잘 할까. 작가의 재능이 참 부러웠다.

… 불행은 그렇게 일상을 무너뜨린다. 아니다. 일상이 무너지는 게 불행일지도.

노인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무표정일 때도 슬퍼 보인다. 어쩔 땐 웃어도 슬퍼 보인다. 홍간난 여사에게도 희노애락이 있을 것이다. 속상하고 울고 싶고 누군가 보고 싶어서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을 때가 당연히 있을 것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는 날 때부터 할머니인 것만 같았다. 이 늙은 사람도 한 때는 누군가의 아기였고, 어린 동생이었고, 사랑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다임개술에 들어있는 보물지도와 남겨진 물건들을 가지고 하나 둘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어설픈 세 탐정, 강무순, 홍간난 여사 그리고 꽃돌이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며 사건을 하나씩 풀어나가는데, 결국 마지막 사건의 비밀 일부분은 강무순과 독자만 아는 것으로 끝이 난다. 

깔끔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의 어떤 일이 칼로 자른 무처럼 깨끗한 시작과 결말을 갖는 걸 본 적이 없다. 낮과 밤은 분명 구분할 수 있지만, 낮이 밤이 되는 순간을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고. 

 

 

 

밤바람이 불어왔다.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넘지만, 밤바람은 조금 시원해진 느낌이다. 낮이 밤으로 변하는 것처럼 여름이 가을로 변하는 것도 특정할 수 없다. 슬금슬금 그렇게 되다가 어느 날 '아, 여름이 지나갔구나' 깨닫게 된다.

처서가 지나고 제법 쌀쌀해진 요즘, 좀 더 이른 시기에 무더위가 꺽이기 전 이 책을 읽었는데, 강무순도 나와 같은 여름을 보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올해는 특히나 제법 무더운 여름이었다. 강무순이 시골에 가서 할머니와 무더운 여름을 보냈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생긴 것처럼,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즐거운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심장이 요동치며 손에 땀을 쥐게하는 스릴이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약간의 충격은 있었으나) 뒷목 잡을만한 충격과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평범한 우리들이 보물지도를 펴고 무순이와 함께 길을 나서며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다 맞닥들일 수도 있을만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코지 미스터리이다. 다임개술이 내가 생각한 바로 그것이었을 때 사실 좀 아쉽기도 했지만..
사실 4명의 소녀가 한꺼번에 사라졌다는 책 소개글을 본 순간부터 난 자꾸 개구리 소년이 생각이 났다. 
개구리 소년 사건은 미제로 남지 않고 해결되길..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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