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수잰 레드펀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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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감히 이야기하면 소설 『한순간에』올해 최고의 책. 어떻게 말해야 당신이 이 책을 읽게 만들 수 있을까. 어쨌거나 2020년을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마주하면서 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책이었다. 이젠 나의 인생 키워드가 된 '죽음'을 비롯해, 이해—예를 들면,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 혹은 기억 등 평소 생각해온 것들과 여러 가지 접점이 닿아있는 책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간다.


책은 우리가 한순간에 아무렇지 않게 이 평온한 일상을 잃고, 누군가는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서면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사고 이전엔 몰랐던 스스로의 민낯은 얼마나 끔찍한지, 그리고 매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열 명의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열 명의 인물, 그들 중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해냈고, 누군가는 해내지 못했으며, 또 누군가는 해선 안 되는 일을 해버렸으며, 다른 누군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런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나였다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지만 가끔 우리는, 빌어먹을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있어요.」


약 500여 페이지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그 끝까지 탄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의 인물 구성때문이다. 앤과 캐런의 20년 우정으로 연결된 핀의 가족과 캐런 이모네, 핀의 가장 절친한 친구 모, 정신 지체가 있는 핀의 동생 오즈, 그리고 도중에 차를 얻어 탄 완벽하게 낯선 사람 카일과 사고를 겪지 않은 핀의 언니, 오브리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서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이야기가 다 끝났을 때, 작가는 바로 떠나지 않고 뜻밖의 고백과 함께 깊은 물음들을 던진다.


우리는 낯선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의무감을 가질까요?


작가의 '감사의 말'에는 뜻밖의 고백이 담겨있다. 그 뒤에는 여러 질문거리를 제공하는 공간, '이야기가 끝나고—토론'이 덧붙어져 있었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17가지의 질문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옮긴이의 말'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마치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것처럼, 작가와 옮긴 이가 함께 발 벗고 나서서 독자가 소설과 현실을 연결 지을 수 있도록 돕는 것 같았다. 사실 '이야기가 끝나고—토론'에 마련되어 있는 질문들은 이미 소설 중간중간 언급된 내용이었기도 하고 완독 후 충분히 고찰해볼 법한 내용들이기도 해서 그런 부분은 독자에게 그냥 자유롭게 맡겨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이야기에 책임을 지는 것일 수 있고, 소설이 끝난 후에도 독자들의 삶에 파고들어 앞으로의 삶과 선택, 도덕성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계기를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들이 아직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독자에게 조금 더 친절한 도움이 된다. 번역도 굉장히 매끄러워서 굳이 반복해 읽으면서 문자 배열을 스스로 재구성하지 않아도 작가의 글이 있는 그대로 충분히 전달되었던 것도 이 책의 장점. 작가와 더불어 옮긴 이의 수고에도 박수를 쳐주고 싶은 책.



열린책들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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