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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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으로 어쩌지 못할 일 앞에 놓인 두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무기력하게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현 상황을 인정하고 손을 뻗는 인경과 그 손을 마다하지 않고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는 희진의 이야기. 도움을 구하는 것도, 도움을 주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의 차가운 공기를 조금 덥힐 수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의 목차는 사계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미 여름의 성질을 띠기 시작한 봄부터 더운 여름을 지나 추운 겨울까지 정말 일 년의 흐름이 흐르듯, 이야기는 천천하고 잔잔하다.




사소하든 사소하지 않든, 근거가 있든 없든, 타인을 비방할 목적 같은 것이 있든 없든, 소문이라는 것은 당사자를 괴롭게 할 수 있다. 희진은 자신에 대한 소문에 동조하지 않고, 편견 없이 자신을 대한 인경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인경과 희진은, '인경의 비밀'을 계기로 더욱 친밀해진다. 완벽한 타인, 그것도 직장 내 동료가 이렇게까지 끈끈한 연대를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사실 인경과 희진도, 그전에는 회사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인경이 처한 상황을 돕는 이는 희진이 유일해서, 잠깐 인경의 가족에 대한 배경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작가는 가족도 오랜 친구도 아닌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인경과 희진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인간애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가족이나 친구를 향한 애정과 염려 말고, 완벽한 타인을 향한 인간애. 책 마지막에 남겨진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나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소설을 완성했는지 더욱 잘 알 것 같다.


지구가 한 번 공전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도 무사히 살아남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죽지 않은 채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을 수 있는 두 여성의 이야기, 그 과정을 전하고 싶었다.


희진이 인경에게 도움을 '주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어,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인경이 희진에게 도움을 '구하는' 일이었다. 울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손을 뻗는 인경의 모습. '인경의 상황'이 아무리 극단의 무기력한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완벽한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진이 해야 할 수고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할 수도 있고 혹시 거절하기 어려울 상대의 곤혹을 생각하면 도와달라고, 나 좀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렵지 않을까. 특별히, 곧바로 보답할 수 없을 때는 더더욱. 희진에 대한 인경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 신뢰, 온정, 인간애와 같은 단어를 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서평에서 밝히지 않은) 소설의 설정이 워낙 강렬해서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끝맺을지 궁금했다. 책의 마지막 언저리를 읽을 때까지도 그렇다 할 사건 사고가 없어서 이야기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짓궂게도, 인경의 비밀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켰다면 어땠을까, 무성한 소문이 일고,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고 그로 인해 인경이 겪을 피해와 도움을 더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인경과 희진, 두 사람이 '지키려 애쓴' 것이 정말로 잘 지켜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어떤 다른 잔잔한 울림을 준다. 그래서 이듬해 봄, 그들이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하게 된다. 타인의 도움을 받는 일, 아무 대가 없이 타인을 돕는 일. 두 가지 모두가 낯설기만 한 어른에게, 지금의 겨울을 보내는 우리에게, 잔잔하게 퍼지는 온기를 주는 소설. 두 인물의 '봄'을 기대하게 만드는 소설.


제가 갈 수 있는 길이면 희진 씨도 올 수 있어요. 봐요. 이렇게. 조금씩 밟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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