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맨
믹 잭슨 지음, 강미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7월
품절


내 감정은 나에게도 종종 수수께끼다. 거의 매일매일 감정을 견뎌내기를, 감정에 씻겨 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피부와 뼈의 족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다른 영혼들과 어울리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2/19 일기쪽

이제 머리가 몹시 욱신거리면서 톱이 한쪽으로 밀려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계속해서 톱을 조심스럽게 비틀어 돌렸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흔들면서 머리에서 톱을 뽑아냈다. 톱 끄트머리에 피투성이 뼛조각이 둥그렇게 걸려 있었다. 마침내 뚫렸다! 나를 꽉 막고 있던 마개가 뽑혀나간 것이다! 나 자신과 바깥세상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의자에 앉았다. 약간 어지러웠지만 시야는 놀랍도록 맑았다. 머리에서는 씨근대는 것 같기도 하고 빨아들이는 것 같기도 한 소리들이 새어나왔다. 조그만 공기주머니가 내 두개골 밑에서 기어다니는 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에는 핏빛 거품이 머리에 뚫린 구멍 위로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펑 터지면서 사라지는 모습도 보였다.
전체적인 느낌은 파도가 쏴하니 밀려드는 것과 비슷하다고밖에 달리 표현을 못하겠다. 마음이 평온해지자 나는 머뭇거리며 손가락 하나를 구멍 속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잉크병처럼 아주 깊고 축축했다. 손가락은 축축하고 뜨듯한 뭔가에 닿을 때까지 계속 내려갔다. 뭐였을까, 나의 조그만 계략상자? 아니면 그 끔찍한 과일? -2/25 일기쪽

문아래 틈새로 복도를 향해 쪽지를 밀어내고 삼십 분쯤 지나니 클레멘트가 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마음의 눈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서서히 이맛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공작님, 어디 편찮으세요?"라고 연필로 휘갈겨 쓴 종이 한 장이 문 밑으로 나타났다.
"아닐세." 나는 문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또 다른 쪽지.
"그럼 왜 숨어 지내십니까?"
이 마지막 질문에는 속 시원히 대답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무거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몇 분을 기다린 후 그는 나를 혼자 내버려두었다.-3/2 일기쪽

눈을 떠보니 새벽이었다. 곧바로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밝아도 새로울 게 없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12/1 일기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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