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 - 베스트 레시피북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제작팀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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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남편이 요리 재료를 사달라고 했다. 어떤 날은 닭고기를 사달라고 했고, 어떤 날은 쌀국수 면을 사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름도 몰랐던 향신료들을 사오기 시작했다. 중국 음식에 자주 들어가는 굴소스, 우스터소스, 두반장 등등. 심지어 촤아악 소리와 기름을 함께 튀기며 고추기름도 만들었다. 서양 요리의 기본이라는 텃밭의 허브 대신 조그만 허브 병들이 찬장에 늘어섰다.

 

하나, 둘씩 모인 각종 소스와 향신료들

가운데 바질페스와 할라피뇨는 홍석천 씨의 렛잇컵을 만들 때 자주 사용했다.

 

그렇게 하나둘 모은 재료로 퇴근하고 온 후에 요리를 만들곤 했다. 심지어 데커레이션까지 고려했다. 심지어 접시의 색과 생김을 한 번 더 고민하고, 가니시까지 섬세하게 배치한 한 그릇의 요리 말이다. 이 변화는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남편은 예전부터 요리프로를 좋아해서 즐겨보곤 했지만, 늘 보기만 했지 요리를 직접 만들진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달라진 이유를 찾기 위해 TV를 같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해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1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었다. 프로 셰프의 15분과 일반인의 15분은 다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한 시간 안에 얼추 한 그릇의 요리가 끝나는 시간이다. ‘, 이 요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제가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하는 바꿔치기가 없는 15분의 마술. 큰 부담 없이 도전할 만하다.

 

두 번째는 재료!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남편이 묻는 질문이 있다. “우리 집에 시금치 있어? 파는? 양파는?” 대부분은 이미 냉장고에 있는 재료고 몇 가지만 더 갖추면 금방 요리에 도전할 만 했다. “시금치 다 썼는데. 내일 사올게.” 프로그램이 끝나고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야 말로 실제 요리를 도전하는 데 좋은 조건이었다.

 

세 번째는 남자 셰프들이다. 남자 셰프들이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TV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남편의 시선이 바뀌기 시작했다. 요리를 바라보는 눈이 마치 공구를 바라보는 눈처럼 바뀐 것이다. 이전엔 여성 요리전문가들이 정성을 들인 가정음식을 선보였다면, 남성미와 기발함을 결합한 이 프로그램은 남편의 눈앞에 교체해야 할 형광등이 있는 느낌이었다. 마누라도 갈 수 있지만, 왠지 남자가 갈아야만 할 것 같은 이 느낌.

 

다만, 아쉬운 점은 계량이었다. 재료를 얼마나 넣어야 할지에 대한 설명이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아 항상 며칠이 지난 후 요리 블로그를 검색해가며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블로거의 입맛 취향에 따라 다른 맛이 나서, 우리는 요리할 때마다 다른 맛을 보기도 했다. 유일한 아쉬움이었던 이 점은 책을 보니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15분 안에 급하게 요리를 하다 보니, 요리를 한 당사자도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 그런 이유가 있었더랬다.

 

이 책에선 그런 아쉬움을 마지막 페이지에 덧붙인다. 요리 연구가가 직접 요리를 해서 얼마 정도가 어울리는 계량인지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달지 않은 평균적인 입맛에 맞춰 계량된 것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아무 가이드라인도 없이 오로지 입맛으로 한 술, 두 술 넣었다 빼는 것보다 얼마나 안정적인가! 이것 하나만 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보장될 것이다.

 

책에는 이제껏 나온 요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베스트 레시피북이란 소제목 답게 그 중에 몇몇 요리를 골라 소개한다. 우승한 요리의 레시피만 있는 것은 아니고, 각 셰프의 베스트 레시피가 셰프 별로 소개되어 있다. 각 요리에 대한 쿠킹 팁과 비하인드 스토리도 쏠쏠한 재미다. “그 때 이랬다면”, “이런 걸 추가해도 맛있어요하는 멘트들은 레시피에 또 다른 재미를 더한다. 단순히 요리책이 아니라 한 권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재미가 있다.

 

남편이 요리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많은 고마움이 있는 프로그램인데, 그것 말고도 더 좋은 점이 있다. 요리를 나 혼자 할 때에는 요리재료를 사는데 망설임이 있었다. 특이한 향신료를 사려니 얼마나 쓸까 싶어 꺼려졌던 것이다. 그런데 둘이서 요리하고, 같이 식단을 고민하니 더 많은 요리재료를 지를 수 있었다. 재료비는 좀 나갔지만, 그만큼 외식이 줄어 장기적으론 긍정적인 투자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아직 냉장고를 부탁해 효과를 보지 못한 전국의 수많은 주부님 혹은 아직도 부엌을 두려워하는 아버님이나 아들이 있는 집에 추천하고 싶다. 물론, 바쁜 일상에 간단히 활력을 더할 수 있는 요리가 필요한 곳에도 권하는 책이다. 요리가 번거로운 일이 아닌 재미가 되는 신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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