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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어게인 - 포르투갈을 걷다,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박재희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7월
평점 :
언젠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고 내 삶에 그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한 번은 경험해야 할 일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많이 알려진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루트가 아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하는 루트를 선택했다. 프랑스 루트는 예전에 한 번 경험했다고 했다. 8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온전히 두 다리로만 경험한다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일은 ‘도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도전’보다는 ‘경험’을 했다.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이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보들보들한 마음을 찾게 된다. 비를 맞는 친구 곁에서 함께 비를 맞는 마음, 우산을 들어주는 대신 기꺼이 빗속으로 들어가 함께 비를 맞아주는 마음 말이다. 그날 일기 끝에 나는 신영복 선생님 말씀을 적어두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 78
작가는 순례하며 일기를 썼다. 책에 드문드문 일기를 기록했다는 말이 있다. 작가가 이 일기를 기록한 날짜는 없지만 마침 내가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옆에도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담론]이 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이야기는 한참 동안 곱씹고 다시 곱씹어야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기에 작가가 일기에 썼다는 이 문구가 [담론]에 언급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여행은 우연의 연속이기에 나 역시 [산티아고 어게인]을 읽을 때 [담론]을 읽고 있었다는 것도 우연인 것이다. 결국 나는 작가와 함께 책을 읽으며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세계 일주를 경험했을 때에, 그리고 세계여행을 할 때 나 자신에게 들었던 생각 역시 작가와 비슷했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한국에 도착하면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있을 거야. 엄청나게 성장해 있겠지.”
하지만 생각과는 달랐다.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스스로 수차례 질문을 해 봐도 그것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계여행을 출발하기 전의 나와 마친 후의 나는 분명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다만 무엇인지 구체적이지 않을 뿐이다.
작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 책의 제일 마지막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이제 어디를 걷더라도, 걷지 않더라도 순례란 그냥 사는 것임을 안다. 하루하루 자신의 몫을 살아내는 것, 순간순간 나에게 주어진 몫의 기쁨을 누리는 것, 그런 사소하고 때로는 지치는 일상이 순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내 생활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900km, 다시 800km가 넘는 길을 걸었지만 그것으로 도를 깨우친 것도 아니며, 게으르고 때로 성마른 나를 벗어나는 마법을 얻은 것도 아니다. 절절한 깨달음의 순간이 문득 떠오르지만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걸으며 눈물로 맹세한 결심조차 잊고 지키지 못하는 것도 많다. 몇 백 킬로미터, 설사 몇 천 킬로미터의 길을 순례자로 걷는다 해도 그것이 다른 사람이 되는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니라도 내가 길을 걷기 전의 나와 똑같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 263
이 책을 읽기 전에 PCT(Pacific Crest Trail, 미국 시에라에서 캘리포니아 북부 캐나다 국경까지의 경로)를 완주한 한 여행가의 에세이를 읽었다. 당연히 물리적 거리는 PCT가 훨씬 더 길지만 느끼고 경험한 것은 비슷했다. 걸으면서 생각하고 느끼고 사람을 만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경험”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된다.
나 역시 경험을 아주 소중히 생각하기에 나의 세계여행 경험 역시 글로 옮겨두고 있다.
작가의 이야기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속에 행복이 있다. 나도 나의 행복을 다시 느끼기 위해 나의 경험을 돌이켜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