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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월
구판절판


「그렇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끝까지 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어?」-25쪽

「태양은 말이지,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더 이상 눈이 부시지도 않고, 뭐 아무렇지도 않게 되더라.」-46쪽

자기가 먹고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도 싫었고, 다른 사람이 뭔가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거 같다고나 할까. 다시 말해서, 자기가 뭔가 먹고 있는데 그 모습을 누가 빤히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사람 앞에 발가벗고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꾸로 누군가가 먹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벗은 몸뚱이를 보고 있는 거 같은, 그 사람의 별 가치도 없는 흐느낌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56쪽

좀더 간단히 말하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점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누군가를 싫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59쪽

이렇게 아직도 사진을 올려두고 있는 것도 죽은 애인을 향한 마음이 한결같아서가 아니라, 분명 언젠가는 잊어버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치우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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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그 무언가를 절대 잊고 싶지 않았다.-151쪽

「아니, 그러니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인간이란 건 말이다, 잊으면 안 되는 걸, 이런식으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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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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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ㅡ그것뿐이었다. -48쪽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때까지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삶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죽음은 언젠가는 확실히 우리들을 그 손아귀에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죽음이 우리들을 사로잡는 그날까지 우리들은 죽음에 붙잡히는 일이 없는 것이다'하고. 그것은 나에겐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명제로 생각되었다. 삶은 이쪽에 있으며, 죽음은 저쪽에 있다. 나는 이쪽에 있고, 저쪽에는 없다. -49쪽

「나도 그렇게 생각해. 죽은 사람은 그대로 죽어 있는 채고 변하지 않지만 우린 앞으로 더 살아야 하니까.」-181쪽

「가끔은 저렇게 되거든. 흥분하고, 울고. 그래도 차라리 그런 상태는 좋은 거야. 감정을 드러내 보이니까. 무서운 건 노출이 안 될 때거든. 그렇게 되면 감정이 몸 속에 쌓이고 점점 굳어 가는 거야. 온갖 감정이 뭉쳐 몸 속에서 죽어 가는 거지. 그 지경이 되면 큰일이야.」-186쪽

「제일 중요한 점은 서둘지 않는 거야.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충고라면 충고라고 할 수 있어. 서둘지 말아야 해.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이 얽히고 설켜 있어도, 절망적인 기분에 빠지거나 조바심이 나서 무리하게 잡아당기거나 하면 안 돼.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서서히 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어?」-187쪽

「친척 분들이 문병을 오면 여기서 함께 식사를 해. 그러면 모두들 자기처럼 절반쯤은 남겨. 그래서 내가 모두 먹어 버리면 '미도리는 건강해서 좋아. 난 가슴이 답답해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는데 말야' 하고 말해. 하지만 간호를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라구. 다 웃기는 소리지. 다른 사람은 이따금 찾아와 동정만 하다 갈 뿐, 대소변을 받아 내고, 가래를 받고, 몸을 닦아 주는 건 나란 말야. 동정만으로 대소변을 받는 일이 해결된다면, 난 남들의 50배 정도는 동정할 거야. 그런데 내가 밥을 다 먹으면 모두들 나를 비난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미도리는 건강해서 좋다'는 거야. 모두들 내가, 무슨 수레라도 끌고 있는 당나귀 정도로 여겨지나 봐. 나이도 지긋하게 든 사람들이 왜 모두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을까? 입으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 중요한 건 대소변을 받아 내느냐의 여부라구.」-290쪽

「그때 난 생각했어. 이들은 모두 엉터리 같은 가짜들이라고 말이지. 적당히 그럴듯한 말을 지껄여대면서 우쭐해져 가지고, 새로 입학한 여학생을 감탄시키고는 스커트 속에 손을 집어넣는 일밖에는 생각하고 있지않다구, 그자들은. 그리고 4학년이 되면 머리를 짧게 깎고 미쓰비시 상사나 TBS, IBM, 후지 은행 같은 대기업에 재빨리 취직해서, 마르크스 따위는 읽어 본 적도 없는 귀여운 신부를 맞아들이고, 어린애를 낳으면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주는 거지. 산학 협동체 분쇄는 무슨 놈의 산학 협동체 분쇄야.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다른 신입생들도 웃겨. 모두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는 체하며 우쭐거리는 거야. 그러고는 나중에 내게 이렇게 말하지. '넌 바보구나, 알지 못하더라도 네, 네, 그렇군요, 하고 말하면 되잖아' 하고. 저, 속이 더 울컥울컥 치밀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 얘기도 마저 들어주겠어?」-297쪽

나는 거의 고개를 처박다시피 숙이고 그날그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눈에 비쳐지는 것은 무한히 계속되는 진창뿐이었다. 오른발을 앞에 내딛고, 그리고 또 왼발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조차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가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361쪽

「전에도 와타나베에게 말했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제일이야. 희망을 잃지 말고 엉킨 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는 거지.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실마리는 어딘가에 있게 마련이니까. 주위가 어두우면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듯이 말이야.」-392쪽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만 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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