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과 싸우다 - 1994년 제4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42
송재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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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이를 재우며 흐린 베란다의 불빛에 기대 이 시집을 읽었다. 흐리고 검은 빛과 희고 깊은 활자들이 몸을 바꾸어 천천히 책과 내 몸 사이의 공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송재학의 시를 처음 접할 때, 나는 그의 언어들의 현란한 침묵과 육중한 비약들에 마음을 앗겼다. 그리고는 그 격렬한 은유의 차가움에 놀라고 있었다. 그의 모든 시는 풍경을 읽으려 하고 그 풍경들은 그의 내면을 흐르는 액체들과 같이 섞이며 파동하려 한다.무거운 침묵과 강렬한 비약, 그리고 그 차가운 은유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리고 그 언어들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모든 소리를 공간으로 번역하려 한다. 철아쟁과 피리와 가얏고와 해금과 할머니의 노랫소리들은 모두 시간 바깥에 있다. 그것은 균질적인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려 한다.그런 착란의 순간들을 시로 표현해 보려는 난삽한 시도가 요즘 어렵지 않게 보이고 있지 만, 송재학의 경우는 그런 존재론적 균열에 대한 자각과 현상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들을 공간 속에 재배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는 소리를 육체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소리는 청각이 아니라 촉각이다. 그리고 소리와 육체의 파동 속에 마음의 파동을 다시 시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 이음과 매듭...그는 이 난폭한 이원론을 섬세함이라는 무모하고 강렬한 언어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의 다음 시집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가 지금 내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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