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
한형조 지음 / 여시아문 / 1999년 3월
평점 :
품절


근대의 시작은 어디일까. 동아시아적 사유와 탈근대적 담론체계의 교직이 유행처럼 번져가던 잡다하고 지리멸렬한 담론의 홍수를 지나쳐갈 무렵,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 책은 내게 질척하고도 두터운 물음의 기둥 두어 채를 선사하고 있었다.

無門, 문이 없다. 드나드는 문이 없으니 벽도 있을 수 없다. 문은 체계와 구성이요 구조이며 로고스다. 그러나 끝내 문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문도 없다.

이 책이 줄기차게 던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농담과 같은 것, 그러나 장 대 끝에서 한 발 내딛으면 천길 낭떠러지이다. 진리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에 속한다. '허허 그녀석 참..' '싱겁긴..'이 말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우리는 위태로움을 즐기는 도중에 그 위태로움을 내 뼈 속에 심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태로울 리 없고 위태롭지 않을 리 없다.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그것이 아니지만 그것이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무문선사는 '단지 그것은 헛소리'라고 말할 뿐이다. 나역시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지만 그 헛소리가 헛소리인지 헛소리 아닌지는 우물가에 물뜨러 나온 자가 건드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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