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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마음 - 아름다움에 대한 스물여섯 편의 에세이
이남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이남호 선생님의 에세이집 『일요일의 마음』을 읽고 있으면, 어떤 글은 나에게 편안한 위안의 공간이 되어주고, 또 어떤 글은 공감의 자장을 이루며 나를 끌어당기고, 그리고 또 어떤 글은 나로 하여금 그 앞에 엎드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을 때 내가 가장 황홀해지는 순간은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 위안으로 편안할 때도 아니고, 조금은 오래 지속될 공감 속에서 머리를 끄덕일 때도 아니다. 그 순간은 사실 그 책이 드러내는 아름다움 앞에 경이의 마음으로 엎드릴 때인데, 이유는 그 아름다움이 위안과 경이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는 복음(福音)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요일의 마음』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들이야말로 신(神)의 후광이고, 신의 손길이며, 신의 향기가 아닐까? 그리고 일요일의 마음은 곧 신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남호 선생님은 아름다움이라는 성소(聖所)의 사제(司祭)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美)의 사제(미의 사절이 아님)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미의 성소에서 사제가 이끄는 대로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경배하며 예배하는 마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그 사제가 미셸 슈나이더의 독특한 전기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음미하며 고독과 은둔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꼭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 제25번을 들으면서 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를 읽어보기를” 설교할 때, 우리는 군말 없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경건한 예배에 참석 중이다. 나는 노트북에 연결된 이어폰으로 55년에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25번을 감상하며 엘리엇의 시를 읽었고, 뿐만 아니라 슈나이더의 전기 또한 그 노트북 왼쪽에 펼쳐놓았다. 사실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담은 수입 CD는 일찌감치 알라딘으로 주문해 구입한 것이고, 슈나이더의 책은 일전에 번역하는 선배가 선물처럼 보내준 것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내 노트북 오른쪽에서 황금빛 아름다움 가운데서 붉은 신비를 발산하고 있는 미의 성서(聖書)『일요일의 마음』을 한 권 사서 그 선배에게 부친다면 충분한 보답이 되리라는 생각. 그렇다면 나는 미의 사제를 따르는 미의 신자(信者)이면서 동시에 미의 전도자(前導者)가 되는 셈인가? 웅크린 채 너무 엎드려 있었더니 온 몸이 저리고 쑤신다. 그러나 굴드의 피아노 선율로 가득한 나의 머리는 더없이 맑고, 일요일의 마음으로 고독한 나의 내면은 한없이 행복하다. 그러다가 문득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이 든다. 사제가 된 선생님은 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섭섭함을 금할 길이 없다. 갑자기 그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