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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냄새가 밴 사람들 - 제주의 동네 의사가 들려주는 아픔 너머의 이야기
전영웅 지음 / 흠영 / 2023년 6월
평점 :
전영웅 지음 <바람의 냄새가 밴 사람들>
1, 아직도 여전한 폭력
책의 첫 번째의 글, <2023년 맞고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뱀을 볼 때처럼 징그러웠다. 누가 때리고 누가 맞는 일, 그것도 힘이 센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에 속절없이 당하는 여자의 이야기에는 문장의 행간에 푸른 멍이 가득했다. 아내를 때려놓고 치료하러 데리고 와서는 일하다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 남자의 모습은 무언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글 속의 여자는 내 어머니 같았고, 의젓한 남편을 연기하는 남자는 어머니를 때리던 아버지로 보였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모여 살던 내 고향마을에서 툭하면 싸움하는 부모들의 자식으로 살았던 우리들은 장차 힘이 센 것들을 두려워하고 부당함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터였다. 동네 이 집 저 집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오히려 볼거리를 찾던 시골 동네에 구경거리를 제공하려고 찾아오는 유랑단의 공연처럼 자극적인 것이었고 또 금방 그러려니 해졌다. 누구네 집 아버지가 술을 먹고 고함을 치고 있으면 그 집의 어머니와 아이들이 여러 집으로 도망쳐 숨었다. 그들을 숨겨 주면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기쁨 같은 것도 있었다. 집안의 어른이 화를 내고 행패를 부리는 일은 곧 우리집에서도 일어날 공포였지만 남의 집에서 싸움이 나는 날에 우리집에서 비슷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걸 체험으로 알았다. 마치 폭탄이 떨어진 후 같은 자리에 폭탄이 터지지 않는다는 걸 믿는 병사처럼, 도망 온 이웃의 아이와 어머니를 숨기며 나는 우리집이 그날만은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우리 아버지는 화를 잘 냈고, 아버지의 화를 잘 넘기지 못한 어머니는 자주 맞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어쩐 일인지 밭에 안 나가든지 밥을 안 한다든지 집을 나가면서라도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렇게 때릴 일인가 싶은 일에 맞았으면서도 어머니는 날이 밝으면 밭으로 갔고, 어쩌면 밭에서 김을 매면서 속상한 눈물을 흙에 묻었을 것이었다. 동네의 다른 어머니들처럼 내 어머니도 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때린 사람이 나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대든 게 잘못되었다거나, 가장의 생각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자기 무식이 잘못 되었다거나, 남자의 기분을 잘못 맞추는 애교 없는 자기 성격을 탓할 뿐이었다. 내가 자란 동네는 70년대의 가난한 마을이었고 그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살림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형들이 어린 아우들을 때리고, 오빠들은 누이에게 함부로 대하는 집도 드믈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며 자라던 어린 나와 친구들은 누가 누구를 때리는 일에 무감각해져 버리다가 아버지의 폭력을 자기 탓으로 돌리던 어머니들처럼, 폭력의 부당함에 적절히 대항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커갔다.
전영웅 의사가 본 40대의 남자도 어린 시절, 내가 겪은 동네에서 여자보다 남자가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일까. 하지만 지금은 내 어린 시절로부터 한 세대가 지나 있다. 어렸던 그가 성인으로 자라는 몇 십 년 동안 한국 사회는 학교 교육과 사회교육으로 한국인의 평균 교육수준을 높여왔다. 미디어에서는 폭력 남편을 비롯하여 사람에 대한 폭력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늘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버젓이 아내를 때리고 감금하고, 그 사실을 숨기며 의젓한 남편의 모습을 연기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인권 감수성은 학교와 사회의 교육으로 키워낼 수 없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시점에서 의사 전영웅의 질문은 매우 유효했다.
“ 아니, 피해자가 찍어 둬야지 가해자가 찍어 두면 뭐 합니까! 내가 때렸다고 자랑하려고요? 이거 가정폭력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까? 범죄라고요! 아내분, 경찰에 신고는 했어요?”(16쪽)
그리고 그는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려준다.
이런 일이 너무 많아 가정 폭력 사건에 심드렁한 경찰이 있는가 하면 이 일에 분노하는 의사도 있다. 책에서는 그 후의 이야기를 통해 매 맞는 여성이었던 그 환자가 삶의 태도를 바꾸게 되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폭력에 분노한 의사 덕분에 한 여자가 자기 삶을 돌보는 데 눈을 뜨고 폭력의 부당함을 고발할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의사가 환자만 본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고치지 못하고 있는 환부를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 의사란 무엇인가
의사는 도우려는 사람이다. 환자의 아픔을 덜어 주고, 위태한 생명을 살리고 싶어한다. 의사의 이런 마음은 그러나 자주 벽에 부딪힌다. 세월호에서 살아났지만 살아내는 일이 더 힘들어진 사람을 만났을 때, 바다에서 일하며 몸을 돌볼 여력이 없는 사람을 만날 때 이 사회가 그들에게 가하는 무성의를 보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지원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는 그들은 마치 구조되지 못하는 난파선처럼 사회라는 망망대해에서 아득해진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간혹 그들로부터 거친 말을 들으면 의사의 마음에도 생채기가 나고 그때 의사는 그들로부터 한기 가득한 바람을 느낀다. 그러나 곧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제대로 된 치료와 처방이 불가능한 그들의 상황에 마음을 포개기로 한다.
저자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였지만 이 책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나는 그가 환자에게 갖는 책임감이 매우 크다는 걸 느꼈다. 50대 신부전환자(83쪽)를 만났을 때는 외과의사로서의 본능이 살아났다고 고백한다. 환자의 환부를 보면서 어떻게 수술하고 치료해야 하는지 보이지만, 그가 있는 곳이 동네의원이라는 제약을 넘어설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거슬리기도(90쪽)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계의 문제와 국가 시스템에 대한 그의 비판은 독자들에게 한국 의료계의 속사정을 알게 해주었다. 의사의 전문적인 시각으로 우리 나라의 의료체계의 문제도 보게 해준다. 우리나라 국가의료 시스템에 대한 그의 비판은 도움을 주어야 할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에 더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더 크게 생각한다. 의사의 판단이 환자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도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대학병원과 동네 병원을 번갈아 다니던 환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의사에 대한 신뢰와 의사의 책임에 관한 내용이다. 환자는 대학병원에서의 치료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었지만 동네의원에 다니며 조금씩 안도감을 갖기 시작하였고 병세에도 차도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의사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진단을 할 수는 없었지만, 든든한 응원자 노릇을 해 주었다. 돕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보였다
3.의사의 자리
의사가 돕고 싶었던 것은 아픈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제주는 남쪽의 아름다운 섬이었지만 그가 이 섬에 발을 디딘 이후 발견되는 역사의 어둠을 외면할 수 없었고, 이 섬을 파괴하는 세력에 대해 항의하고 항거하려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가 제주에 와서 얼마 없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자주 그 현장을 찾아 널따란 구럼비 바위와 마을을 지키려던 활동가들을 보았고 마음 속에 그 강정 바다의 바람을 기억했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섰고 그의 근무지가 바뀌어 그의 병원과 강정 마을이 가까워졌다. 이제 그의 병원에는 마을을 지키던 사람과 해군기지에 근무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다. 그는 활동가와 마을 주민들이 갖는 몸의 아픔이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해군기지의 군인에게 그곳에 기지가 있는 게 정당한가 물어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료실에 온 강정 마을 사람들에게 기지가 되어 버린 마을의 이야기를 물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의사인 자기가 있을 자리는 중립적인 공간, 진료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에서 툭툭 튀어오르려는 감정을 통제해야 했다. 진료실 안에서 중심을 잡고 본인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통제가 편안하지는 않다. 왜 이 사람은 편안하게 의사일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
4. 의사의 상처
코로나 19 시기에 그는 불안하고 외로웠다. 이 시기 모두가 불안했고 외로웠을 테지만 그는 의사이면서 국가 방역에 일조할 방법이 없어서 불안하고 외로웠다. 그가 보기에 동네병원 의사는 자영업자로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 같았고, 국가기관인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 평가원의 수가 통제를 받게 되면서 동네병원은 자본주의 경쟁에 내몰린 것 같았다. 팬더믹 상황에 우리나라의 국가 방역체제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을 때 그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온전하지 않음도 발견하였다. 여러 사정으로 코로나 시대에 방역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는 의사로서의 정체성마저 마모되는 경험을 한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사망선고를 하며 죽음을 결론 내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여러 곳에는 그가 만난 죽음이 있다. 죽음 앞에서 그는 자꾸만 자책 가득한 질문을 한다.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제대로 도왔을까. 의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주 보았을 죽음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망한 환자의 사정을 알수록 그 사정이 나와 무관하지 않을수록 나는 우울에 시달리며 환자가 숨쉬던 시간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하게 되었다( 125쪽).”는 그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마지막 가뿐 숨을 몰아쉬던 환자가 자신을 치료한 의료진들을 불러 ‘감사했습니다’ 라고 분명하고 짤막하게 인사한 뒤 몇 분 후 숨을 거둘 때에는 피곤에 절어 있던 나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철렁이다 떨어졌다.”( 126쪽)는 그의 고백을 읽을 때, 나는 그가 “기도 삽관을 한 채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틈만 나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나는 깊은 어둠을 헤맸다“( 143쪽)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살려내지 못한 생명 앞에서 그는 극복되기 쉽지 않은 상처를 운명처럼 껴안는다.
5.꿈을 꾸는 것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자책”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였다. 의사로서 제대로 못하고 있다거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이어지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의사의 역할이 온전한 도움이 되는 세상이 되기를 꿈꾼다. 소득의 재분배가 잘 되는 세상, 그래서 사회적 소외자가 없도록 사회의 구조와 제도가 튼튼하게 뒷받침 되는 세상을 바란다.
그가 만나는 여러 환자 뒤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부조리한 구조가 있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이유를 사회의 구조로 파악하지 않고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본다. 그는 팬더믹 시대가 발생시킨 환경오염 문제를 거론하면서 편리를 추구하는 우리들의 책임을 묻는다. 또한 거리두기가 만든 계급 차별을 예로 들어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지지 않은 이 사회에서 개인들의 자존감이 상실되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 19로 배달수요가 커졌다. 이에 따라 배달앱이 늘고,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늘고, 음식을 재빨리 배달해야 하는 퀵서비스 기사가 늘었다. 그 기사들은 더 빨리 배달을 해 주는 다른 배달업체와 경쟁하면서 오토바이를 더 빨리 몰아야 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달린다. 빠름이 경쟁이 되다 보니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교통사고로 환자가 되었지만 퀵서비스 기사들은 개인업자라로 분류되었고 사고가 났을 때도 개인이 병원비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어떤 편리 뒤에 성과와 경쟁의 구도에 위험해지는 생명이 있는 것이다.
“사회제도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향해 있어야 한다.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하고, 최소한 국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사회적 자존감을 잃지 않게 해야 한다.”( 174-175쪽)
나는 이 책의 출판 이유를 이 문장에서 본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구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아는지, 어떻게 읽고 공부하는지를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아픈 사람을 도우려는 그의 마음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게 할 것이고, 환자의 아픔을 환부 너머의 사회에서 찾는 그의 작업은 이 책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