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따위 멸망해도 ㅣ 사계절 1318 문고 155
남유하 지음 / 사계절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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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남루틴입니다.

평범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과연 내 진짜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돌이켜보면 우리는 늘 정해진 틀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책은 바로 그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과 세상의 질서에 아주 발칙하고도 깊은 균열을 내는 소설입니다.

남유하 작가님의 소설집 《세상 따위 멸망해도》를 펼쳐들게 된 이유도

어쩌면 지금 내 일상을 지탱하는 무게로부터 잠시 벗어나 날것 그대로의 질문을 마주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멈춰버린다면


이 책을 집어 들기 전에는 솔직히 SF나 디스토피아 장르 특유의 무겁고 거대한 재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며 마주한 내용은 예상보다 훨씬 더 밀도 높고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단편들이었습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낸 이 소설집은 제목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합니다.


"세상 따위 멸망해도"라는 다소 과격하면서도 묘하게 속이 시원해지는 이 문장은

매일 반복되는 팍팍한 현실에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속 은근한 바람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책 속에는 에그, 빛나지 않아, 숨은 머리 찾기, 우투리 토우, 살아남은 아이들, 비오는 날 등

저마다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표제작인 단편을 읽어나갈 때, 세상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부 사라지고 단 두 사람만 남게 된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 인공 자궁과 유전자 선별 출산이라는 차가운 시스템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마주하는 균열은 단순히 상상 속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군 생활과 영업 현장에서 느꼈던 통제와 질서의 이면


생각해보면 군에서 복무하던 시절, 부대는 완벽한 질서와 통제로 움직여야만 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모든 규정과 매뉴얼, 그리고 상하 관계 속에서 개인의 감정이나 일탈은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죠.

전역 후 영업 현장에 뛰어들어 매일 목표 달성을 위해 치열하게 움직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회사의 시스템과 시장의 논리 속에서 우리는 늘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요받으며 살아갑니다.


'에그 컴퍼니'의 슬로건인 "에그 컴퍼니는 완벽한 코끼리를 만듭니다"

(원래 슬로건은 "Egg Company makes Perfect Human")라는 대목을 읽을 때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자연주의자들이 인공 자궁의 도입과 유전자 선별 출산에 반대하며 국가 예산까지 투입되는 에그 사업에 의문을 품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기술과 효율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인간성을 통제하려 드는지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자연의 것들은 무질서하지만 아름답다는 문장 앞에서

매일 루틴을 지키며 완벽함을 추구해 온 제 삶의 방식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과 문장



"소설처럼, 영화처럼, 사랑이 모든 걸 구원할까? 모르겠다.

세상이 돌아올지 우리가 돌아갈지 여전히 우리 둘만 낯선 세상에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감각뿐. 달콤하다.

조금 전 딸기 우유를 마시긴 했지만, 꼭 딸기 우유 때문만은 아닌 듯한 달콤함이다." (57페이지)


주인공 재이와 나(미로)가 세상이 멸망한(혹은 사람들이다 사라진) 듯한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나누는 이 장면은

이 책이 단순히 차가운 디스토피아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주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되든, 시스템이 우리를 어떻게 규정하려 들든

결국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완벽한 코끼리가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진실된 교감과 살아있다는 감각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과 연결 짓기: 성장을 기록하는 라이프로그


저는 늘 '남들보다 더 완벽하게, 정해진 트랙 위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주식 투자나 재테크를 공부할 때도 언제나 데이터와 효율, 그리고 확실한 지표만을 쫓았죠.

하지만 책 속 인물들이 세상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문득 멈춰 서서 "왜 지금까지 알려 주지 않았어요?"라고 묻거나

탈출 계획을 세우면서도 정작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은 채 바다를 꿈꾸는 모습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완벽한 루틴과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내가 진짜 보고 싶어 했던 바다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블로그에 이렇게 글을 남기는 행위 역시

매일 반복되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진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나만의 비오는 날 같은 쉼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약간의 아쉬운 점


단편소설집의 특성상 각 세계관이 펼쳐지다가 짧게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어서

개별 이야기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기 전에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SF나 디스토피아적 설정 자체에 깊게 몰입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설정의 설명이 조금 불친절하거나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군더더기 없이 핵심적인 질문만 던지고 독자 스스로 상상할 여백을 남겨준다는 점에서 이 책만의 명확한 미덕이기도 합니다.


추천 대상


뻔한 자기계발서나 일상 에세이에 지쳐,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을 읽고 싶은 독자들

차가운 시스템과 현실 속에서 인간성과 진짜 소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직장인들

비 오는 날 저녁,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깊은 여운을 느끼고 싶은 모든 이들


남유하 작가의 《세상 따위 멸망해도》는 세상이 끝난 자리에서도 결국 사람이 남고

사랑과 기억이 남는다는 사실을 담백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우리를 옥죄는 거대한 세상의 질서와 멸망 속에서도

결국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바다와

내 옆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 밤, 모든 통제와 루틴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속 깊은 곳의 진짜 소망을 마주하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기를 권합니다.


별점

★★★★☆ (4.5 / 5.0)


한줄평

"세상이 멈춘 자리에서도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고 바라보는 푸른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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