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도피자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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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녕하세요. 남루틴입니다.

얼마 전 퇴근길에 문득 머리를 식힐 겸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바로 리러하 작가의 장편소설 《처마 밑 도피자들》이었습니다.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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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도피자들'이라는 제목부터가 무언가 사연을 품고 몸을 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해보면 다들 겉으로는 바쁘고 당당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내고 있지만

저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충이나 상처를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저 역시 7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나와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부담감이나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도피자들'이라는 단어가 왠지 남 일 같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차사와 사라진 영혼이라는 기발한 설정 속에서

현실의 고단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투영되어 있을지 궁금해져서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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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소개를 보았을 때는 전형적인 K-판타지나 힐링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승사자가 등장하고 영혼을 데려가는 이야기라고 하니, 따뜻하고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정도를 예상했죠.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따뜻함만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와 인간 심리의 어두운 단면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미스터리한 사건과 함께 밀도 있게 다루는 미스터리판타지 장편소설입니다.

'차사'라는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만

그들이 겪는 고민과 영혼들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의 '처마 밑'에 숨어드는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이었습니다.

과연 이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판타지 서사가 나에게 어떤 던짐을 줄지 기대하며 밤늦도록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책 소개 및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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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 밑 도피자들》은 팩토리나인 출판사에서 출간된 리러하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로 큰 사랑을 받았던 저자의 신작으로

출간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리고 정해진 수명을 채우지 못했거나 사연이 있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는 사라진영혼들과 이들을 거두어야 하는 차사들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작가는 도피자들이 숨어드는 공간인 '처마 밑'을 단지 물리적인 장소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사회의 시선이나 법의 테두리

혹은 가혹한 현실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밀려난 이들이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임시 거처와 같은 의미로 그려냅니다.

사라진영혼을 쫓는 차사와 그 뒤에 숨은 인간사회의 여러 갈등들이 얽히면서 독특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줄거리 (스포일러를 최소화한 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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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승에서 자취를 감춘 영혼들을 추적하는 차사들의 임무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정해진 때가 되면 영혼을 인계받아 저승으로 안내해야 하는 것이 차사의 소명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승의 특정 공간이나 타인의 영향 아래 숨어들어 차사의 눈을 피하는 영혼들이 발생합니다.

주인공과 차사들은 이 사라진영혼들의 궤적을 쫓으며 그들이 왜 저승으로 갈 수 없었는지

왜 그곳에 머물며 도피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하나씩 파헤쳐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학폭, 사회적 고립, 가족 간의 갈등

타인의 시선과 억압 등 오늘날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아픈 사건들이 얽혀 있음이 드러납니다.

영혼을 찾기 위한 차사들의 미스터리한 추적극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처받은 이들이 어떻게 서로를 엮고 있으며

또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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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몇몇 대목이 있었습니다.

특히 작중 인물들이 법적, 사회적 피해와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나

귀신과 영혼이 가슴속 억울함을 뱉어내는 대목들입니다.

그중에서도 169페이지 근처에서 다루어진 'ㅅ대학교 공대 따돌림 자살 사건' 관련 에피소드가 크게 와닿았습니다.



"요약하면, 'ㅅ대학교' 공대에서 한 학생이 몇몇 동기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끝에 자살했다.

유가족은 직접적 피해를 증명할 방법이 없자 공론화라는 방법을 택했다...

피해자 자리를 법적으로 독점하시게 된 따돌림 주동자의 사진은 어쩌다 내 손에 들어왔고, 조각으로 탄생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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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참 씁쓸했습니다.

법적 피해자와 실제 피해자의 갭, 증명할 수 없어서 억울함을 안고 사라진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분노와 상처.

현실에서도 우리가 뉴스나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비극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어서 단순한 판타지로만 읽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이의 영혼을 대하는 왜곡된 대화나

사건의 뒷수습을 하며 '차사들은 이런 마이너한 장소에는 잘 들르지 않을 거라 말해줄 때 혼자 미안해 보였다'는 식의

무덤덤하면서도 씁쓸한 묘사들이 오래 잔상에 남았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이 모여드는 그 그늘진 장소들이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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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한참 동안 시선이 멈춘 문장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로 내 죄를 사하였다.

그리고 난 엄마에게 있어, 내가 가정 내 전과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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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때로는 가장 가까운 관계가 서로에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용서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주춤거림과 죄의식을 심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서늘하고도 정곡을 찌르게 표현했더군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상대방에게 거역할 수 없는 틀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남루틴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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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차사와 사라진영혼이 등장하는 미스터리판타지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본질은 '도피'와 '인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도피하고 싶어 할까요?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거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나 오해

억울함이 나를 짓눌릴 때 사람은 누구나 어디론가 숨고 싶어 집니다.

소설 속 영혼들이 '처마 밑'이라는 그늘을 찾아 들어간 것도 결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 것입니다.


군 생활을 할 때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젊은 친구들과 생활하다 보면

겉으로는 문제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이나 상처를 꽉 다물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마음의 도피처를 찾지 못해 극단적인 방황을 하는 경우도 보았고요.

그때마다 제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은 거창한 해결책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고 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처마 밑 도피자들》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많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영혼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차사를 피해 영원히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과 아픔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내 삶과 연결 : 내 삶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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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면서 가끔 성과가 마음처럼 나오지 않거나 일정이 꼬일 때면

제 안에서도 현실을 피하고 싶거나 마음을 닫아걸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도피자들의 모습을 보며

문제나 상처를 그저 덮어두고 피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처마 밑은 잠시 비를 피하는 곳이지, 평생 살아갈 집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퇴근 후 만나는 가족, 매일 접하는 회사 동료나 직장 관계자분들. 그들이 때로 예민해 보이거나 무기력해 보일 때

단순히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하고 넘기기보다는

'저 사람도 지금 자신만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누군가의 지친 표정 뒤에 숨겨진 사연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함부로 잣대를 대거나 상처를 주는 말은 삼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 내 삶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배우게 된 계기였습니다.

아쉬운 점과 추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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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판타지적 설정과 미스터리 추적 서사가 결합되어 있다 보니

초반부에 등장인물들의 서사나 차사 세계관의 규칙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습니다.

빠른 전개와 즉각적인 쾌감을 원하는 독자라면 초반부의 호흡이 약간 느리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가면서 인물들의 감정선이 하나로 모아질 때 주는 몰입감과 여운은 상당합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잔잔한 힐링물보다는 서사가 있고 몰입감 높은 장편소설을 찾으시는 분

미스터리와 현대 판타지가 적절히 섞인 색다른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

현실의 삶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단함에 깊은 공감과 위로를 얻고 싶으신 분

퇴근 후 밤 시간에 진득하게 집중해서 읽을 책을 찾고 계신 직장인분들


《처마 밑 도피자들》은 현실의 차가운 비바람을 피해 잠시 몸을 숨긴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책입니다.

차사와 사라진영혼이라는 초현실적인 소재를 빌려왔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지극히 맞닿아 있습니다.

누구나 삶에서 잠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도피의 순간을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여다보고 결국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담담하게 어깨를 두드려주는 느낌을 줍니다.

오늘 하루도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버텨내신 모든 분들께

퇴근길 조용한 마음으로 일독을 권해봅니다.


한줄평

차가운 현실의 비바람을 피해 도망친 이들에게, 다시 걸어나갈 용기를 주는 미스터리 판타지.


별점

★★★★☆ (4.5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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