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 이라는 책은
박주영 판사, 고명재 시인, 조해진 소설가, 김혼비 에세이스트가 추천하고 있어 책제목과 함께 눈길이 갔다.
저자 채도운은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 있었나 봐요
라는 책을 썼고 경남 진주에서 동네서점을 운영중이다.
저자는 8평의 작은 공간에서 매달 20~25개의 독서 모임이 열리고, 참여하는 회원만 2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딘. 동네의 문화 사랑방으로 활용되는 저자의 서점은 참 행복하고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저자 채도운은 우리 삶의 여러 단면을 왕성하게 채집하며 시원시원하고 가감 없는 글들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 책에는 「강낭콩」과 「식물뿌리」라는 두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이 소설들에서 채도운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붕괴와 재생의 과정을 아름다우면서도 가차 없이”(김혼비) 보여 주며 인간의 조건과 돌봄을 둘러싼 질문을 거듭 던진다. 손쉬운 답을 내리지 않기에 더욱더 끈질기고 믿음직한 작가의 태도가 엿보인다.
과연 강낭콩이 12주 이하 태아의 모습과 비슷할까? 낙태 과정은 실제로 어떨까? 이런 궁금증도 개인적으로 생겼다.
「강낭콩」과 「식물뿌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우리 삶에 뿌리내린 ‘식물성’을 나타낸다.
강낭콩을 낳은 사람(「강낭콩」)과 식물인간 아버지를 부양하는 사람의 이야기(「식물뿌리」)를 두고 고명재 시인은 “안간힘을 다해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조용한 허파를 보여 주는 듯하다”고 썼다. “수동적이면서 적극적인 생명체”(조해진)로서 “뿌리내리고 얽히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박주영) 우리의 모습이 소설 곳곳에서 식물의 잎맥처럼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끔 이런곳에서 잡초가 자란다고? 식물을 뽑으면 뿌리 깊게 내려져있는 것을 보고 참 생명은 끈질기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런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 꼭 읽어 두어야 할 이야기
「강낭콩」과 「식물뿌리」가 던지는 질문들
「강낭콩」에는 여러 화자가 등장한다. 강낭콩을 낳은 나, 이십 대 중반에 한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퇴직하게 되는 나, 딸을 바라보는 엄마,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 이들을 둘러싼 강낭콩이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곱씹게 될 것이다. 강낭콩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을텐데 당분간은 이 책의 스토리가 기억날 것 같다.
「식물뿌리」의 등장인물들은 한 사람과의 추억을 소진해 버린 채 돌봄의 의무만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들은 웃으면서도 “어색하고 무거운 입꼬리”를 가누기가 힘들다. 고명재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다음으로 어떻게 넘어가야 할까?”
이 소설들은 아주 사적이고 고유한 이야기들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호흡하는 사회의 공기를 투명하게 보여 주며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며 우리 안과 바깥을 둘러보면 어떨까?
“두 편의 소설에는 식물처럼 ‘희박한 인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희박한 인간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살아서 숨 쉬는 ‘자명한 인간’이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는다. ‘과거’ 속에 ‘모두 휘발돼 버린 줄 알았’던 사람에게서 무언가가 ‘잔존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그 모든 고통의 터널을 지나 ‘냉이를 씹으면서 웃’게 되는 순간이 온다(「식물뿌리」). 편향되어 있고 어딘가 이상한 사회 속에서 ‘솔아’는 자신의 그 흔한 이름이 ‘아름다운 명령(?)’으로 거듭나는 걸 보기도 한다(「강낭콩」). 그렇게 사람들은 살아 낸다. ‘내가 낳은 강낭콩을 조심스럽게 담’으려 하며 어떻게든 삶을 지속해 낸다.”
이 책은
서로에게 수분과 자양분이 되어야 살 수 있는 식물처럼
저자의 실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본인만의 수분과 자양분은 무엇인지, 당신만의 강낭콩 이야기를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