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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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이 일 년 만에 나오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

                                                       -도나 타트


며칠 전에 출판사 신간 소개글을 읽다가(최고의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에 대한 작품이었다) 한 문구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책 한 권이 일 년 만에 나오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다'는 도나 타트의 말이었는데, 이 문구를 발견했을 때 한창 《황금방울새》를 읽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이 더욱 생생하게 와 닿았다. 하지만 나는, 작품이 쓰인 기간과 관계없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 작품은 이미 충분히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이기에 그녀의 생각에 반하는 독자일지도 모르겠다.


《황금방울새》는 저자의 10년이 담긴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문장 하나하나가 상당히 묵직했다. 나는 평소에 속도감 있게 읽히는 작품을 즐겨 찾는 편인데, 그녀의 작품은 달리고 싶어 하는 내 눈길을 연신 붙들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내 저자 특유의 묘사법과 전개법에 익숙해져서 문장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웃음).

 

 

책에 따르면 이웃 사람들은 폐허가 된 작업실에서 '무척 슬퍼하면서', 그리고 '무척 힘들게' 화가 파브리티우스의 시신을 끌어냈다. 도서관 책에 나온 이 짧은 설명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우연이라는 요소였다. 나와 파브리티우스에게 무작위로 닥친 재난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보지 못했던 똑같은 지점에서, 즉 우연이라는 점에서 만났다. 아빠는 그것을 빅뱅이라고 불렀는데, 비꼬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힘을 존중하며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 p415(1권)

 

《황금방울새》는 한 소년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와 함께 들른 미술관에서 폭발 사고를 겪은 소년이 그곳에서 악의 없이('어쩌다보니'에 더 가깝지만) 그림을 가지고 나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년이 가지고 나온 것은 <황금방울새>로, 카렐 파브리티우스가 그린 실존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카렐 파브리티우스가 화약 폭발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어쩌면 그의 죽음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렐 파브리티우스 <황금방울새>


 

《황금방울새》에 등장하는 폭발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우선 그 폭발로 인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오와 그림 <황금방울새>는 그들이 자리할 곳을 잃는다. 이는 우리 인생과도 닮았다. 폭발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인생에서 어떤 큰일을 겪고 난 후, 자신이 자리할 곳을 찾지 못해 주위를 맴돈 적이 적어도 한 번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뜻밖의 사고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묘하게 일그러뜨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 맞춰서 적응해 나가야 한다. 이때 새로운 시공에서 제자리를 금방 찾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제자리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오와 <황금방울새> 또한 어딘가 크게 벗어난 존재에 가까웠다.

 

나는 이 작품에서 저자의 '서술법'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 작품은 천 페이지에 육박하는데, 그 절반 이상을 수사가 차지한다. 저자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만큼 묘사에 강박적인 태도를 보였고, 글에서 묻어나는 그러한 집념은 책을 덮고 싶어지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의 10년이 독자인 나를 포기하지 않게 해준 것 같다(그녀의 10년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사실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앞에서 말했던 '제자리'란 어쩌면 방황을 해야만 돌아올 수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순전한 '선'이나 순전한 '악'으로 치부할 수 없으니 말이다(p442). 그런 점에서 시오가 방황한 시간은 어쩌면 '선'으로 나아가기 위한 '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방황은 행복해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황금방울새》는 스릴러물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지만(표지에 서스펜스라는 말이 있어서 속도감 있게 읽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읽고 싶었던 독자라면 충분히 만족하리라고 본다. 사실, 속도감 있게 읽고 싶어도 저자의 유려한 문장들이 시선을 자꾸 붙들어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다(웃음). 하지만 평소에 책 읽는 속도가 빠른 독자라면 이 작품 덕분에 새로운 독서법을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blog.naver.com/nahh1290/22041873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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