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같이 읽기 - 벨 훅스의 지적 여정을 소개하는 일곱 편의 독서 기록
김동진 외 지음, 페페연구소 기획 / 동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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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낸다'는 것의 표본으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저자들은 벨 훅스를 함께 읽으며, 자신들이 마주친 벨 훅스의 문장에서부터 자신의 사유와 경험의 과정을 꽤 높은 투명도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때로 막히고 때로 곡해하고 때로 짐작하고 멈추고 다시 나아가기를 반복하면서 벨 훅스의 함의를 독해하고자 애쓴다. 이것이 내가 지향해야 할 독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7개의 챕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김은지가 쓴 <우리가 겨우 계급에 대해 말하기까지>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쭉 살아오는 동안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최후의 문제는 계급과 관련있었다. 동질 집단에 대한 선호가 강하면서도 위아래로 구분 짓는 내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계급에 대한 인식은 불가피하지만 도무지 다루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동안 청년공동체, 신앙공동체, 육아공동체 등에 속해 오면서 나를 가장 치졸하게 만든 것이 바로 계급 격차였다. 생각의 차이도, 취향의 차이도, 가치관의 차이도, 입맛의 차이도, 노력하면 아주 쬐끔은 좁힐 수 있지만 계급 차이는 전혀 좁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마음이길 원했지 하나의 계급으로 통일되길 원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공동체의 가장 낮은 곳까지 하향평준화 되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의외의 모임에서 계급에 관한 약간의 자유로움을 느껴본 것 같다. 나는 개인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인데 개인정보노출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지만 개인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얼마간의 '평등세상'을 향유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사는 곳이 어딘지 직업이 뭔지 출신학교가 어딘지 등을 알지 못한 채 베일에 싸여 서로 알아가는 동안, 나는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여 상대방이 살아온 삶을 짐작해보고 평소 같으면 걸려 넘어졌을 계단을 몇 개씩 뛰어넘으며 그 사람에 대해 배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정보'를 알게 되지만 환경이나 조건으로서의 계급, 관점이나 해석의 근거로서의 계급,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계급, 우리 각자가 지닌 한계의 원인으로서의 계급,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다루어 봄직한 주제로서 '계급 차이'를 조금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계급에 잠식 당하지 않고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유산이 무엇인지 얘기해보자"(109쪽)는 벨 훅스의 말이 내게 용기를 준다. 계급의 단차에 주목하기보다 어디에 서 있든 같은 방향성을 가질 수 있음을 더 기뻐하고 싶다. 이 책을 권해준 그 '의외의 모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그곳에서 벨 훅스의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를 같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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