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
정여랑 지음 / 위키드위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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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시작'한다는 건, 결혼 10년 차에 접어들어 생각해보니, 차라리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둘이 같은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같은 길을 발맞추어 걷는 건 웨딩 로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자신이든 배우자든 결혼에서 이탈하거나 잠시 멈추거나 결혼의 종지부에 먼저 도착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게 바로 결혼이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결혼 갱신제’라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정부 주도로 시행되는 새로운 결혼 제도와 각종 교육 및 지원프로그램, 돌봄 시스템이 개개인의 삶에 어떤 ‘불안과 망상’, 혹은 ‘안정과 희망’을 만들어내는지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그려낸다. 아마도 이러한 상상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이루어 나가야 할 아름답고 바람직한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제도가 사람(관계)을 바꿀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 갱신제는 불안을 앞당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놓고 갈등이 불거진다. 5년 '후'를 걱정하느라 5년 '동안'을 소모한다. 상대의 마음을 지레짐작해서 자신에게 미리 상처를 낸다. 상처가 난 마음은 솔직할 수 없다. 두려움이 틈탄 마음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갱신제로 인한 선택의 기회는 누군가에게는 자유를 가장한 강요이고,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빼앗는 폭압이 된다.


제도의 갱신이 사람(관계)을 갱생시킬 수 있는가? 케케묵은 질문이지만, 사람은 과연 바뀌는가?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유효한 종신제에 대한 대안으로서 갱신제를 거론하는 것은 속편한 생각 같다. 결혼은 종신제여서(솔직히 종신제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 있나?) 괴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함께 시작'한 이래로 계속 동상이몽 상태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기 때문이다. 종신이든 갱신이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동시에 합의점에 이르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나의 진심은 왜곡되고, 상대의 진심은 뒤늦게 도착한다.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할수록 왜 더 꼬이는 걸까.


지훈은 선우를 이해하지 못한다. 연우는 한석을 이해하지 못한다.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미영의 남편은 미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마음대로 이해했다.) 경수는 순남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순남이 이해가 안 간다.) 정욱은 혜선을 이해하지 못한다. (못한다기보다는 이해하기 싫은 것 같다.) 승혁은 지안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소설 속에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극중 인물 간의 차이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며, 독자들을 그들과 함께 혼란 가운데로 내몬다.


알다시피,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고, 함께하려고 할 때 간신히 이해 언저리에 이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중 인물들의 갈등은 너무나도 바람직하고 교훈적으로 봉합된 느낌이 든다. 소설 속 돌봄지원시스템이나 적절한 교육 및 상담, 생활동반자법 등은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물론 그것이 국가 주도의 재생산 인구계획(?) 사업의 일환이라면... 솔직히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불쾌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갱신제 자체는 출생률이나 결혼 관계의 질적 개선, 가족제도의 확대에 직접적인 효과가 없을 것 같다. 제도가 보장해야 할 것은 결혼계약의 존속이나 해지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이 아니라 더 다양한 ‘함께함’이 가능하도록 그물망을 넓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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