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여, 안녕
김종광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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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작가 김종광의 첫 작품집 <경찰서여, 안녕>은 무엇보다 얘기를 이끌어가는 말들로 가득한 소설이다.

작가의 고향인 충청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투리의 입심은 읽는 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표제작 '경찰서여, 안녕'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전경 혹은 의경)으로 읽혀지는 경찰서 생활의 풍경은 하나의 낮선 공간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주인공인 '강수'는 자칭 천재적인 도둑질의 재능을 소유한 소년이다. 그는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나이 많은 형에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는,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소년이다. 그가 경찰서에서 사환역할을 하며 생활하게 된 까닭은 형의 양육에 대한 책임회피와 그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는 유형사의 배려아닌 배려 덕분이다. 하지만 그는 자칭 천재적인 도둑답게 항상 경찰서로부터 달아날 궁니만 하고있다.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달아나게 하는 힘의 원동력을 집에서 기르던 개, 검둥이로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그 검둥이는 쇠줄만 풀어 주면 나를 버리고 들판을 향해 달아났었다. 아무리 때려도, 아무리 구슬려도 쇠줄만 풀어 주면 미련도 없는지 또다시 달아났었다. 들판에 뭐가 있기에. 바라보기에 좋은 불빛만 가득하고, 바람만 요란하게 볼 뗀데. 저를 반겨 줄 것이라고는 고작 해야 집 잃은 개, 아니면 보신탕 좋아하는 인간들이 다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큰 귀를 펄럭이면서 뛰어갔었다. 그래,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 아무것도.'

연신 달아나는 개 검둥이에 빗대어 자신의 도주를 설명하는 이 구절은 기존의 국내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나의 모티브를 던지고 있다. 역사적인 성숙한 부성이 부재한 한국소설에서 성장소설은 '편모슬하의 성장'으로 기존의 연구자들에게 특징지워져 왔다. 그것은 단순한 나이먹기가 아니라 개인에겐 모험이면서 동시에 기댈 곳없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의 상징적 제시였다.

그러나 김종광의 '경찰서여, 안녕'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존재하지않는 왜곡된 현실 속에서 일종의 성장통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제시한다. 주인공의 성장통은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동시에 강한 그리움을 내포한다. 역사도 없고 현실도 없고 고향도 상실한 20세기 말엽의 인간들 그 속에서 작사가 제시하는 행동은 오직 하나, '도주' 뿐이다.

지향점 없는 도주, 소실점을 잃어버린 질주, 갈 곳 없고, 머물 곳 없는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끊임없이 과거를 변주하는 행위와 보이지 않는 심연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것 뿐이다. 비록 그 곳에 아무것도 없을 지 몰라도......

자신의 핸드폰에 'pro 작가'라고 적고 다닌다는 김종광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의 소설 속에는 너무 많은 말들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의 장점으로 이 글의 시작 부분에서 지적했던 사항들은 모순되게도 그의 가장 큰 단점이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인가는 사상이나 생각, 혹은 인생을 가로지르는 이탈과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김종광은 신인 작가이다. 그에게 독자들이 소설을 읽게하는 모두 요소의 충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집 '경찰서여, 안녕'은 읽는 독자들에게 그에 대한 좀더 많은 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한다. 그것이 그가 가진 '충청도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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