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불능 - 인간과 기계의 미래 생태계
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이인식 감수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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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기술문화 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창업자이자 전 편집장인 케빈 켈리가 1992년에 썼던 책이다. 이제 70이 넘으신 할아버지 양반이 40대 젊은 시절에 쓴 책인데, 과학기술이 현 시대에 금방금방 업데이트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책은 기한이 만료되었다고 말해도 할 말 없을 만큼 오래된 셈이다.


케빈 켈리는 60대에 『기술의 충격』이라는 어마어마한 책을 썼다. 이 책은 기술과 진화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대단한 직감을 지닌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본다면 과학기술의 아카데미아 연구자들이 쓸 만한 책이 전혀 아니며, 독특한 이력을 지닌 케빈 켈리라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독보적인 책이란 걸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기술(테크늄)이 고세균, 진정세균, 원생생물, 균계, 식물계, 동물계에 이은 제 7의 계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기존 생물학자들에게 먹힐 만한 주장도 아니고 실제로 과학적이지도 않지만 그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어마어마한 통찰력을 증명한다. 그리고 아마 이런 깊이 있는 상상력, 전공과 학문을 넘나들어 무차별적으로 지식을 결합해 이뤄 내는 막강한 통찰력은 케빈 켈리의 60대 이상 버전만이 쓸 수 있을 것이다.


『인에비터블』이라는 최근 책도 읽을만 하다. 그 책은 현재로부터 몇년 된 책임에도, 최신의 기술 화두인 인공지능에 대한 그 당시의 최선의 예측을 시도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유비쿼터스 AI,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미친 발전은 2016년의 책 『인에비터블』이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파괴적으로 솟아올랐다. 몇 년전 인공지능이란 추천 시스템이자, 말 걸면 정해진 답만 멍청하게 답해주는 버추얼 비서였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란 물어보면 문맥에 맞게 모든 것을 알려주는 ChatGPT이자, 대충 아무 키워드나 던져줘도 이 세상 95%의 그림쟁이보다 더 잘 그려주는 Midjourney이다.


그렇다면 이 책, 『통제 불능』은 읽을 만한 책일까? 아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어마어마한 속도를 감안할 때, 30년 전의 이 책은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60대만큼의 통찰력을 갖춘 것도 아닌 40대의 젊은 케빈 켈리가 최초로 쓴 책인데, 그게 벌써 30년이나 지나버렸다. 90년대의 과학기술 분야에 2020년대의 인간이 도대체 뭘 바라야 할까? 그것의 목록엔 우리가 들어본 익숙한 것들도 많지만(복잡계, 분산네트워크, 진화론, 스웜 인텔리전스) 대부분 구식의 연구 분야들만 가득이다. (바이오스피어, 상향식 제어, 사이퍼펑크 - 블록체인 이전의 암호화폐 연구 분야, 사이버네틱스). 게다가 그 두께는? 주석 빼고 889 페이지라니? 나도 읽을 때 지루해 죽을 뻔했는데, 세 번 트라이해서 겨우 완독한 책이다. 대체 90년대 흘러간, 잊혀진 잡다한 연구 분야를 한가득 모아놓은 두꺼운 책을 읽는 게 우리의 바쁜 현생에 큰 도움이 될까? 이 책의 본문을 (맥락과 다르게) 인용하자면, 이 책은 다음과 같다.


오래된 책들은 결코 오지 않은 미래 예측의 무덤이다

케빈 켈리는 856페이지에 이르러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사이버네틱스의 연구상태를 업데이트한 것”. 그제서야 나는 이 잡다하면서도 구식인 것들의 모음집을 ‘사이버네틱스’라는 한 단어로 줄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30년 전이야 ‘연구 상태 업데이트’라고 말하겠지만, 이제는 이 책은 “끝나버린 사이버네틱스 학(學)의 마지막 요약”이다. 이 책 이후로는 사이버네틱스를 의미 있게 요약한 책은 (아마)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그러니까 856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나는 케빈 켈리가 이 책을 썼던 이유를, 또 현 시대의 우리가 이 오래된 기술과학 책을 읽어야 하는(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읽을 필요 없다)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생소하면서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 단어, 사이버네틱스라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사이버네틱스의 아주 짧은 황금기에 급속히 전파된 ‘사이버-’라는 접두어는 그 어원의 연결고리를 잃고 ‘사이버스페이스’, ‘사이버 대학’, ‘사이버펑크’, 그리고 스타니스와프 렘의 ‘사이버리아드’에만 남았다.(대개 문학작품은 ‘불멸’이니까.) 그 제창자는 미국의 노버트 위너(아직 생존!)라는 수학 교수인데, 그의 원래 정의에 따르자면 생물, 지능, 기계, 그밖에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정의를 듣더라도 대체 이 학문이 무슨 주제를 연구하는지 여전히 아리송한 부분이 있다. 그 느낌은 정확하다. 왜냐하면 생물이든, 지능이든, 기계든, 시스템이든,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다룰 수 있는 협의의 과학 연구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이버네틱스라는 학문은 제창되자마자 각자의 학문 분야에서 더 잘 다룰 수 있었고, 곧 그렇게 되었다. 그것이 사라져 버린 두 번째 이유로, 사실 사이버네틱스의 정의대로 ‘복잡한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문을 우리는 현재 알고 있는데, 그것은 ‘복잡계 이론’이다. 사이버네틱스의 몰락 후에 복잡계 이론의 연구방법론이 컴퓨터를 도구로 쓰면서 급속히 발전했음을 볼 때, 사이버네틱스는 그 컴퓨터라는 도구가 아직 미숙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사이버네틱스의 한 분야인 인공지능이 너무나 크고 매혹적이어서, 대부분의 사이버네틱스 연구자들은 인공지능 분야로 빠르게 흡수되어 버렸다. (인공지능은 그 후에도 연구비를 빨아들이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지만, 사이버네틱스 연구와는 다르게 인간들은 ‘생각하는 기계’라는 매력적인 주제를 절대 놓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대에나 드디어 빛을 보게 된다)


사이버네틱스를 좀 더 명확히 정의하자면, ‘복잡한 시스템의 통제와 제어(control)’에 관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정의는 아까의 정의보다는 훨씬 명확하다. 인간이 생태계를 제어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닫힌 돔 안에서 생태계처럼 유지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생명의 진화를 실험실에서 모방할 수 있을까? 벌떼나 개미군락의 움직임을 기계로 재현할 수 있을까? 기계들끼리 공존하는 시스템을 바깥의 인간이 제어할 수 있을까? 모든 질문이 바로 사이버네틱스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오래된 책에서, 단 하나의 질문만 얻고 가도 충분하다. (비록 그 메시지를 얻기 위해 이 두꺼운 책을 끝부분까지 읽어야 한다는 단점이 매우 크지만.)


AI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절대로” 세계를 지배하려 획책하는 초지능 AI의 위협으로부터 인간을 구하자는 메시지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2023년, AI에 파묻히기 직전인 우리 인간들이 기존에 상대했던 ‘단순한 기계들’을 제어하던 방식으로 AI를 대한다면 우리는 명백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케빈 켈리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껏 제어에 ‘중독’되어 있었다. 단순한 기계를 다루는 방식의 제어에 심취한 우리에게, AI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려 하는 유혹은 너무나 막강하다. 그러나 우리의 살 길은 악마와의 거래다. 우리는 제어와 힘을 맞바꾼다. 우리는 제어를 오히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AI의 강력한 권능, 힘을 얻는다. AI가 그냥 혼자서 막강하게 활동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것이 ‘발전’하든, ‘진화’하든, ‘변신’하든, 그것은 우리의 제어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제어를 포기하라. 그래야 우리는 AI를 진정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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