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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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는 언어심리학자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해, 이제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일컬어지며 세계평화와 국제정치, 인류의 미래 예측의 주제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그렇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심리학 연구와 심리학자 소사이어티에는 상관이 없다. 스티븐 핑커처럼 과학 연구로 커리어를 시작해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오른 저술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전 진화생물학자이자 현 세계적 석학으로 종교의 위험성과 무신론의 승리를 논하는 리처드 도킨스, 전 진화생물학자, 조류학자이자 현 세계적 석학으로 인류 역사의 원리를 논하는 제러드 다이아몬드, 전 물리학자이자 현 세계적 석학으로 인공지능의 세계 지배를 예측하는 맥스 테그마크 등이 있다. 이에 추가로, 전쟁사학을 전공하다 결국 인류의 진화와 전역사를 논하며 세계적 석학이 "되어벌인" 유발 하라리도 있다.


약간 비꼬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비꼬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반만 비꼬는 것이다.) 그들이 원래부터 몸담고 있고 그들이 전문가라는 신분을 얻게 해 준 소사이어티인 아카데미아에서, 그들은 이제 더이상 논문을 생산하지도 않으면서 남는 시간에 자신의 아카데미아와는 큰 관련이 없는 책을 쓴다. 그렇게 그들이 인류의 미래와 인간성의 정의 운운하며 두꺼운 책을 쓰고 인세를 버는 동안, 그들이 원래 몸담았던 연구실 논문 실적은 바닥을 기고, 그들의 석박사 학생들의 논문 지도 스케쥴은 계속해서 빵구가 난다. 그래도 난 괜찮다. 그렇게 쓰여진 저술은 재밌고 탁월하며, 많은 교훈을 준다. 출판업계에 이만큼 기여했고, 읽을 만한 교양서가 많이 출판된다면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다. 제자들의 졸업이 또 1년 유예되든말든.


솔직히 이번 스티븐 핑커의 책 『지금 다시 계몽』을 읽고는, 약간을 까칠한 반발심이 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은 그의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논지 그대로 역사를 외삽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는 책이다. 난 뭐든이 미래예측을 하는 책에 반발심이 드나 보다.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 등의 책이 그랬다. 평소와는 달리 무작정 잘나가고 돈 많이 벌어서 배아파서 하는 반발은 아니다. 다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자, 그 근거에 대한 얘기는 좀 이따가 해 보자. 일단 이 책이 뭘 말하고 싶은지 요약을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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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의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폭력과 고통의 양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결국엔 사회는 더욱 더 평화로와졌다. 그리고 거기서 이 책이 출발한다. 이 추세를 미래로 연장하면, 인류 사회는 이보다도 더 평화로워지고, 더 잘 살게 되고, 더 똑똑해진다. 계속해서. 어쩌면 영원히.


여기서 감정적으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반박하려고 시도하거나, 엄밀한 자료를 통해 반박하는 사람들은 다 틀렸다. 왜냐하면 자료와 통계와 데이터에 따르면, 그가 공들여 수집한 정밀한 데이터에 따르면, 스티븐 핑커의 주장이 맞기 때문이다. 생명, 건강, 식량, 부, 불평등, 환경, 평화, 안전, 테러리즘, 민주주의, 평등권, 지식, 삶의 질, 행복, 실존적 위협 등의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와 자료가 우리 인류가 더 나아지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통계와 데이터들은 믿을 만 하고 특히 스티븐 핑커의 출신이 통계에 극도로 집착하는 심리학과라는 점에서 반박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인류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거나, 지금은 좋지만 언젠가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다 공포를 부추기도록 구조적으로 설계된 미디어 때문이다. 스티븐 핑커를 단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어째서 현대 사회는 더 좋아지게 되었는가? 인류 전 역사에 있어서 이렇게 좋아지도록 탁월한 방식으로 설계된 사회는 없지 않았나? 그게 다 계몽주의 때문이다. 17세기부터 서양에서 일어난 계몽주의 운동은 우리에게 과학적 방법론과 이성의 사용법을 만들어 냈고, 우리 인류는 그렇게 행동해 왔기 때문에 계속 좋아지는 현대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미래 또한 계속 좋아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석학들이 최근 계속해서 이 관점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건 이 관점에 신빙성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성적 낙관주의자』를 쓴 매트 리들리,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이 있다. 특히 낙관적인 미래 예측에 관해서는 『이성적 낙관주의자』, 데이터와 통계로 증명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팩트풀니스』와 매우 비슷하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의 마이클 셀린버거도 포함될 수 있겠는데,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가 해온 모든 과학적인 행위들은 결국 환경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거나, 이미 해결된 것이라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스 로슬링이 "나는 낙관주의자가 아니라 가능주의자다"라고 말했다고는 하는데, 매트 리들리부터 벌써 낙관주의라는 단어를 책 제목으로 쓴 것부터 이들은 빼도박도 없이 낙관주의자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낙관주의인, 단지 인생을 즐겁게 살고자 하는 개인적 인생관과는 좀 다르므로 이들을 '신낙관주의'라고 칭해 보자.


신낙관주의의 비판으로 뭐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장에서 "인류의 폭력은 계속해서 감소되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스티븐 핑커를 그린 만화도 있긴 한데, 좀 잘못된 비판 방향이라고 느낀다. 스티븐 핑커가 장례식에 가서 저딴 말을 할 리도 없거니와, 책 전체적으로 자신의 주장은 통계적 경향성이므로 어떤 곳에서는 나빠질 수도 있다고 누누히 말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반박하고 싶은 부분은 미래로의 외삽에 있다. 과거와 현재까지의 추세를 보건대 미래를 예측하는 건 당연한 수순에 가깝고, 실제로 책에서도 미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미래를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귀납의 오류다. 매일 모이를 주는 주인에 대한 데이터를 토대로 닭이 인간을 좋게 봤는데, 어느 날 그 인간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렸다는 사례 말이다.


역사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그 중에 역사란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파동이며 경향성은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스티븐 핑커가 그렇게 극찬해 마지 않던 현대 사회 또한 이렇게 역사를 보는 입장에서는 과거 역사의 반복일 뿐이다. 진짜 그런 관점이 있냐고? 진짜로 어떤 학파나 학설의 이름이 붙은 이런 관점이 있는지는 내가 모르는 사항이긴 한데, 최근 여러 책들을 보며 내가 어렴풋이 느낀 감각이라고 해 두자.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나는 이런 감각을 느꼈다.

지정학과 국제 정세: 국가란 지정학의 운명에 따라 반드시 언젠가는 똑같은 정치적 행위를 반복한다. 러시아는 언젠가 반드시 서쪽으로 유럽을 침공하려 하고, 중국은 반드시 주변 국가를 자신의 편으로 합병하거나 세력을 확장하려 한다.


패권주의의 주기성: 세계 패권을 쥐는 강대국은 반드시 주기가 있고, 패권을 쥐는 강대국은 언젠가 다음 국가에게 패권을 넘겨주게 된다. 레이 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 질서』라는 책에 따르면, 미국의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관점에 나는 동의하지 못하는 바긴 한데, 어쨌든 역사주기설의 사례로 넣을 만은 하다.)

이런 사례들로 예상할 수 있는 미래는 다음과 같지 않을까? 계몽주의와 과학주의에 따른 현대 문명, 어떻게 보면 패권국인 미국과 서방 자유세계가 완성시켰다고 하는 이 위대한 문명은 언젠가 스러질 것이다. 패권엔 흥망성쇠가 있고 영원한 패자란 없다. 다음 패권국은 미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이 될 것인데, 레이 달리오가 예상하는 중국이 되리라는 법은 절대 없을지라도 어쨌든 미국과 서방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정신세계에 과연 서구적 계몽주의와 과학주의가 포함되어 있을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까? 절대로.


즉, 계몽주의와 과학주의는 인류의 역사에서 한 번 발생하면 계속 이어지는 '발명품'이 아니라, 한 시대에 잠시 명멸하고 사라지는 시대적 특성에 가깝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필연적으로 일어날 미래의 예언이라는 얘기도 아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강령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관점은, 그런 절망의 시대가 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우리의 거룩한 계몽과 과학을 더 먼 시기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에 가깝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말이 있다. 예언 자체가 유명해지게 되면, 결국 그 유명세 때문에 예언이 말하는 바대로 흘러가는 걸 뜻하는 말이다. '뉴트로', '있어빌리티', '소확행', '가심비' 등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유행어를 유행시킨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가 대표적인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이에 비해, 신낙관주의자들의 예언은 자기실현적이라기보다는 그것의 안티테제 같다. 그들의 예언이 없었으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렀을 세계가, 그들의 예언에 힘입어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동력을 얻게 된다. 좋은 일이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스티븐 핑커든 레이 커즈와일이든 레이 달리오든간에, 그들이 하는 말들처럼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상하는 일이 사소한 역사적 갈림길에 따라 완전히 틀어지고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비판적으로 동조하며 그들의 주장을 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스티븐 핑커와 신낙관주의자들의 반-자기-실현적 예언(Anti-self-fulfilling prophecy)을 이루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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