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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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은 아르카디, 보리스 스트루가츠키 형제가 쓴 SF 소설이다.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이들은 러시아인으로, 『노변의 피크닉』은 1972년, 그러니까 자그마치 소련 시절의 러시아인에 의해 쓰인 작품이다. 공산권의 SF 전통에 대해 내가 줄줄이 썰을 풀 만한 지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쪽 SF 문학이 나름대로 탄탄한 작품과 팬층,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전통이 있다고 들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공산권의 SF가 바로 폴란드의 스타니스와프 렘과 그의 작품 『솔라리스』이며, 『솔라리스』는 러시아의 국민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하였다.


이 『노변의 피크닉』의 OSMU 미디어 믹스 작품 또한 우리나라에 나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다. 바로 우크라이나에서 개발한 게임 『S.T.A.L.K.E.R.』로, 작품에 나오는 '스토커'라는 직업 소재를 차용했다. 또한 이 소설은 『솔라리스』와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되었으니, 마블 유니버스와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미국의 SF만 보고 듣고 자란 우리에게 생소할 지라도, 공산권의 SF의 유구한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어 보인다. (물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을 마블 유니버스 영화들 만큼 '재미있게' 볼 수 있느냐는 둘째 문제겠지만)


이 작품의 소재는 외계인이지만 외계인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단지 외계인이 지구에 남긴 '사물들'만이 등장하며, 그렇기에 이 작품의 핵심 주제는 외계 사물들의 이해불가능성, 불가해(不可解)함이다. 제목 '노변의 피크닉'의 의미가 바로 그렇다. 우리가 노변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캔, 포장지 등의 쓰레기를 남기듯이, 이 외계인도 지구에 와서 피크닉을 즐기고 쓰레기를 남기고 간 것 아니겠냐는 소리. 우리 인간의 쓰레기를 노변의 다람쥐나 노루가 이해하려 해도 할 수가 없듯이, 우리 인간도 외계인들이 제조한 물품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외계인의 물건들의 원리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건 단지 가이거 계수기를 이용해 (원래 기능에 대해 알지 못한 채로) 못을 박는 행위와 비슷하다. 심지어 '외계인이 피크닉을 와서 남기고 간 것들'이라는 주장도 추정일 뿐이다. 알려진 건 아무것도 없고, 결말에 도달할 때까지 어떤 것도 명쾌히 밝혀주지 않는다.


'외계 지성에 대한 인간 인식의 한계'는 하필이면 같은 동구권 출신이며 동구권 SF의 빛나는 작가인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도 천착하는 주제이다. 그렇다고 이 주제가 그쪽 세계의 일관된 주제의식이라고 주장하기엔 내가 그쪽 작품들에 대해 아는 게 없긴 하다. 단지 서구권 SF 작가들이 시대적/이념적 한계로 인해 사고하지 못했고, 그들과는 다른 차원의 사유를 가질 수 있었던 동구권 작가들만의 독특한 주제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스타니스와프 렘 또한 그렇지만, 자본주의와 서구 문명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시각이 SF적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가 이 작품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동구권의 독특한 감성'이 우리가 공감하기 힘든 지점에 있는 건 아니다. 우리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 사고,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현세에 강림한 '노변의 피크닉'이었으니,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이 금지구역에 접근해 갖가지 위험 요소들을 피해 가며 불가해한 물체들을 수집하는 절망적인 모험은 체르노빌 폭발 이후 재난상황에서 방사능 구역에 접근해 불가해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발전소의 밸브를 잠그고 와야 하는 소방관들의 모험 이야기와 섬뜩할 정도로 유사하다. 그렇다! 우리는 이 불가해함을 이미 많이 접하고 들어 왔다. 느껴지지 않으나 몇분 이내에 생물을 파괴할 수 있다는 죽음의 방사능 광선, 냉전 시대 인류를 몇십 번이나 멸종시킬 수 있다는 미국과 소련의 핵미사일들, 미지의 공포와 새로운 지역의 흥분되는 탐험의 중간 지점에 있었던 로켓 발사와 달 탐사. 그것은 아직도 그 잔향이 남아 있는 냉전 시대의 매우 익숙한 풍경과 감성이다.


헐리우드에서도 이 외계 지성의 물품들을 수집한다는 소재를 차용한 영화가 있다. 그것은 마블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 홈커밍』이라는 영화다. 그 영화엔 『어벤저스』 이후로 외계인들이 지구에 남기고 간 물품들을 무기로 개조해 팔아먹는 빌런 '벌처'가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이 영화에서는 외계 지성의 불가해함까지 도달하진 않는다. 결국에 벌처는 외계 물품을 분석하고 개조해 무기로 만들어 내니까 말이다. 그렇다. 아무래도 이런 주제는 서구 작가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애초에 다가기 불가능한 주제인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 시절, 동시대를 살았지만 우리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던 그들의 S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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