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탄생 - RNA에서 인공지능까지
이대열 지음 / 바다출판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인 이대열 교수는 예일대 신경과학과에서 의사결정의 뉴로사이언스를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지능이란 근본적으로 자기복제를 핵심으로 하는 생명현상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충실하여, 책은 최초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RNA세계 가설부터 시작하여(근데 RNA세계 가설은 생물학의 정설이 아니지 않나?), 자기복제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DNA와 진화론 전반, 뇌의 진화, 뇌가 진화한 이후부터 시작한 개체의 학습, 사회성 등등을 다뤘다. 보통 교수님들의 과학책은 자기의 좁은 연구 분야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름 분자생물학부터 행동심리학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지능의 여러 특성들을 다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지능이란 근본적으로 자기복제를 핵심으로 하는 생명현상의 일부’라고 정의했다. 또한 ‘지능이란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도 정의했다. 나는 이러한 정의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지능이라는 주제의 재미있는 영역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주장에 대해 일부 반대를 표한다.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온도조절장치마저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온도조절장치란 설정된 온도보다 낮으면 보일러를 트는 신호를 전달하고, 설정된 온도보다 높으면 신호를 끄는 아주아주 단순한 if/then 명령어를 내장한 시스템이다. 심지어 이것보다도 더 간단한 지능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자 열 개 짜리 테이프 길이만을 가진 튜링 머신이라던가, 단 하나의 AND 혹은 OR 연산자라던가…


이런 것까지 지능으로 포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 예를 들어, 이렇게 간단한 것마저 지능이 들어있다고 가정한다면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지능이 들어있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데닛의 관점은 지능이 연속체라는 주장에 바탕을 둔다. 즉 AND 하나짜리 연산자보다는 AND와 OR가 결합되어 있는 연산자 시스템이 더 똑똑하다. 단순 on/off만을 수행하는 온도조절기보다는 열을 단계적으로(약/중/강) 가할 수 있는 온도조절기가 더 똑똑하다. 길바닥의 돌멩이는? 지능=0이다. 이런 관점의 지능은 분명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자기복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지도 않다.


이런 정의는 ‘지능지수’를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책에서 지능은 지능지수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에 대해서는 딱히 반대하지 않는다. 지능지수, 즉 IQ는 ‘인간’의 지능을 통계적으로 수치화한 것이며, 하나짜리 AND 연산자나 온도조절장치, 돌멩이의 지능의 수치를 재는 데 적합한 방식은 아니다. (그러므로 원숭이나 돌고래의 IQ가 얼마라던가, 인공지능이 이천 몇 년도에 인간의 IQ에 도달할 거라던가…하는 이야기는 좀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지능은 우열과 대소를 가릴 수 있다. 특히, 지능이 0인 돌멩이와 조금이라도 지능이 있는 AND 연산자의 차이는 명백하다. 돌멩이는 지능이 없고, AND 연산자는 (인간과 같이) 지능이 있다.


때문에 나는 좀 더 미시적인 지능을 지능의 범주 안에서 연구하는 것 또한 가치있는 일이라고 본다. 사람의 뇌나 동물의 뇌는 저자가 말하는 지능의 관점에서 알맞은 연구 상대지만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한 딥 러닝 인공지능의 뉴런 연산자 ‘하나’ 또한 지능의 관점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것들은 모여서 인공지능 전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궁금한 점. 인공지능은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지능’인가? 그것은 자기복제를 하지도, 생명현상의 일부도 아닌데? 아마도 그것은 생명현상을 시뮬레이션하기 때문에 ‘지능’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일지도.) 또한, 지금까지의 사례는 단 하나도 없지만 자기복제하지 않는, 생명현상의 일부가 아닌, 하지만 복잡한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이 있는 지능을 가정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사례가 없는데 가정하는 게 무슨 의미 있겠냐고? 사례가 없다는 건 결국 저자의 지능에 대한 정의가 맞다는 걸 뜻하는 것 아니냐고? 기술사상가 케빈 켈리의 ‘인에비터블’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외계 행성에서 마주칠 수 있는 가상의 지능을 우리가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한 흥미로운 상상을 했다.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 자기복제하는 생명만이 지능을 가짐을 (시뮬레이션된 생명-지능인 인공지능을 제외한다면)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만약 외계 생명체가 진화라는 것을 거치지 않고, 다른 특수한 메커니즘에 의해 지능을 발전시켰다면 어떨까? (근데 어떻게? 나도 몰라. 아, 그러고보니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라는 오래된 SF 소설이 그런 지능을 명확히 그리고 있구나) 그걸 지능이라고 부르지 않는 건 그냥 회피일 뿐이다. 케빈 켈리가 제시한 특이한 지능 중 일부를 발췌한다.


 - 조화롭게 작용하는 아둔한 개별 마음 수백만 개로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초마음

 - 자기 인식은 전혀 없는, 일반적인 문제 해결 마음 / 일반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자기 인식 마음

 - 드넓은 물리적 거리에 걸쳐 퍼져 있어서 빠른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초느린 마음

 -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지닌 양자 컴퓨팅을 쓰는 마음


예전에 이대열 교수의 세미나에 참석해, 진화하지 않은 단순한 지능이 있을 수 있는데 굳이 진화한 생명체의 복잡한 지능으로 지능을 한정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3분마다 물을 뿜는 아이슬란드의 간헐천의 예시를 들면서. 말하자면 뿜기 직전의 간헐천은 어떻게 3분이라는 시간을 계산해서 물을 뿜을 타이밍을 맞추는가, 그런 것도 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는데, 예시가 안 좋았다는 것 나도 인정한다. 실시간으로 질문한다는 게 그렇지 뭐. 교수님의 답변이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인상적인 답변도,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개운한 답변도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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