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더슨 비행장 - 태평양전쟁의 갈림길 태평양 전쟁 시리즈 1
권주혁 지음 / 지식산업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요즘 이런저런 2차대전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이대영씨가 쓴 하비스트 刊 '알기쉬운 2차대전사'부터 시작해서 하나둘 찾아 보고 있지요. 그렇게 인터넷서점을 뒤지다가 '헨더슨 비행장'을발견했습니다. 출판사가 좀 마이너하고, 책 표지 디자인도 별로 마음에 안들고 하는 점도 있었지만 책에 대한 추천글이 여기저기서 보이길래 냉큼 구입해다가 읽기 시작했지요.

일단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필자도 아니고, 군사전문가라거나 戰史에 몸담고 있는 군인/역사가도 아닙니다. 하지만, 직업적 특성(열대우림의 조림에 관련된 일) 때문에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에서 수십년동안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시간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하나하나 수집한 살아있는 자료와 사진과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만큼의 조사를 한 저자에 대한 경외감이 피어오른다고나 할까요. 단순히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뒤지고 하는 자료조사가 아니라, 직접 현장에 가서 현장의 땅을 밟아가며, 현장의 공기를 숨쉬어가며 찾아낸 자료는 글 자체에 생명력을 줍니다. 특히, 현지에 있는 일본 장성들의 묘지 같은 것의 사진은 쉽게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전쟁기록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전쟁 후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저자가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기에 글 중간중간 문장의 완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심심찮게 보이고, 지나치게 많은 자료를 하나의 챕터 안에서 전달하려다 보니 문단의 정돈이 덜 되어 있는 탓에 글이 좀 어지럽다거나 하는 단점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장조사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이러한 살아있는 정보들은 위의 단점을 덮어주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전후(戰後)의 이야기까지 다루는데다가 이 외에도 해당 사건 전후(前後)의 상황까지 설명하느라고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단순한 시간적 나열이 아닌 해당 사건과 관련된 다른 이야기들을 같이 설명하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요. 책값이야 좀 비싸다고는 하지만 어디서 이러한 생생한 정보를 보겠느냐라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절대로 비싸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해역에서의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출처는 호주정부 해외협력 프로그램
 
개인적으로는 태평양 전사를 기대하고 산 것이지만, 태평양 전사보다는, 책의 제목에도 써 있듯이 과달카날이라는 섬에 있는 헨더슨 비행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과달카날에서의 전투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상황은 왜 과달카날이 그렇게 중요해졌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간대에 일어났던 주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고 있지만, 미국이 주도권을 잡은 이후 일본군 항복까지는 간단히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가 시간에 쫓겼는지, 그 쪽에서의 자료가 부족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부분의 자료가 더 풍부했더라면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민간인이고, 한 민간회사의 중역이기에 사진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얻은 것이 주를 이룹니다. 전쟁기록사진에서 볼 수 있는 상세한 병기들에 대한 사진이라거나 해당 전투기, 함선, 기타 병기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글 중에 들어가 있는 전투기/전차들의 일러스트는 어설퍼 보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지도가 포함되어 있긴 한데, 좀 상세하게 해당 전투들에 대해서 관련 지도를 넣어줬으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진들은 정말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이었고, 이러한 관련 사진들을 컬러 면을 많이 만들어서 그 페이지들에 할애해 주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네요. 책값이 약간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한 컬러면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은 그야말로 생생한 것들일테니까요. 책을 보는 데에 한가지 팁이 있다면, 지도가 나온 페이지는 포스트잇 같은 것으로 표시해 놓고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지도를 참고해서 본다면 조금 보기가 용이할 것 같습니다.(물론 지도를 한번 보고 외워버릴 수 있는 분이라면 패스)

그런데, 한가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이 있군요. 저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것 까지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 보니 개개의 전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태평양전쟁 전체를 기독교의 틀 안에서 해석하려 하는 부분이 보인다는 것이지요. 물론 저자가 '일요일 예배'를 빠지지 않기 위해서 사관학교도 포기했고 학군단도 포기했으며 그 이후에도 글에는 적혀있지 않지만 일요일과 관련된 많은 일을 포기했을 것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독실하다는 것은 알겠습니다만(신을 믿느냐 교회와 십자기를 믿느냐같은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군의 실수라던가 불리한 상황은 우연이나 실수로 덮어버리고 일본군의 실수나 미군에게 유리한 상황은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로 해석해 버리는 것은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게 합니다. 유리한 상황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 운도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을 선택한 지휘관의 능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인만큼 그것을 모두 무시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돌려버리는 것은 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비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비약이 구석구석에서 눈에 띕니다. 특히 그러한 부분들의 분량이 좀 되어서 이게 과연 전도를 위한 서적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잠깐 들기도 할 정도이니까요.

좌우간 위의 종교 관련된 부분만 적당히 걸러내고 읽는다면 전체적인 전쟁과 전투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2차대전과 관련된 다른 책을 또 낼 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 책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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