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문법적 이해
류종목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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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책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논어를 집어든 당신.

당신은 다음 두 부류 중 하나일 것이다; 1. 논어에 담긴 철학을 읽고 싶은 사람. 2. 논어를 통해서 한문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 이 책 ‘논어의 문법적 이해’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안내서다.

 

논어의 내용에 대한 해설서는 감히 충분하다 할 만큼 많다. 문장에 대한 해설도 자상하며, 관련 고사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한문을 공부하려는 목적에서 해설서들을 들춰보면 정작 문장 구조나 한자어에 대한 설명은 소략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르는 문장이 나오더라도 원문과 해설서를 비교해가며 우격다짐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 책은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첫 페이지 첫 번째 주석을 보면 ‘子曰’의 ‘子’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다. ‘子’는 선생님이라는 일반 존칭어인 동시에 논어에서는 공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처럼 쉬운 어휘풀이조차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수를 놓듯 정성들여 꼼꼼히 해석하는가 하면, 복잡하고 용례가 드문 문장에 대해서는 논어와 비슷한 시대에 쓰인 다른 책들에서 관련 용례를 찾아 그 설명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독하지는 않고 논어를 읽으면서 어려운 구문이 나오면 마치 사전을 찾듯 이 책을 참조하고 있는데, 한문 문장 이해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사서에 해당하는 네 권 중 맹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을 읽어보았다. 논어는 그 중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매력적인 책이다. 예물로 바치는 양이 아까워 예를 소홀히 하려는 자공 때문에 공자는 삐지기도(!) 하고, 공자의 말을 오해하여 새 고기를 덥석 잡아온 자로 앞에서 고기 냄새만 맡고 말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몹시 아끼던 제자 안회의 죽음 앞에서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라고 가슴 아파한다. 이처럼 제자들과 함께 어울려 울고 웃고 화내고 안타까워하는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논어는 문학 이상으로 잘 포착하고 있다. 논어의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그 생생한 감동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문으로 읽을 것. 그리고 한문으로 읽으면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의 도움을 빌릴 것. 한문 한 글자 한 글자 속에 숨어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실타래처럼 풀어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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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피렌체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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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색채 로망 3부 중 제 2부에 해당하는 추리소설이다.

이탈리아는 몇몇 단상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나라다.
그 이미지의 상당부분은
아마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피렌체는 그러한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의 중심지다.
라파엘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이 곳에 연을 두고 있고,
르네상스 최고의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 역시 이 곳 출신이다.
좀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신곡>으로 유명한 단테도 이곳 출신이며
그리스 여신들을 템페라화로 아련하게 그려낸 보티첼리도
피렌체에서 활동하였다.
최근에 유행을 확실히 타고 있는 <냉정과 열정 사이>,
그 책에 등장하는 두오모도 바로 피렌체에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띈 피렌체 안내 책자 느낌이 강하다.
정치적 동물인 시오노 나나미가
이토록 세세하고 세련된 솜씨로 문화와 예술을 묘사할 줄이야.
자칫 박물관처럼 예술품을 전시할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갖가지 소설적 장치들로 주인공과 예술품을 묶어 놓았다.
등장인물 로렌치노의 침실에 보티첼리의 그림 두 점이 걸려 있고,
보티첼리의 삽화가 있는 단테의 신곡이 놓여 있다는 식으로.
올림피아가 주문한 목걸이가
라파엘로의 그림에 있는 그 목걸이라는 식으로.
주인공의 마음이 어지러울 때 취하는 '산책'이라는 정화 방식은
피렌체의 풍경과 성당들을 묘사하기에 딱 좋은 방식이다.

이 책의 가장 빼어난 부분은 17장 음모의 해부학이다.
그녀의 전공(?)인 마키아벨리즘이
예순 살, 마흔 살, 스무 살 세 남자의 세미나 형식으로 전달된다.
이 세미나는 주로
예순 살과 마흔 살 노련한 두 정치가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책의 뒷부분에서 스무 살 젊은이는
마키아벨리식 음모를 온몸으로 실현함으로써
가장 적극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하게 된 것도 2권의 포인트 중 하나!
1권에서 육체적으로만 사랑을 하게 되던 둘의 관계가
2권에서 드디어 진전을 보게 된다.
그 진전 방식이 비싼 선물 증정이라는게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하긴, 노련하게 세상을 파악해 버리는 시오노 나나미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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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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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왜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나로서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간신히 꺼낸 한마디였다.
ㅡ 왜냐구?
쥰세이는 놀란 듯했다.
ㅡ 너란 인간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
쥰세이는 점점 더 상처를 받는 듯 했다.
ㅡ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 왔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상처를 입으면 공격적이 되는 것은 남자들의 본성일까?
ㅡ 어처구니가 없군.
토하듯 말했다.
쥰세이는 그 때 청회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별 쓸데없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
ㅡ 나가 줘.
그렇게 말했을 때, 쥰세이는 이미 내 얼굴을 보지 않았다.
겨울이고, 하네기 공원에는 서리가 내려 있었다.
나가라고 하지 마.
그 때나 지금이나, 그 말은 고집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 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중.

마지막이라 느껴지는 치명적인 순간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임신 중절이라는 결정적인 소재로
단번에 4년의 끈을 잘라버린 쥰세이와 아오이.
사실 인연은 그런 식으로 끝나지 않는 것인데.
서로가 끝을 느끼는 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데.
끝인 줄 알았다가도 아닌 것이 사람의 일이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몇번씩이나 끝으로 치닫고 싶은 것도 사람인데.

어쨌건 확실한 것.
아오이는 몇 번이나 그 상처를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청회색 스웨터마저 눈에 아른아른할 만큼.

일상에 알알이 배겨진 그 사람의 흔적을 떠올리는 일은 그 흔적을 지우는 것만큼이나 힘들더라...

섬세한 문체 덕분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섬세하게 상처받을 수 있다. 사랑과 이별에 관한 가장 섬세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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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dts, 1disc) - 할인행사
롭 마샬 감독, 르네 젤위거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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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재미있었다. 꽉꽉 잘 짜여진 영화 한 편.
영화 속의 삶은 부드럽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칼 끝으로 내 살을 사정없이 저미고 발라내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그 칼날은 달콤하기만 하구나.
뮤지컬과 주인공의 삶이 중첩된다.
한 때는 내 삶에도 배경음악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기분일 때는 이런 음악, 이런 생각할 때는 이 음악..
그러나 요즘은 그런 꿈을 꿀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요즘 내 삶엔 별다른 기복이 없어 줄구장창 한 BGM만 틀고 있을듯..

내 인생도 당신의 인생도 모두 보여주기 위한 것들이려나.
스타를 꿈꾸는 것은 르네 젤위거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받고 싶어하고, 관심의 대상이고 싶어 하는걸.
그저 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관심의 대상이 무차별적 군중이냐, 지인이냐의 차이일 뿐.
타인의 인생은, 심지어 죽음마저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좀더 자극적인 가쉽. 좀더 쇼킹한 볼거리.
타인에게 잘 보여야 하고, 나를 잘 포장해야
그래야 주인공처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지?
그럴듯하지 않으면.. 별 볼 일 없어지면..
세상은 언제 내게 사형선고를 내릴지 모르는 일.
영화의 시선은 참으로 냉소적이었지만 어느 정도 동감이었다..
ㅡ 하지만,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그리고 내게는 내가 쉽사리 내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보아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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