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지음, 전나무 옮김 / 대장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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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전나무 역, 대장간, 2018.

 

"그는 신학자는 아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설교자도 아니며 오히려 그보다 더 성경적인 예언자다."

"현재 알려진 설교자 가운데 가장 근접한 인물은 아마도 폴 워셔일 것이다. 그러나 블룸하르트는 그보다 백배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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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구원보다 또는 들어가는 천국보다 하나님나라는 더 크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며, 그것은 이미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실존을 말한다. 하나님나라는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다고 여겼던 세상과 순식간에 충돌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미래에 들어갈 곳이기에 지체되어도 괜찮을, 당장 흰 옷을 빨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충돌에 반응하여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본래 무관했던 존재다. 이 얼마나 떨리고 긴장되는 하나님나라인가!

 

일요일 마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종교로서 기독교는, 조건이 갖추어지면, 즉 충분한 인력과 물자와 적절한 감동이 제공되면, 신자가 이 세상에 만족하며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살게 해 준다. 솔직하게 말하자. 그것은 감각을 둔화시키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블룸하르트가 경고한 '일요일 기독교'의 치명적인 면이 여기서 폭로된다. 그것은 행동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삶을 양산한다. 바라지도 인내하지도 않으며, 추구도 분투도 없다. 그러므로 종교는 죽은 것이라는 그의 고발은 백번 옳다. 오늘날 기독교는 사실이지 죽은 종교가 아닌가!

 

그렇다면,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식어가는 심장, 늘어진 팔, 흐릿해진 눈동자 그리고 완전히 메말라버린 골짜기의 뼈들, 에스겔의 환상의 골짜기에서 그들을 과연 어떻게 살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하신 왕. 이 생명을 부여받은 자의 인생에만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것은 한편으론 저주다. 죽은 자에게는 세계도 하나님도 없다. 애초에 우리는 마른 뼈들이었을 뿐이다. 죽은 자들의 몽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지옥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가 온다. 그것을 지금 가져오시는 하나님 그분이 성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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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소개했듯이 블룸하르트는 엄밀하게 신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반열에 서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첫 세 설교만 읽어도 인정하실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도 블룸하르트의 신학적 입장을 좀더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3장과 4장을 읽으시면 됩니다. 그 두 장에서 신론-종말론-구원론-기독론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제 개인적인 견해로 3장의 설교가 제목 "행동하며 기다리는 하나님나라"의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블룸하르트는 이기적이거나 아니면 피안적인 또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심지어 이신론적인 종말론을 고발합니다. 그에게 종말의 완성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종종 죽음이라는 끝없이 깊은 골짜기를 건너야만 맞닥뜨리는, 멀리 떨어진 하나님나라란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현재의 시간에 이어서 바로 다음 순간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 이어진 바로 저기 건너편에 이루어질 그런 하나님나라이기에, 끊임없이 하나님나라를 추구하고 기여하는 현실로 우리를 도전합니다.

 

블룸하르트의 설교는, 주해 즉 석의나 해석이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본문에 대한 통찰을 발견할 수는 있습니다만 블룸하르트 자신이 그것을 의도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 자신이 실제로 확보한 진리를 전하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4장 끝에서 그가 '마라나타'를 외치는 장면을 보자면, 그는 실제로 구름 가운데서 희미한 환영으로 예수님을 목격한 것 마냥 참으로 실제적이며 실천적인 믿음을 가진 설교자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그것이 나에게 없음이 얼마나 근본적인 믿음의 차이인가 깨달으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개는 이쯤해도 될 것 같습니다. 블룸하르트는 이 책에서 그가 속한 현실 세계와 그리고 종교 특히 교회의 실태를 진단합니다. 꽤나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그와 전혀 이질적이며 차원이 다른 하나님나라를 충분히 꿈꾸게 해 줍니다.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조명하면서 급진적이셨던 그분 예수님을 따를 제자도로 우리를 부릅니다. 블룸하르트와 함께 꽤나 급진적이며 전복적일 수 있는 그러나 정말이지 현실적인 하나님나라를 함께 살아봅시다.

이어서 서두에 일부러 언급한 '폴 워셔'와 비교하시도록 몇 군데 인용하며 마칩니다.

 * 나는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또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슬퍼질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이 이토록 없단 말입니까? 오히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남보다 높은 데 올려놓고 구분 짓고 갈라놓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원자를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죄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가 용서되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2:2 
만약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과 모든 사람을 위해 구원자가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우리 마음에서 솟구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참다운 종이 아닙니다. 비록 사랑과 자비와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뜻을 행하는 데는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삶을 온전히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우리는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충만하지 않다면, 세상을 애정 어린 선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붙들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 또한 우리를 돌보아 주지 않으실 것이며 교회를 다니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를 불신자로 여기실 것입니다. 마태복음6:14-15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실제 삶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참 모습은 용서이며, 아무리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잘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참혹한 전쟁과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은 그것들보다 강하고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마침내 죄는 없어질 것이며, 정의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가득할 것입니다.

(62-63)

*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나라의 역사입니다. (39)

 

* 거룩한 것이 찾아올 때 주의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심판의 불을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 (51)

 

*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죽는 순간에도 우리는 구원자의 오심을 보았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자가 오고 계시기에 많은 이들의 눈이 밝게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65)

 

* 그리스도의 미래는 지금이어야 합니다. (67)

 

* 그러므로 당신의 삶뿐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71)

 

*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오직 싸움만이 유일한 선택이며,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항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외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 고후10:1-6 (79)

 

* 하나님나라에서 우리는 구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에게서 무언가를 받기까지 그 문 앞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80)

 

* 참된 지혜를 궁궐이나 강의실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찾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고전 1:18-25 (89)

 

* 주님이 오실 날을 진심으로 준비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삶에서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95)

 

*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관심은 늘 사회문제, 인류를 위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100)

 

* 이처럼 나와 다른 사람을 분리시키는 종교는 가짜입니다. ...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우리 인간과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101)

 

* 여러분이 주님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정복자처럼 오셔서 당신을 가차 없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계3:1-3 (104)

 

(절반 7장까지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6장에서 본격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나라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가는 감격으로 읽어가는 중입니다. 이상입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onmin.jeon.7/posts/1022373173411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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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민 2022-01-1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장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주님은 베다니를 사랑했지
프랭크 바이올라 지음, 이남하 옮김 / 대장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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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선생으로 계시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많은 제자도의 시행착오가 넘쳐나고 있다. 과연 어느 길이 참 예수 제자의 길인가?! 예수님께서 가장 깊은 애정을 갖는 동시에 언제나 환대를 기대하며 방문할 때마다 미소지으신 작은 동네. 베다니를 드나드는 바로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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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9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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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재 선생님의 번역은 늘 잘 읽혀서 좋아라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막스 베버의 <서문>이 들어 있지 않네요. 문예출판사 박성수 역에 나오는 <서문>을 박문재 선생님 번역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에는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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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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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박문재 역, 현대지성(2019).

 

(이 글은 현대지성 서평단 공모에 응모한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약 2400년 전에 한 노인의 죽음이 인류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그는 한 권도 친히 저술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오늘 2019년에도 또다시 번역되어 출간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플라톤의 업적에 기초한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과 변론과 형 집행에서 충격을 받고 이 제자는 그리스 사상의 중심부 아테네를 배경으로 냉담하게 스승을 복원해 나갔던 듯 하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또 이 노인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2400년 전의 사건에 천착하며 생각을 진전시킨다. 인간은 무엇이고 사회와 공동체는 무엇인가? 그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살면서 따라가야 할 참된 지혜는 무엇인가? 인간의 모든 고뇌를 짚어가기에 필요충분한 최소한의 지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등. 플라톤을 통해 소크라테스는 마치 인류 전체를 제자로 삼아 오늘도 대화를 이어가는 듯 하다.

2019년 11월, 현대지성사에서 박문재 선생을 통해 번역된 이 책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4개의 대화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그리고 '향연'이다. 모두 대화 속에서 생각을 주고받으며 이어나가는 형식이기 때문에 플라톤의 대화편이라 불린다(앞쪽 책날개에는 플라톤의 대화편은 25편이 있다고 한다). 대화편의 특징은 무엇보다 생생한 생동감이다. 확인 질문이나 반문을 통해 반복되고 또다시 강조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사실 그 사상만 추려낸다면 더 간결한 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저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궁금한 사람에게는 주고받는 대화들이 거추장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저자와 대화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기획은 정말 탁월했고 고맙기까지 하다. 소크라테스가 그의 지인과 제자들이 둘러싼 가운데 대화를 이어가는 그 현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이번 번역은 고전어를 여러차례 번역하셨던 박문재 선생의 번역이기에 끊김없이 술술 대화를 읽어나갈 수 있었다(박문재 선생은 인문서적 외에 기독교신학 전문서적과 대중적인 신앙서적 모두 다수 번역하셨다). 누구라도 서점에 선 자리에서 이 책을 펴 읽어본다면, 전혀 생경하지 않을 표현과 문장들을 접하며 정말 매끄러운 번역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이 책에서 2400년의 거리감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각주를 통해 좀더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최소한의 각주는 매끄러운 독서에 기여한 또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다른 학문적 역서들은 첫 제목에서부터 긴 각주가 달려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아가 그런 각주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정보들을 제시하고 있었기에, 대화 자체에 빠져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사건의 배경이나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 없이 바로 읽기 시작하는 것은 어리석은 독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균형은 무엇인가? 각주와 별도로 최소한의 정보를 본문 앞 일러두기에서 간략하게 제공한 것이었다.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제공하고 대화로 들어가는 것, 역자 선정과 더불어 이번 출판사의 편집에 또 한번 감사드리는 부분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4개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둘러싸고 있다. 첫째 '변론'은 악의적인 고발로 인해 아테네 법정에서 500인(또는 501인)의 배심원을 대상으로 소크라테스가 3번에 걸쳐 변론한 내용이다. 첫째 변론은 예로부터 법정 변론 또는 수사학의 주요한 텍스트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변론에서 소크라테스의 사상 뿐만 아니라 논증의 방법과 수사등을 파악하며 읽는 것도 의미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한가지 일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변론한다. 특히 델포이 신탁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확신과 그것을 따를 신성한 의무를 강변할 때는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숭고한 정신을 발견하면서 감동받기까지 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혐의를 이 신성한 의무에 종속된 것으로 변호하였고, 나아가 이 신성한 의무를 이어가는 것이 이 도시의 책임이라고 하면서 이 신성한 의무에 아테네 시민들을 초대하기까지 한다. 아테네가 낳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위대하기 때문에 아테네가 위대해지는 순간이다(이 변론의 효과는 두번째 변론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220명이 무죄에 손을 들어주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인이 있었고, 그 가운데 더러는 죽음을 초월한 위대한 정신을 보여준 이가 있었다. 아마도 이런 인물들을 우리는 성자라 불러 마지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그 성자의 반열에서 가장 앞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죽음 앞에 누가 이렇게 당당하게 이상과 시민의 책임을 논할 수 있을까? 사형이 언도된 이후 3번째 최종 변론에서는 파이돈에서 이어질 소크라테스의 죽음학의 전형을 맛 볼 수 있다. 사형을 언도하는 아테네 배심원을 향하여 그것이 자신에게는 형벌이 되지 않는다고 변론하는 모습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함몰된 우리의 시선을 진정한 이상향 곧 지혜를 향해 끌어올리는 숭고한 진술이 아닐 수 없다.

세번째 대화 '파이돈'은 지혜를 추구하는 진정한 철학자의 입장에서 죽음은 바로 그 지혜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일임을 논증하며 시작한다. 이 논증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지는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때때로 모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무리수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대화의 유익은 결코 적지 않다.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의 자세를 논하기도 하고, 인간의 존재 특히 영혼을 논하기도 하며, 죽음에 관한 논의가 심도를 더하며 인식론으로 이어질 땐, 나는 그야말로 하버드 부럽지 않은 아테네 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청강하는 늦깎이 철학도가 되어 있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무엇인가? 영혼을 충분히 논증했으므로 이제 영혼의 존재 때문에 죽음이 유익하다고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지혜를 사랑하기에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논증한다.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면 죽음을 그렇게 맞이 할 수 없기에, 더더욱 이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철학자가 되라고 당부한다. 오욕칠정에 쉴새 없이 흔들리는 인간의 정신이 참된 지혜에 다다르는 길로서의 죽음을,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그가 사랑하는 아테네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았으며, 그리고 그 판결을 따르는 것이 정의롭다고 여기는 철학자. 정말이지 지나치게 고지식한데다 노망난듯 고집이 고약한 할아버지인 듯 하지만, 그는 진정 철학적 인류 '호모소포스'의 선구자이다. 죽기 전에 소크라테스가 행한 마지막 철학 강의라고 생각하고 읽기를 권한다.

(네번째 대화 '향연'은 생략합니다.)

두번째 대화 '크리톤'은, 감금된 소크라테스를 찾아온 친구 크리톤과의 대화를 담고 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강권하려고 찾아왔으나 소크라테스의 논증에 손을 들고 만다. 무슨 대화가 있었던 것일까? 분량이 25페이지로 아주 짧은 이 부분에서 어쩌면 공리주의 이슈의 고대 버전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직접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략하게 덧붙인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소크라테스 혹은 그리스 철학에 관해 먼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변론의 배경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즉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대화라는 생각이 아무래도 몰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2400년 전에 위대한 철학자가 무고하게 사형되었다. 그것도 아테네에서 말이다. 이 지점에서 플라톤의 절망을 만약 느낄 수 있다면, 이제 그 감성을 끌어올려 철학에 입문해보자. 나와 가정과 국가 그리고 산적한 인류의 과제들에 대해 예전보다 조금 더 숙고하며 조금 더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시민이 되어보자. 그다음 플라톤의 주요 저작을 펼치면서 말이다. 소크라테스 사후 아테네 시민으로서 시민의 철학을 함께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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