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파란 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9
토니 모리슨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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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아가 강한 이가 아니라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가 자기계발적 심리서를 통해 전해진다. 또한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품어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관념도 당연한 듯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회는 비교 우위로 촘촘하게 계층화되어 있으며, 모든 개인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낼 용기를 품을 만큼 오롯한 주체라는 생각도 환상일 뿐이다. 


이는 『가장 파란 눈』이 1940년대 전후의 미국 흑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유다. 토니 모리슨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페콜라 브리드러브의 삶은 극단적으로 비참하지만, 그의 취약함은 선망과 모방을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가지고 있는 무언가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장의 단계가 될지,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지는 보통 외부적 요건에 달려 있다. 


산산이 부서진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는 토니 모리슨의 경고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기 때문일까. 소설을 다 읽고서도 무덤덤한 나 자신에 놀랐다. 아니면 작가의 의도가 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주인공 소녀를 “적당히 동정하고 말 것”을 우려하며 사건의 순서, 원인과 결과를 복잡하게 배치하여 서서히 망가지는 페콜라의 삶에서 심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이러한 상황에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연약함에까지 시선을 주게 만든다. 인간 이하로 전락해버린 촐리 브리드러브, 살아갈 방법으로서 황폐한 욕망에 자신을 맡겨버린 폴린 브리드러브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강화시킨 자기혐오가 낳은 사랑, 피 흘리는(bleed) 사랑 이야기를 읽는 것만 같은 서글픔을 안긴다.


“사랑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을 수는 없다. 사악한 사람은 사랑도 사악하게 하고. 난폭한 사람은 사랑도 난폭하게 하고, 허약한 사람은 사랑도 허약하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사랑도 어리석게 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의 사랑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p.248)

    

1940년대 오하이오주 로레인. 이 소설의 화자인 클로디아 맥티어는 가난하긴 하지만 일하는 아버지, 가정주부인 어머니를 두고, 자기 집에서 방 하나를 세놓을 만큼 빠듯한 여유를 감내하며 사는 서민층 흑인 가족의 둘째다. 클로디아는 언니 프리다와 늘 함께 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그런 그의 집에 갈 곳이 없어진 페콜라 브리드러브가 한동안 머문다. 


페콜라는 “말없이, 이름도 없이, 그것을 표현하거나 인정할 목소리도 없이 붕괴하는 사람들”(p.7), “추함을 두 손에 받아들었고, 망토처럼 뒤집어”(p.57)쓰고 다니는 이들로 묘사되는 브리드러브 가족 중 가장 연약한 존재다. 흑인, 그것도 얼굴색이 어두운 흑인 소녀인데다가 극심한 빈곤층이다. 그의 아버지 촐리는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사람이며, 그의 어머니 폴린은 백인 문화를 선망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정부로서 일하는 백인 가정의 아이를 훨씬 더 극진히 보살피면서 자신들의 아이들은 방치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페콜라는 혐오와 멸시의 시선을 직격으로 맞으며, 조금씩 자존감을 잃어간다. 

     


사람들은 언제 어떤 타인을 존중할까. ‘언제’와 ‘어떤’이라는 조건을 달 수 없다는 것을 현대사회의 문명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1940년대 남부 흑인들의 대규모 이주 이후 흑인 참정권 및 교육에 대한 권리가 확대되면서 표면적으로는 백인과 흑인의 사회가 섞이는 듯했지만, 이는 흑인성을 버림으로써, 피부를 조금이라도 더 밝은 색으로 만듦으로써, 흑인에게 주어진 일을 말없이 수행하면서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백인 사회의 문화는 융성하여 미대륙 곳곳에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는데 이 소설의 제목인 ‘가장 파란 눈’은 이러한 백인성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백인성에 대한 선망이 흑인 사회에 한한 건 아니었겠지만, 이 소설에서 주된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0대 흑인 소녀들은 셜리 템플을 부러워하며, 메리 제인이 그려진 사탕을 사 먹으며 백인 소녀의 구불구불한 금발과 밝은 얼굴을 동경한다. 


그건 페콜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혐오 어린 시선에 상처받은 그는 오히려 백인의 외모, 즉 가장 파란 눈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흑인 여자아이가 백인 여자아이의 파란 눈을 갈망”하기 시작한 순간이 먼저일까, 흑인 여자아이의 무구한 시선을 매몰차게 내친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일까. 언뜻 보기에 페콜라의 붕괴에서 촐리의 강간, 그리고 아이의 유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의 아버지 촐리는 물론이고 어머니, 사탕 가게 주인, 동급생 흑인 남자아이, 부유한 흑인 여자아이, 이유도 없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중산층 흑인 가족, 소아성애자 소프헤드 처치 등 동네의 모든 사람이 그의 가해자다. 즉, 온 세상이 그를 무너뜨린다. 


그러한 노골적인 혐오 속에서 그는 ‘파란 눈’을 소망하며 “인종적 자기혐오”를 내면화한다. 토니 모리슨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혐오와 멸시를 받는 느낌. 이러한 시선이 아무렇지 않아졌을 때, 위로와 회복이 불가능할 때, 한 인간에게 어떤 비극이 닥칠 수 있는지를 말하려 했음을 밝힌다.


“그녀는 지금껏 어른 남자의 눈에서 관심과 혐오, 심지어 분노까지 보아왔다. 이 텅 빈 공간이 새롭지는 않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날이 있다. 눈꺼풀 안쪽 어딘가에 불쾌감이 도사리고 있다. (…) 그 불쾌감은 그녀를, 그녀의 검은 피부를 향한 것이 틀림없다.”(p.68)

    

페콜라가 촐리와의 근친 상간으로  생긴 아이를 유산했을 때는 1941년이다. 그는 아이를 밴 상태로 너무 기이한 성격에 자폐적 생활습관으로 오히려 신성함이라는 허울을 입은 소아성애자 '소프헤드 처치'에게 가 파란 눈을 갖게 해달라고 빈다. 소프헤드 처치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을 신이 페콜라의 눈을 파랗게 만들어줬다는 증거로 만들어버리고, 페콜라는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프리다와 클로디아는 그 마을에서 유일하게 페콜라를 안쓰러워하고 자신과 같은 여자아이 그 자체로 본 유일한 흑인이지만 결국 페콜라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고, 심지어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애가 우스꽝스럽거나 혐오스러워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애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력한 어린아이는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들 때문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어른이 된 후에 클로디아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틀린 것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미 늦었으니까."(249)  


“그녀를 아는 우리 모두는 더러운 것을 전부 그녀에게 쏟아붓고 나서 아주 건전해진 기분이었다. 그녀의 추함을 발아래 두고 당당히 설 때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p.246)

  

환대란 때로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곁을 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어떤 거리낌이나 판단이 없는 환하고 정직한 웃음은 어떨까. 그 미소를 띠는 일이 과연 그렇게나 어려운 일일까. 나는 누군가에게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순간을, 아니 그보다 먼저 그 환한 웃음을 받는 순간들을 강렬하게 경험한다. 이 소설에서 빈곤, 인종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하고 계속 논의되어야 할 주제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눈에 밟힌 것은 페콜라를 향했던 무수한 시선이었다. ‘텅 빈’ 시선, “표정이 지워진 눈빛”(p.228) 같은 것들. 


동성의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사회적 취약성을 지닌 나 역시 어느 한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맞닥뜨린 싸늘한 시선에 나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시선은 조금씩 사람을 바꾸어놓는다. 우리는 우리 앞의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는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우리를 볼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감사함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내가 어떻게 피할 수도 없고 되받아칠 수도 없는 화살이 된다. 지금, 세계는 내가 당신의 거울이 되고 당신은 나의 거울이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지는 시대다. 그런 공기 속에서 만난  『가장 파란 눈』은 이 세상에서 나의 눈은 어떤 색을 보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공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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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가 도착하면은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3
골드키위새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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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가 되지 못한 연애편지가 있을까?"


안그람 작가는 ‘연애편지’라는 단어 앞에서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곤 답한다. '고등학교 때 동성 친구에게 보내, 답장을 받지 못한 연애편지’라고. 「예언의 수신인」은 이 질문과 답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박현우는 웨딩플래너다. 여느 때와 같이 고객 미팅을 준비하던 현우는 예비 신랑의 이름이 자신과 같고, 예비 신부의 이름은 자신의 고등학교 절친과 같다는 사실에 신기해한다. 그런데 미팅에서 만난 사람은 진짜 고등학교 동창 민주혜. 이런 우연이 놀라운 진짜 이유는 주혜는 현우의 첫사랑이자 지금까지도 현재 진행형인 짝사랑 상대이기 때문이다. 현우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주혜와 단짝이었고, 우정 이상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용기 내 고백 편지를 건냈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 시점으로부터 20년이 지나고서야 고객이자 한 남자의 예비 신부로 만난 것이다. 주혜도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한 눈치다. 현우는 그리움을 반가움으로 가장한다.


대면 미팅은 몇 번에 그칠 줄 알았던 현우는 동창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세세하게 주혜의 결혼식 준비를 돕게 된다. 일하는 내내 현우는 동요하는 감정을 억누르며 '프로페셔널'을 외치지만 주혜의 한마디 한마디에 심장이 반응한다. 주혜의 취향을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예비 신랑의 말에 슬쩍 열도 받는다. '식장을 장미로 뒤덮고 싶다고? 주혜는 장미는 싫어하고 하얀 목련을 좋아해.' '머리카락을 한데 틀어올렸으면 좋겠다고? 너는 주혜가 반묶음 머리 할 때 얼마나 예쁜지도 모르냐?' 나의 첫사랑을 빼앗아간 사람이 이렇게나 못 미덥다니.


이렇게 속으로 주혜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자신임을 주장하던 현우는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는 자리에서 예비 신랑보다도 먼저 주혜 앞에 선다. 주혜의 특별 요청이다. "너한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어서 불렀어.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네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어리둥절해하며 피팅룸에 들어와 웨딩드레스 입은 주혜의 모습을 보는 현우에게 주혜가 한 말이다. 아니, 이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예비신랑보다도 더 먼저 보는 친구가 어디 있나? 다 소용없다. 주혜를 더 잘 아는 건 나, 현우일지 몰라도 주혜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은 저, 현우다.  


점점 감정적으로 지쳐갈 때 쯤, 현우는 사진 촬영 준비를 기다리며 예비 신랑과 어색하고도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는다. 현우는 예비 신랑에게 어떻게 주혜를 만났는지 물어본다. 주혜가 마음을 쉽게 여는 스타일이 아닌데 어떻게 사로잡았나며. 동창의 남편 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질문인데, 그뿐인데,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선을 보지 않으려던 주혜가 상대의 이름을 듣고 선 자리에 나왔고, 원래는 그것으로 끝날 인연이었지만 주혜에게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결혼하게 됐다는 말. 그리고, 다급히 신부에 대한 칭찬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현우에게 예비신랑은 대뜸, 또한 의도적으로 묻는다. "그쪽은 아직도 레즈비언 해요?" "아직도 하냐구요. '그거'"


주혜가 소중히 간직해온 편지를 어쩌다 읽게 됐는데 그 '현우'가 여자일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며 굳이 청하지도 않은 싸움을 거는 그. 당황한 현우는 어물거리며 신경쓰이면 담당자를 바꿔주겠다는 말로 상황을 넘기려고 하지만 남자는 집요하게 현우의 현실을 일깨운다. "이곳에서 태어나 정상적인 교육 받고 살아가는 이상 내가 주혜와 할 수 있는 일들, 당신은 하나도 못 하니" "거슬릴 게 없다"고 시비를 걸고, 이에 더해 “당신이 쓴 편지에 답장이 갈 일은 없"다며 "주혜가 선택한 수신인은 나"라는 말로 관계의 쐐기를 박는다. 다시 한번, 청첩장에 새겨질 이름은 박현우와 민주혜가 아니라 최현우와 민주혜다. 현우는 이제서야 진짜 무너진다. 다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다고.



사실 여기까지는 흔하게 접해온 서사다. 10대의 첫사랑,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여성 간의 사랑, 그리고 한쪽이 선택을 강요받아 '정상 가족'으로 편입한다면, 다른 한쪽에는 그러한 대답 아닌 대답에 상처받거나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이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던 나는 자연스럽게 2021년 개봉한 홍콩 영화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 사랑에 빠졌던 두 ‘소녀’ 윙과 실비아. 그들은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며 미래를 약속하지만 사회적 제약에 부딪혀 결국 헤어진다. 우연히 인생의 변화를 맞아 혼란스러워 하던 20대에 만난 그들은 30세에도 혼자면 같이 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지는데, 결국 그들이 다시 재회한 장소는 실비아의 결혼식장이다.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관계가 우정으로 자리매김되는 그 순간, 과거의 관계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무슨 한 겨울에 찬물 끼얹는 결말인가?’라고.


영화평론가 조혜영은 영화 <윤희에게>를 비평하며 과거의 한국 영화에서 다수의 “여성 동성애 로맨스는 이성애 로맨스에 앞선, 10대의 원초적이고 순수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고착화”되어 결국 “이성애 로맨스에 포획되고 봉합되며 과거의 것으로 영원히 남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소녀」도 유사한 틀로써 비평이 가능하다. 이 영화가 10대 시절, 여성 간 사랑과 우정 사이의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잘 그려냈다고는 해도, 위에서 지적하듯 노스탤지어로서의 첫사랑 서사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윙은 실비아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과거의 순수한 사랑의 상징,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노스탤지어로서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예언의 수신인」은 비슷한 서사를 따라가면서도 그 현실을 돌파한다. 위 영화를 만든 오영산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을 어린 날의 성장통 같은 것으로 회상하며 아름답고 순수하고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안그람 작가에게 10대 퀴어의 사랑은 ‘괴물’, 답장도 받지 못한 연애편지는 ‘괴생명체’로 이름 붙일 수 있다. 나는 이 시대 혹은 보다 과거에 존재했던 퀴어의 사랑을 뽀얗고 아름답고 순수한 것으로 봉인하기보다는 그 설명되지 않고 이해받지 못한 감정을 ’괴물‘로 그리는 것이 더 마음이 든다. 괴물에게 순응이란 없다.


웨딩플래너로서의 모든 일이 끝나고, 민주혜와 최현우의 청첩장을 받아든 현우. 친한 친구 결혼식의 하객으로 초대받은 현우는 약간은 기운이 빠진 채로 식장에 있다. 결혼식장 로비에 놓인, 행복해보이는 커플 사진. 가기 전에 잠깐 신부 대기실을 찾은 현우는 이미 식장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와 함께 주혜가 파우더룸에 현우에게 줄 선물을 남겼다는 얘기를 헬퍼에게 전해듣는다. 그 선물은 20년 만에 도착했지만 전혀 늦지 않은, 벽에 쓰인 편지 혹은 예언이다.


“마지막으로 줬던 편지에 답장하고 싶었어. 이 순간에도 여전히, 영원히.”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중요한 노래가 있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The Sound of Silence(침묵의 소리)’다. 작품에서는 저작권 문제 때문인지 가수의 이름은 ‘톰 앤드 제리’로, 노래 제목은 ‘Echoes of stillness(고요의 메아리)’로 바꾸고, 가사도 전면적으로 수정했지만, 원곡과 비교해보면 몇 가지 주요한 단어, ‘예언(자)/prophecy, prophet’ ‘(세상의) 바보들/fools’ ‘(지하의) 벽/walls’ 등을 살려두었다. 그렇게, 주혜와 현우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장소에서 자주 듣던 이 노래는, 추억에 갇히지 않고 미래로 이어진다.

기록된 말은 공간을 점유하지만 전해지지 않은 말은 무가치하게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그것이 역사가 될 수 없는 ‘침묵의 소리’이자 ‘고요의 메아리’라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안그람 작가의 이 만화는 그 짧은 분량 안에 퀴어 영화에서의 클리셰를 이상할 만큼 착착 전개하면서, 결국 마지막에 ‘괴물’ ‘괴생명체’를 풀어놓는다. 이 괴물은 결혼식 도중 도주하는 신부와 그의 손을 잡은 여자이며, 그 괴생명체는 신부대기실 파우더룸 벽에 쓰인 낙서다. 이렇듯 과거의 ‘예언’은 사라져버려도 모를 무언가였지만, 그 예언을 소망하는 사람, 실현하고자 애쓰는 사람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가. 퀴어인 우리가 쉼없이 벽장 속에서 써내려간 일기, 편지, 이야기들, 그것은 예언이 되어 떠돌고, 그것을 실현할 수신자를 영원히 기다린다.

첫사랑의 아련함은 모든 사랑 이야기의 중요하게 등장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나는 내 마지막에 떠올릴 단 하나의 존재. 그 존재가 고등학교 때 끝난 나의 첫사랑이 아니기를, 아무리 괴로움과 역경을 동반한다 해도 지금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랑의 존재가 역사에 남기를,  지하의 벽에서 차곡차곡 쌓여 온 예언들이 결국 이루어지는 날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름다운 두 신부의 결혼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만화의 끝은, 너무 뻔해서, 그래서 아름답다.



(테마단편집 <이 편지가 도착하면은>에 수록된, 안그람 작가의 「예언의 수신인」을 읽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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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곁에 있기 - 취약함을 끌어안고 다른 삶을 상상하며 만들어낸 돌봄의 세계들
고선규 외 지음 / 동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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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이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졌는데, 이 책을 통해 각자의 돌봄 방식이 다르고 그 모든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반드시 다가올 그 순간을 좀더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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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우리를 구해주지 않는다 - 주장과 비판, 불의에 참견해온 10년의 기록
록산 게이 지음, 최리외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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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와는 또 다른 매력. 이렇게 꾸준하게 좋은 칼럼을 쓸 수 있다니, 록산 게이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되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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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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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으며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번 책은 그 이상이다. 내용과 형식, 주제 면에서 모두 놀랍다. 꼭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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