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정치 -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
이진순.와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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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1일 토요일, 탄핵이 인용된 바로 다음날 서면 시국대회 현장을 찾았다. 한껏 올라간 분위기, 무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사회자의 구호도 평소보다 더 힘차게 울려 펴졌다. 그런 분위기에 흠뻑 젖어 집회를 바라보다가 무대와 거리를 분리하는 질서유지선이 눈에 띄었다. 술이 잔뜩 되어 문재인을 욕하시던 아저씨가 질서유지선을 넘자 곧장 제재를 당했다. 집회현장이면 곧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순간 위화감이 들었다. 시간으로 치면 40초도 안 될 시간, 잠깐이지만 매주 보던 무대가 멀게 느껴졌다.

 

그냥 스쳐가도 될 일화인데 마음에 걸렸다. 이 위화감에 뭔가 더 생각해볼 거리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듣도 보도 못한 정치>라는 책에서 봤던 뉴질랜드 이야기가 생각났다. 월가 점령 시위의 영향으로 뉴질랜드 웰링턴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모였다. 모두가 돌아가며 ‘이곳에 온 이유’나 ‘실천 사항’들에 대해 발언했다. 말 그대로 민주적 집단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크거나 말 잘하는 몇 사람이 발언권을 독점했다. 그러자 토론도 점점 줄었다. 집회에 참여했던 서른 살 벤나이트는 고민에 빠졌다. 정치적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대형집회가 가지는 비효율성, 정보격차, 상명하달 식 의사결정,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벤과 고민을 같이한 청년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들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협력적 의사결정’ 소프트웨어 ‘루미오’를 개발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찬성, 보류, 반대, 차단을 투표하고 결과를 원그래프로 보여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었다. 다만 특이할 점은 투표를 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코멘트를 달게 하고 재투표도 가능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읽고 조율하는 과정이 추가된 것이다. 덕분에 개인의 의견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집단적 결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합의점으로 향하는 가능성을 ‘루미오’는 보여줬다.

 

뉴질랜드 사례만이 아니다. <듣도 보도 못한 정치>는 온라인 기술을 통해 대의제의 한계를 넘으려는 세계 곳곳의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미국의 ‘브리게이드’, 아르헨티나의 ‘데모크라시OS’, 스페인의 ‘디사이드 마드리드’ 등이 그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시민들과 정치를 이어주는 창구가 된다. 정당의 정책공약이 온라인 공간에서 시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시정부의 예산책정, 입법, 행정에 시민들이 참여한다. 웹사이트를 통해 입법발의도 한다. 민주주의를 대표선출, 삼권분립, 다수결의 원칙 정도로만 접하는 우리에겐 생소한 이야기들이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기술, 아이디어는 언제나 자본과 기득권의 몫이었다. 자본과 기득권은 항상 자신들의 ‘세련됨’을 뽐내며 더 좋은 사회를 바라는 운동도,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연대도 무가치한 것으로 깎아내렸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새로움, 색다름, 세련됨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운동이) 안 세련되면 뭐 어때? 마음이 중요하지.”라며 정신승리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민참여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은 단지 새롭거나 세련된 기술을 만드는 것 이상을 뜻한다. 집단적 수준에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협력은 가능할까? 개인의 의지와 집단의 의지는 일치 할 수 있을까? 정말로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책 속의 인물들은 이런 쉽지 않은 질문들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촛불항쟁을 거치며 우린 대의제의 한계를 목격할 수 있었다. 야당이 혹여 다른 생각을 품지 않을까? 탄핵안은 통과될까? 가슴 졸이며 정치인을, 법관을 쳐다만 봐야했다. 그래서일까? 직접 정치,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젠 “약은 약사에게, 정치는 정치인에게”라는 패러다임을 뛰어넘을 때다.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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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CIA의 잊혀진 역사
월리엄 브럼 지음, 조용진 옮김 / 도서출판 녹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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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최소 200명 사망’, ‘최악의 오폭’ 스마트폰을 보다 순간 시선이 멈췄다. 수백의 생명을 앗아간 비극은 ‘오폭’이라는 한 단어로 간단명료하게 설명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주체도 불명확한 국제동맹군, 그저 심심한 위로를 건네는 미국의 짧은 논평, 끝으로 IS가 ‘인간방패’를 쓴다는 알리바이까지. 죽음의 가해자는 이런 ‘비극’에는 대단히 익숙하게 행동했다. 마치 대응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15년 전이었을까? 아직 초등학생이던 시절이었다. TV에서는 실시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일어난 ‘비극’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최첨단 군사장비와 정밀타격에 대한 예찬이 이어졌다. 가해자가 안타까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이 모술에서의 ‘비극’과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아무튼, 철이 들었던 무렵부터 미디어는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미국 편에 서든가, 아니면 토마호크 미사일을 맞던가.”

 

최근에 읽은 <미군과 CIA의 잊혀진 역사>는 지난 반 세기간 세계 곳곳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맞았던’ 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왜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이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네이팜탄을 들이부었을까? 피란하는 민간인들에게 로켓탄, 폭탄, 기관총 공격을 한 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책은 이란에서부터 파나마까지 모두 17개국에서 미국이 진행한 군사행동, 정부전복 작전, 암살 기도, 고문학살 등을 추적한다. 중동에서 아시아에서 남미에서 미국은 조금이라도 ‘공산주의적’ 색채가 띄는 정부라면 가차 없이 응징했다. 바로 ‘자유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다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이때 쓰인 ‘공산주의적’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용법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이 단어는 마르크스나 레닌 이론을 신봉한다거나 소련의 사주를 받는 걸 뜻하지 않았다. 대신 토지개혁, 경제개혁을 추진한다거나 교육 및 의료 시설을 늘린다든가 혹은 (미국 편에 서지 않고)중립주의를 표방하는 걸 뜻했다. 미국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 중립주의와 사악함을 구분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런 ‘선별’에 의하면 1970년대 말 아프가니스탄은 공산주의의 세계침략 야욕에 맞서 자유의 성전을 치러야 할 곳 중 하나였다. 1978년 인민민주당은 정권을 잡는다. 토지개혁, 공공부문 강화. 정교분리, 문맹타파, 여성해방 등이 새 정부의 주요한 개혁과제로 떠올랐다. 농민들의 부채는 탕감되고, 고리대금제도가 폐지되고, 학교와 진료소가 세워지고, 여성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지난 2세기간 이루어진 것보다 큰 변화가 한 해 동안 일어났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한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바로 소련과 수천 마일의 국경선을 공유한 것이다. 이듬해 미 외무부 관리들은 이 ‘공산주의’ 정권에 맞서 싸울 반군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CIA는 이들에게 게릴라 훈련도 시켰다. 이들 반군은 주로 회교근본주의자들로 부르카(이슬람교도 여자가 입는 겉옷) 쓰기를 거부하는 여자들 얼굴에 산을 뿌렸고, 상대방의 코와 귀 생식기를 자르고 피부를 벗겨 서서히 죽이는 고문을 즐겼다. 또 1984년에는 카불 공항 폭탄테러로 28명을 죽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미국을 대신하여 ‘공산주의자’만 잘 때려잡으면 대수롭지 않았다. 레이건은 이들을 “자유의 전사”로 불렀다.

 

게릴라전에 맞서 정부는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다. 여기서부터는 흔히들 아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이어진다. 소련 입장에선 자신들 바로 밑에 반공주의 회교국가가 수립되는 걸 좌시할 수 없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자신들이 겪은 수모를 소련에도 똑같이 돌려주려 했다. 반군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훈련을 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원조도 얻어냈다. 미국의 성전은 성공적이었다. 12년간 이어진 전쟁은 ‘소련의 베트남전’이 되었다. 전쟁 이후 소련은 해체수순을 밟는다. ‘자유 세계’가 승리했다! 그렇다면 자유 세계의 승리가 아프가니스탄 인민들에게 가져다준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사망자 100만 명, 불구자 300만 명, 그리고 피난민 500만 명 이상”의 상처가 남았다. 반군들은 회교정권을 수립했다. 이제 여자들은 부르카를 쓰지 않으면 “태형, 신체 절단 및 공개처형”을 받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는 미국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했던 수많은 노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라크엔 1억7700만 톤의 폭탄을 선물하고, 캄보디아에선 초토화 작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선 50만 명이 학살되는 걸 도왔다.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이 조금 강압적이긴 해도 다른 ‘제국’들보단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동의에 의한 지배라든가 문화적 포섭이라든가 하는 말들이 주석처럼 붙었다. 미국은 어디까지나 소프트파워를 중시하는 세련된 ‘제국’이다. 글쎄? 대통령이 넥타이를 풀고 셔츠 소매를 걷으며 연설하고(물론 지금은 아니다), 유머와 스웩이 넘치고(지금 분도 웃기긴 하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이건 애도를 표한다) 모습에서 그런 ‘세련됨’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여성인권을 말할 때 지구 반대편에선 미국제 폭탄이 여성과 어린이를 덮쳤다. 시간당 3발, 하루 평균 72발, 1년에 2만6171개의 폭탄이 투하됐다. 마치 레이건이 자유와 인권을 말하는 동안 미국제 HU-1 B 제트 헬리콥터가 남미의 농민들을 향해 불을 뿜은 것처럼 말이다.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세련됨이 주목받는 동안 하드파워와 잔인함은 역사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민간인 오폭의 ‘비극’이 보여주듯 잊혀진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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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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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 반 허세 반이었다. 장 폴 사르트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아무렴, 나처럼 불손한 ‘좌파’라면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진짜 좌파’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할까? 그래서 의기양양하게 도서검색을 했다. 어라? <존재와 무> 1130쪽. <변증법적 이성비판1, 2> 두 권 합쳐 1440쪽. 나에게 세상의 책은 두 종류로 나뉜다. 우리 집 베개보다 두꺼운가? 아닌가? 그래 베개보다 두꺼운 책을 읽을 순 없다. 아쉽지만 ‘진짜 좌파’가 되는 건 포기하자. 그런 찰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라는 얇은 소책자가 눈에 띄었다. “165쪽? 이건 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따라가기 버거웠다. 생소하고 난해한 용어들이 이어졌다. 기투? 비-언어? 내화랑 외화? 겨우 다 읽어내고 뿌듯한 마음으로 마지막 옮긴이 글을 펼쳤다.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춘’이라는 옮긴이의 친절한 설명이 보였다. 인터넷에서 본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드립이 생각났다. 책의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춘)난해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메시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르트르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의 무장봉기를 테러행위로 규정한다거나 평화를 말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선 중립을 지키는 전문가들을 사이비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이 사이비 지식인들은 거짓된 보편성을 옹호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프랑스의 식민지배가 억압적이지만 알제리 인민들의 저항은 폭력적이라서 안 된다. 세계 평화는 중요하지만 베트남에서 미군의 철수는 베트남이나 공산주의자에게 유리한 결정이라 안 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논리였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여성혐오를 중단하라는 여성들의 외침에서, 백남기 농민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밀양에서 성주에서 언제나 따라붙었던 꼬리표들이 생각났다. “파업은 좋지만 너희 민주노총은 폭력적이라 안 된다.” “시위는 좋지만 너희는 불법시위라 안 된다.” “남녀평등은 좋지만 여성우월주의는 안 된다.” 법치주의와 평화, 남녀평등이라는 공명정대한 논리들이 저항하는 이들에게 쏟아졌다. 이상하게도 공명정대함은 현실세계에선 견고하고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꼬리표들이 하나씩 붙을 때마다 이런저런 변명을 했다. 파업 요건을 만족한 합법파업입니다. 불법은 사측이 먼저 했습니다. 시위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입니다. 기타 등등. 하지만 변명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혹은 타당한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보단 저들(좌파)은 부당하게 어느 한쪽 편을 든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저들(좌파)은 노동자 편을 들고, 농민 편을 들고, 불법시위자 편을 들고, (떼쓰는)여성들 편을 들고 여기에 모자라 북한 편마저 든다. 법치주의, 평화 그리고 남녀평등, 공명정대한 보편의 논리 앞에서 어느새 우리는 편향되고, 한쪽으로 치우친, 비합리적인 ‘괴물’이 되어있었다.


견고한 보편의 논리를 마주할 때마다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 생소한 용어로 가득했던 사르트르의 글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한몫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지식인은 “보편성이 결코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보편성은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다. 즉 평화, 인권, 자유 따위의 보편성은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인간은 역사를 살아가는 ‘상황 속 존재’이기 때문에 우린 (보편적)명제가 아닌 (구체적)사건을 통해 이념과 부딪힌다. 마주하는 구체적인 것에 구체적인 답을 주는 것, 사르트르는 이것이 지식인의 기능이라 했다.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보편성에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당파성이 우릴 진리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힘이 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래서 가끔 욕을 먹기도 하지만 적어도 평소 가졌던 막연했던 답답함은 조금 걷어졌다. 지배층은 언제나 스스로를 보편의 수호자로 여겼다. 세계평화를 수호하고, 법을 지키고, 국가경제를 이끈다. 사이비 지식인들은 이런 지배층의 뒤를 따라다니며 거짓된 보편성을 퍼뜨린다. 억압에 맞선 피억압자의 저항을 보편성에 도전하는 부당한 행위로 치부한다. 폭력은 나쁘니 식민지배에 반대하는 알제리인의 저항은 부당하다. 평화는 좋지만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할 순 없다. 40년 전 사이비 지식인들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혹시 어딘가 시사프로그램에서 “평화 좋지요. 하지만 사드반대는 야당에게, 중국에게, 북한에게 유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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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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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러시아혁명을 다룬 글이 자주 보였다. 웬 러시아 타령이지? 했다가도 ‘아 100주년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이과 출신이라 중학생 이후론 역사와 별 인연이 없었다. 중학생 시절 ‘러시아 혁명’은 그저 2월과 10월 두 번이나 일어난, 그래서 시험문제 풀 때 괜히 헷갈리는 ‘옛날 일’이었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무슨 집회다 시위다 쫓아다니게 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러시아혁명을 왠지 알아둬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러시아혁명을 다룬 책들은 하나같이 책보단 벽돌 같았다.

 

“하하. 역사란 참 다가가기 힘든 친구구나.” 벽돌(책)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할 때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르포문학이라는 말에 왠지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게다가 미국인 기자(존 리드)가 10월 혁명 당시 직접 페트로그라드를 누비며 기록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미국인 기자라는 신분 덕분인지 존 리드는 레닌이나 트로츠키 같은 저명한 혁명가부터 각 정파의 지도자, 대자본가나 장교 심지어 케렌스키까지 대면한다. 책 속에서 레닌은 쉰 목소리로 연설하며 군중들을 사로잡았고, 트로츠키의 모든 몸짓은 마치 ‘역사의 방향’을 체현한 듯 확신에 넘쳤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지는 매력은 역사적 인물의 기록보단 혁명에 뛰어든 노동자, 병사, 농민들의 모습에 있다. 존 리드는 레닌보단 그의 발언을 듣던 수천의 평범한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혁명의 행방을 결정할 수도 있는 장갑차부대원 2천여 명은 병사대회를 열었다. 혁명에서 군인들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발언과 지지해야 한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존 리드는 이들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병사들은 고민하며 눈썹을 찌푸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과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사의 얼굴을 한 위대한 거인들처럼 보였다.” 사병 출신으로 육군 인민위원이 된 볼셰비키 크릴렌코가 이들 앞에 섰다. 그는 4일간 잠을 못 자 비틀거리며 연설을 했다. “반대편에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은 옛 세력들이 있고, 다른 편에는 노동자, 병사, 농민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정부를 넘기겠습니까?” 고뇌하던 병사들은 이윽고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의로 혁명의 편에 섰다.

 

열흘간의 기록에서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을 볼 수 있다. 어느 병사는 기업인과 공무원, 학생 100여 명에게 둘러싸인다. “너희들은 사회주의도 아니고 친독일적 무정부주의다.” “볼셰비키는 자유로운 혁명을 파괴한다.” 논리적인 추궁이 이어지지만, 이 병사는 혁명 지지를 절대 굽히지 않는다. 어느 늙은 운전사는 한밤중 페트로그라드로 들어가는 길에 도시의 불빛을 보며 소리친다. “내 것입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나의 페트로그라드여!” 물론 존 리드가 혁명 현장을 누비며 평범한 이들을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떨 때는 ‘미국인 동지’로 환영받았지만 어떨 때는 적으로 의심받아 죽을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는 때론 거칠고, 투박하기도 한 이들의 얼굴에서 혁명을 보았다.

 

그렇다면 혁명의 반대편은 어떨까? 그는 취재기자답게 여러 정당과 장교, 귀족, 자본가의 모습도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러시아의 한 대자본가는 병든 어린이를 치료해주는 것처럼 외세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운송을 마비하고 공장 문을 닫고, 굶주리고, (독일에)패배하는 것’도 러시아인이 제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장교들은 병사위원회와 협력하느니 차라리 독일에 패하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어떤 상인 가족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전쟁을 포기하는 병사들을 향해 “겁쟁이들!”이라 욕했다. 이들은 투기업으로 막대한 식량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계급투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계급투쟁, 사회주의혁명, 프롤레타리아독재…. 처음으로 이들 낱말을 접했을 땐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별 감흥이 없어졌다. 마치 러시아혁명을 ‘10월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 수립’ 한 줄로 무미건조하게 외우던 중학생 시절처럼 말이다. 그래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손도 시선도 자주 멈췄다. 난해해서가 아니라 혁명이 보여주는 생생함에 나 자신의 무미건조함이 깨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혁명은 책 속의 낱말이 아닌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그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 앞에서 존 리드의 표현처럼 내 감정도 결코 중립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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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다시 시작하는 대화 - 새로운 시대, 동행을 위하여
이정희 지음 / 들녘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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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도 정확히 모른 채 덜컥 책을 샀다. <이정희, 다시 시작하는 대화> 이정희라는 이름을 들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든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참 이상하다. 동경, 실망, 냉소, 안타까움, 아련함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이상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미묘한 감정이 관통한다. 아마도 ‘진보정당’이라는 놈이 내 일상에 작게나마 비집고 들어온 것 때문인 듯하다.

 

첫 인연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TV에서 정치인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정치인이었다. 개량한복 차림의 한 아저씨가 국회 연단에 하이킥을 날리고 있었다. 이후 인터넷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을 접했다. “민주노동당? 이름 어렵네. 노동은 왜 넣었지? 민주당이랑 다른 건가?” 이름보단 소속 의원들이 더 인상 깊었다. 하이킥 날리던 농민 아저씨와 선한 인상의 여성 정치인이 특히 눈에 띄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내가 민주노동당에게 가진 첫 인상은 다음 세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바로 농민, 여성, 노동.

 

왠지 민주노동당에 호감이 갔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대통령은 박정희, 지지하는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끔찍한 혼종이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이상하게 민주노동당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동아리 선배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했고, 캠퍼스엔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이름의 홍보물도 눈에 띄었다. 당에 가입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정당은 상품진열대에서 물건을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품선택은 신중해야 된다. 합리적 소비자로서 판매자에게 빈틈을 보이면 안 된다. 그래서 마치 MT방을 예약할 때 “다른 곳 좀 둘러보고 올게요”라고 하듯 “다른 (진보)정당도 알아보고요”라며 답을 피했다. (진보)정당을 단지 이미지, 기호, 정체성을 소비하는 정도로 바라봤고, 그래서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당 위기를 겪을 때 외면했다. 마치 유행지난 물건을 외면하듯.

 

2012년 박근혜가 당선됐다. 개표를 보며 망했다고 친구들과 욕을 했다. 얼마 뒤 한진중공업의 최강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선배를 따라 영도다리를 건넜다. 한 겨울 영도의 바닷바람은 차가웠다. 차가워진 손을 비비며 발언을 들었다. “가진 자들의 횡포에 …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고 밀어내는 한진 악질 자본.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 ”라는 최강서 열사의 유서. 나에게 정치는 욕하거나 외면하면 그만인 문제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을 전부 내던져야 할 문제였다. 그 후 밀양의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행진하면서, 한상균 위원장이 경찰에 체포되는 걸 목격하면서 진보정치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고민할 수 있었다. 어떤 보호막도 없이 홀몸으로 민중들은 국가기구의 폭력을, 제도화된 권력을 맞닥트렸다. 뿔뿔이 흩어져 고통을 감당했다. 책의 표현처럼 “인간의 존엄이 유지될 수 없는 위기상황”이 계속 일어났다.

 

과연 진보정치의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책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인지 책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다. 세 살 아기를 둔 KTX 여승무원은 대법원 판결에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구의역에선 19살 청년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고3 학생은 사고로 척추를 다쳐 2년간 병원 신세를 졌지만 산재인정의 길은 멀다. 매년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만 1800여 명, 오늘 하루도 5명이 출근을 하겠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만약 비정규직의 노동3권이 보장되었다면, 그래서 자기 권리를 외칠 수 있었다면, 진보정당이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얼마 전 사드가 기습적으로 반입됐다. 8000명의 경찰이 소성리 주민들을 막아섰다.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는 고가도로 위로 올라갔다. 차별금지법은 고사하고 동성애 찬반이 입에 오르내린다. 촛불의 기억은 아직 생생한데, 아픔은 그대로다. 진보정치가 부재할 때 사회가 치러야할 고통은 이처럼 크고 깊다. 단순히 정책역량이나 의석수, 의제설정 능력 등으로 진보정치를 환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진보정치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이정희의 대화신청이 너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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