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만 높던 노처녀 키티는 월터와 조급함에 끌려 결혼하지만 월터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고 (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절실히 와닿는 부분이었다. 월터가 좀더 자신감있고 당당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숨죽이며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준 대가는 배신이었다. 그의 사랑은 다른것들에 쉽게 가려지고 묻혀버리는 투명한 무색.)
바람을 피우게되고 찰스와의 사랑이 진짜라고 느끼며 찰스와 영원히 함께이길 원한다.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이는 키티. 이당시 그녀에겐 모든것이 핑크빛. 온몸을 그에 대한 삐둘어진 사랑으로 치장하고 불태우는 키티)
하지만 찰스와 그녀의 모든 것을, 심지어 감정의 깊이마저 꿰뚫고 있던 월터는 배신감과 경멸감에 그녀를 죽음의 소용돌이의 복판으로 데리고가게되고 찰스에게 버림받은 키티는 찬란한 자연과 죽음과 싸우는 수도원에서의 삶으로 자신을 치유해 나간다. (도시가 죽음으로 만연해있건 말건 ?빛은 여전히 찬란하고 하늘은 시릴듯 푸르다. 베일에 쌓인듯 안개와 햇살에의해 옷입혀진 성곽. 이렇듯 광대하고 무한한 자연앞에 인간의, 그들의 문제는 한낱 잡스런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만들고 죽음앞에 의연하고 당당한 수녀들은 키티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들지만 그녀에게 치유와 성숙이라는 마법을 선사한다.)
내용은 그 다음장의 이야기가 펼쳐져보이는 듯 전개되다가 갑작스레 월터의 죽음에 이른다. 그는 결코 그녀로 인한 상처를 치유받을수 없었던 걸까. 그녀와 아무일 없었던 듯 잘먹고 잘살았다는것 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죽은건 개였다'는 의미심장한 말만 그녀앞에 남기다니. 순간 그가 처음에 그녀를 데리고 이 중국오지까지 들어온 이유는 결국 배신의 댓가로 그역시 그녀의 죽음을 원했던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터는 처음에는 그랬다며 키티에게 시인했지만 그의 예민한 감성을 지닌 허영심과 자존심은 그녀를 끝까지 용서할수 없었던 걸까? 아님 그녀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것일까.
집으로 돌아온 키티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이루어내며 함께 바하마로 떠나기로 한다.하지만 난 정녕 그녀가 아버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바하마행을 결정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녀는 행여나 찰스와 다시 엮일까봐 두려운것이다. 천하의 나쁜놈인 찰스는(사견 강하게 주입) 티가 아이를 가진것에 기뻐하며 자신의 아이라고 확신하고 게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고 그를 경멸하지만 그에게 욕망을 느끼고 이미 몸이 머리의 지배를 거부하는 배신감을 경험한 키티로선 행여나 그의 입김이 닿지않을 곳이 필요했으리라.그 아이가 월터의 아이이기를 하고 나도 바랬지만 사실상 말이 안되는 이야기니....게다가 어머니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여성으로 키우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을 보자면 더더욱 이런 생각을 떨칠수 없었다.
고전에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하거나, 온갖 세상의 고통과 불행은 다 내 몫이요 하는 여성상이 많아 읽으려 시도조차 하기전에 불편함이 먼저 느껴져 다른 현대소설들보다 멀리해왔었는데 이야기가 무섭게 끌어당기는 통에 손을 뗄수가 없어 오랜만에 앉은자리에서 한권을 읽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몸에게 배신당해 찰스에게 다시 넘어가는 장면에선 '안돼!!! 키티 정신차려!!!" 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사랑을 우습게 본 키티와 사랑을 질투하며 배신감의 상처를 끝내 쓰다듬지 못한 월터 그리고 끝까지 이기주의와 가벼움으로 사랑을 기만하는 찰스.
사랑을 돌아보게 하고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인생의 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