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일 (양장)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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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호수의일 #창비 #블라인드가제본 #청춘소설

얼어붙은 사춘기, 끝내 맞이하는 성장과 치유의 서사
『호수의 일』

◇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_p.7

『호수의 일』을 읽는 동안 자주 흔들렸고 머리가 멍해질 만큼 마냥 눈물이 솟았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왠지 모르게 움직일 수 없었다. 작가는 열일곱 살 주인공 호정의 호수와 같은 마음에 일렁이는 파문을 다채롭게 그려냈다. 가족과 친구와의 갈등, 첫사랑의 설렘, 혼란스러운 시기를 통과하는 순간과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섬세하게 빚어낸 문장이 눈부셨다.

호정은 잠깐 올라설 마음도 들지 않았던 한겨울 얼어붙은 호수 가장자리를 걷는다. 호수의 침묵이 들려주는 음악에 귀 기울이며 "호수 깊이, 도무지 바닥을 알 수 없는 호수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가라앉았던 것들이 저절로 수면 위로 떠오르듯이." 뒤죽박죽인 서랍과 같은 기억 속 어딘가에서 호수와 그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처럼 또렷하다.

◇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_p.84

기우뚱한 가로등을 떠올리게 하는 전학생 은기. 외롭다는 말보다 그 마음을 먼저 배운 호정.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 얼어붙은 호수를 닮은 호정의 마음에 은기가 다가온다. 호정은 "모난 데 없이 애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 드는" 은기가 자꾸만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은기를 향한 마음이 커질수록 정말로 궁금하지만 묻지 못한 것들이 많아진다. "가령 강아지에 대해, 페이스북에 대해, 카카오톡에 대해."

◇ 우리는 그저 손을 잡고 있었고,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_p.160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품은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며 나아간다. 나란히 걷는 하굣길과 둘만 아는 말로 주고받는 문자, 소중한 일상이 쌓여간다. 그저 심심한 푸른색일 뿐인 은행나무가 노란빛이 감돌기 시작하고 물들어 가듯이. "아주 먼 곳으로부터 달려온 것처럼. 마침내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한 것처럼." 은기가 웃으며 뛰어왔을 때 호정도 웃고 있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마음이 보낸 소리는 알았다. 두 사람은 "너무나 강렬해서 결코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는 소중한 기억을 함께 채워간다.

◇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_p.131

마음은 눈에 보이지가 않아,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사람은 어째서 자신의 마음을 모를까. 그 무엇보다 온전한 제 것인데." 호수처럼 고여있는 마음에 무심히 던지는 잔인한 타인의 목소리. 깜깜한 어둠을 뭉친 말들이 만들어낸 물결에 마음은 속절없이 흔들린다.

혹독한 겨울에는 봄을 상상하기 어렵다. 책장을 넘기다가 "소년에게 돌아갈 곳이 있을까. 가정 폭력에 고통받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도망칠 곳이 있을까."라는 문장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아직 말하지 않아 전해지지 못한 마음들과 끝내 하지 못한 말들이 많이 남았지만, 무모해 보일지라도 얼어붙은 호수의 중심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야 하는 때도 있다는 걸. 호수가 아무리 넓고 깊어도 언젠가는 기슭에 닿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서로가 남긴 따듯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에, 어둠을 건너는 그대가 조금만 아프고 괜찮아지면 좋겠다.

◇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은 호수와 같아. _p.350

다정하고 사려 깊은 마음이 다녀간 온기로 참 따듯한 시간이었다. 작가가 보낸 손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호수의 일』에 담긴 "상대를 조금도 난처하게 하지 않는 위로"가 첫눈 같다. 좋은 소설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 캄캄한 새벽 홀로 호수를 건너고 있는 그대에게. 어둠 저편의 그대가 그대에게. 우리 사이의 호수는 꽤 넓어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긴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습니다. 우리에게 서로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대. 거기 있어 주어서. _2022년 겨울, 저편 기슭에서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귀한 슬픔을 담은 책을 선물해주신 #창비(@changbi_insta) 감사합니다. #창비스위치(@switch_changbi) 연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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