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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ㅣ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일기 #황정은 #창비
타인의 애쓰는 삶은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황정은 첫 에세이집 『일기日記』
☆사람들은 기억하고, 기억은 그 자리에 돌아온다.
기록으로, 질문으로. _p.76
'일기日記'로 시작해서 '일기日記'로 끝나는 11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에는 작가님을 거쳐 간 책 이야기, 어떤 날과 사람의 사사로운 기록이 담겨있다. 창비의 독서 체험 플랫폼 '스위치' 연재로 만나던 글을 종이책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아무래도 스마트폰 화면보다 종이 위에 인쇄된 글을 읽는 게 눈이 편하다. 독서의 즐거움에는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종이책의 촉감과 두께, 무게감도 포함되니깐.
책날개에 인쇄된 '황정은'이라는 이름과 '소설가.'라는 단어를 오래 들여다봤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는 책 속 문장처럼. 작가가 버텨낸 애씀의 기록이 내 삶을 구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우리를 발견하기를 바라며 견딘 밤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_p.59
반달터를 둘러싼 집에서 지켜본 눈사람의 생몰 과정을 연료로 날아올랐다가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는 고요에 내려앉는 글을 따라 걸었다. 미안하다는 말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것들을 지나고. 바람이 많이 불어 다 날아갈 것 같은 어느 날, 작가가 글로 붙잡아둔 기억을 읽었다.
적당한 거리에 놓인 단단한 돌 하나같은 문장을 여럿 건넜다. 시작을 잊지 않으려 애썼지만, 생각의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널 때마다 선명해지는 감각에 잠시 책을 덮어둬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세계가 열린 것처럼 소리와 색과 감정이 분명해졌으므로 나는 그 순간을 내가 시작된 순간으로 여기고 있다.
거기서 시작되었다. 파도를 기다려,라는 말로. _p.66
아마 내게 가장 오랜 기억도 공포와 혐오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을 내가 시작된 순간으로 여긴다는 게 왠지 서러웠다. 기록은 기억하려는 의지가 담긴 행위다. 어떤 말이나 사건을 자신의 머릿속에 저장한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행위에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다.
☆눈송이들이 소리를 먹어치우며 내리는 소리,
소리라기보다는 기척에 가까운데, 가을과 겨울 사이
이 지역에 짙게 끼곤 하는 안개의 기척과 닮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밀도로, 눈 기척은 조금 소란하다.
_p.28
눈이 내릴 때 들리는 소리가 한 편의 수묵화처럼 그려져 소리 내 읽어 보았다. 먹으로 그린 그림 같은 문장 너머 노을이 번지는 듯하다. 작가는 어떤 날의 농담濃淡을 담백하고 고요하게 그려냈다. 소설가의 모든 글이 소설의 문장이 되는 건 아닐 테지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작가는 어떤 글을 쓸까 궁금했는데, 감각을 일깨우는 시선이 참 따듯했다.
적당한 책갈피가 드물어 책갈피를 조금씩 모으고 있다는 부분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을 쓴 듯해서. 갓 네살 된 조카가 남긴 수수께끼 같은 이름 민요상. 그가 누구냐며 어른들끼리 궁금해하다가 최근에야 불현듯 알게 된 글자의 비밀도 흥미로웠다.
책의 마지막에는 "소설 한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10월의 마지막 주에 받은 고독단 북레터 '이달의 별색 인터뷰' 주인공은 황정은 소설가였다. 인터뷰에서 다음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일 것 같다고 하셨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마음들을 나도 사랑합니다.
다들 평안하시기를."
황정은 소설가의 다음 글을 빨리 만나고 싶다.
또 보게 될 그날까지 건강하시기를.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changbi_in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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