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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LA를 방문했을 때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렀다가 이 책을 우연히 집어들었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이라곤 대학 시절 <상실의 시대>만 읽은터라 하루끼의 소설이 궁금하기도 했고, 또 하루끼의 간만의 신작 장편소설이란 풍문을 들은터라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그리고 이틀만에 읽어버렸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를 한 번 시작하게 되면 끝을 보기 전엔 자리를 뜰 수 없듯이, 이 소설을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읽지 않으면 안절부절하게 되었고, 만사 제쳐놓고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잘 읽히는 책은 간만인 듯 하다.
그리고 읽고 나니, 소설의 이 구절을 통하여 내 소감을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아버지는 그 이상한 이야기를 이상한 이야기 그대로 그냥 받아들였을 거예요. 뱀이 입에 문 먹이를 씹지도 않고 통째로 천천히 삼킨 다음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화시키듯이"
이 소설을 읽은 느낌도 그랬다. 소설이 그리고 있는 여러 사건과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분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뭔가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먼저 반응했던 듯 하다.
나는 이 소설을 기본적으로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사람들을 가장 기쁘게 하고, 실망시키고, 힘들게 하는 것이 뭘까? 바로 사람 사이의 관계일거다.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이 힘듦은 참을 수 있지만, 사람에게 지치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직장인들의 상투적인 푸념도 바로 관계에서 비롯된다.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소도 사람과의 관계이다. 특히 자신의 생의 짜투리 시간까지 가득 채워왔던 관계들과의 단절은 어떨까? 오랫동안 사귀었던 연인과 헤어진 이들은 절망하고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수척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의 헤어짐과 단절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라는 인간은 그렇게도 나쁜 사람이었던가?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는 나고야에서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같이 하면서 친해진 네 명의 친구들과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었다. 서로 이성적인 관심은 배제한 체로 친밀함을 유지하고, 그 그룹에 속한 일체감을 서로 느꼈다. 대학을 가면서 쓰쿠루는 도쿄로 역 건물에 대한 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도쿄로 가게 되고, 다른 친구들은 나고야에 남게 되었다. 이 지리적 거리감이 있음에도 정오각형 같은 친구 그룹은 잘 유지되다고 대학 2학년 때인 어느날 쓰쿠루는 이들에게서 연락을 더 이상 하지 말 것을 통보받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존재를 부정당한 쓰쿠루는 모든 일상적인 활동을 그만두고, 먹지도 않고 페인처럼 지내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다가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체형과 삶에 대한 시선을 지닌채로... 이 친밀한 관계로부터의 단절의 경험은 36세가 된 현재까지 그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새롭게 만나게 된 사라와의 관계에서도 뭔가 모르게 껄끄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런 둘 사이를 가로막는 무언가가 쓰쿠루의 오랜 친구로부터의 단절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눈치챈 사라는 쓰쿠루가 옛날 친구들을 다시 만나도록 권유하고, 쓰쿠루는 16년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는 행위를 작가는 "순례"라고 표현한 듯 싶다.
이래저래 하루키에 대해 들은 얘기대로 이 소설은 스타일리쉬하다. 음악 특히 리스트의 "순례의 해"라는 곡이 주요 소재가 되고, 수영, 도예, 기차역, 태크호이어 시계, 커피 등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소설의 멋을 잔뜩 더해준다. 그리고, 주인공 쓰쿠루와 그의 친구들도 중상류층의 자제들이고, 부르주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회나 국가와 같은 큰 공동체와 관계된 비판의식도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찾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거대서사적인 윤리의식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는 강한 윤리의식이 보인다. 바로 관계에 대한 윤리이다. 우리의 현재도 과거의 여러 관계의 형성 속에서 영향받아왔고 규정되어왔다. 과거를 찾는 여행은 현재의 나를 새롭게 돌아보는 순례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과거 미성숙했을 때 실수했던 여러 관계들을 관조하고 그 관계들 속에서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하는 과정은 현재의 관계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거쳐 갈 수 있는 이 소설의 주요 소재가 되는 "역"과 같은 존재로 성장시켜 줄 듯 하다. 가끔은 내 잘못이 아님에도 일그러진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그렇게 나아가다가 가끔씩 또 뒤를 돌아보아야 함은 아닐지 이 소설은 내게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아주 모호한 형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