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에 대한 김훈의 인터뷰부터 먼저 들어보자.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1/h2007110118295284290.htm
미니인터뷰
“별의별 인간에 개별적 정당성을 주려 했다”
-역사소설을 천착하는 이유는. "내 소설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닌,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여기에 악과 폭력의 바탕 위에 세계가 세워졌다는 내 입장을 투영한다. 인류사의 거듭된 약육강식이 그 증거다. 앞으론 역사 아닌 당대의 일을 통해 표현하려 한다." -<남한산성> 쓸 때 사료는 어떻게 모았나. "성 안에서도 사관이 실록을 썼고, 일부 지식인들이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자료는 유언비어, 민담처럼 삶의 구체성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걸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약간의 자료에 상상을 가해서 복원했다." -병자호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내 포인트가 아니었다. 47일간의 무립고원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별의별 인간이 다 있게 마련이고, 그들에게 개별적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남한산성을 윤리가 무화된 실존 공간으로 그린 건가. "아니다. 거기엔 삶의 지향성이 있었다. 인조가 그렇다. 삶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인조는 치욕과 굴종을 감당하면서도 살아냈다. 그것이 윤리라고 생각한다." -비루한 현실을 그리기엔 너무 미문(美文)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장의 뼈다귀인 주어, 동사 갖고만 썼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스트레이트 문장이 제일 좋다. 이뤄내기 힘든 허영일지 몰라도 앞으로도 스트레이트 문장으로 소설을 쓸 거다." |
청이 명을 꺾고 대륙에서 세력을 잡은 다음 조선이 명 대신 청을 섬길 것을 청나라는 요구한다.
그리고 그 요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자 조선으로 규모가 큰 군대를 출병한다. 이 긴박한 상황에서 여전히 조선의 조정은 갈팡질팡하고 청의 빠른 진격으로 인해 강화도로 조정을 옮길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남한산성으로 왕과 대신들 그리고 왕실을 지키는 사람들이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하는 데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김훈이 묘사했듯이 남한산성이라는 곳은 들어가서 방어하기는 쉬워도 공격하기는 어렵고 외부에서 지원세력을 불러오기도 힘든 성이다. 그래서 충분한 군량미를 보유하고 있는 적이 밖에서 포위한 채로 장기간으로 가면 갈수록 성 안의 사람들은 말라죽을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이러한 한계 상황에서 성 안의 각각의 인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 이 소설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주전파와 주화파의 주장에는 다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고, 그 어느 쪽도 함부로 내칠 수 없는 임금의 입장도 쉽게 이해가 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이 결정하는 선택이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예전 사르트르가 쓴 책에서 이런 실존의 문제에 대해 예로 든 다음과 같은 상황이 연상되었다. 어느 젊은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선택을 그는 내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병약한 홀로 계신 어머니를 돌보아야 했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 같고, 전쟁에 참전하면, 병약한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고,
이런 실존의 상황 앞에서 그의 선택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가?
남한산성에 있었던 인조라는 임금과 그 무리들도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고, 우리 현대인들도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해있다. 내가 가진 대의를 따라 살려니 딸려 있는 처자가 불쌍하고 생존이 걱정되고, 또 생존의 필요만 급급히 채우면서 살려니, 인생이 허무해지고... 거기에 대한 해답이라는 게 과연 있기나 한 걸까? 그냥 인간이 맞부딪혀야 하는 생은 그런게 아닐까?
그런 가운데서도 위의 인터뷰에서 보이듯이 삶을 연장한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가치임을 김훈은 보여준다. 인조가 그렇게 굴욕을 당하였지만, 그것은 그가 당한 것일뿐 그 이후 민중들의 삶은 놀랄만큼 변화가 없는 상황을 보는 것이 참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실존적 한계의 상황에서 조정의 대신, 사대부들과 대비하여 다른 한 인물을 김훈은 제시하고 있다. 바로 서날생라는 대장장이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삶과 죽음이니, 명분과 대의니 하는 무거운 주제들이 비켜나가고 모든 문제들이 그의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풀려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김훈이 늘어놓은 역사의 질곡을 뚫고 근근히 버텨오는 민중의 삶의 풍경은 병자호란이라는 끔찍한 상황에 대비되어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