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메세지가 치밀한 각개 사건의 전개나 상황의 묘사없이 떡하니 주어진다면 어떠할까. 아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로 독자는 들어가길 주저할 것 같다. 다른 김훈 선생의 소설처럼 이 소설도 상황상황의 묘사가 생생함을 넘어 가끔은 역겹기까지 하다. 그 중 하나가 가야의 왕이 죽었을 때 그를 모셨던 시녀며 문무 중신들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농부, 어부, 목수, 대장장이, 무사, 선비, 젊은 부부와 처녀, 과부까지 오십명의 순장자들이 왕의 관이 들어앉을 석실 주변 구덩이에 함께 묻히는 장면이다.
“순장자들은 무릎으로 기어서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반듯이 누웠다. 젖먹이가 딸린 농사꾼 내외는 마주 보며 모로 누웠다. 젖먹이는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군사들이 구덩이 안으로 밥그릇을 던졌다… 구덩이마다 지키고 섰던 군사들이 돌두껑을 덮었다."
이 소설이 중요하게 다루는 두 가지 소재는 쇠와 현이다. 그리고, 가야의 쇠와 현을 담당하는 인물은 야로와 우륵이다. 가야의 두 대표적인 기술인은 아쉽게도 가야에 대한 충심을 담지 않는다. 쇠에는 쇠의 흐름이 있다고 얘기하는 야로는 가야에 병장기를 제공하는 한편 같은 병장기를 신라에 몰래 가져다 주며 자신의 살길을 도모한다. 우륵도 가야의 멸망이 가까이 옴을 느끼자 가야를 떠나 신라로 향한다. 그는 제자 니문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니문아 언젠가는 여기를 버려야 할 것이다. 소리는 살아있는 동안만의 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우륵은 신라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에서 신라 진흥왕 앞에서 물혜, 달기, 다로, 가라, 기물, 알터, 바람터, 노루목 등 가야 여러 고을을 다니며 모아온 가야의 소리를 12줄의 현으로 연주하고, 펼쳐진 소매가 뻗어나가 허공을 가르는 춤사위를 선사한다. 그리고 우륵은 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러 말들을 제자와 신라의 음악관원에게 얘기한다.
“악기란 아수라의 것이다. 금을 신라로 보내라. 거기가 아마도 금의 자리이다."
“소리는 가지런한 것이 아니다. 소리는 살아서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손가락으로 열두 줄을 울려 새로운 시간을 맞는 것이다. "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너희들의 나라가 삼한을 다 부수어서 차지한다 해도 그 열두 줄의 울림을 모두 끌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늘 새롭고 낯설지 않겠느냐"
소설을 읽고 나서 몇 가지 생각이 든다. 순장의 장면을 보면서, 신라와 가야의 전투장면을 보면서, 이전 시대에는 사람들이 참 의미없이 많이 죽어갔던 것 같다. 국사 시간에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의 수많은 전투들을 연대 순으로 외웠지만, 이 소설은 그 연대 사이에서 쇠로 만든 병장기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의미없는 목숨들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왕이 죽고 나면 수많은 생사람을 생매장시켰다는 이전 시대의 한 풍습도 근대 이후 생긴 인권이란 개념을 고마운 마음으로 음미하게 되었다.
김훈의 남한산성이라는 작품에서는 서날생이라는 대장장이를 등장시키고, 이 인물과 그의 가족들이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큰 사건을 거치고 나서도 변함없이 살아감을 묘사한다. 이 현의 노래에서도 가야가 멸망하지만, 그 멸망에 몸을 맡기지 않는 주인공 우륵의 모습을 통하여, 일명 보수주의자 김훈 선생은 이념 과잉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는 것 같다. 칼의 노래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진다고 해서 애도하는 것이 아니듯이 인간의 죽음도 자연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아닌가란 질문을 던지듯이 말이다. 과연 인간의 삶이라는 게 그렇게 무의미한 것인가, 인간의 삶과 죽음도 자연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체념이 결국 불편한 답인 것일까, 내 몸을 의탁하고 살아가고 있는 국가의 존망 혹은 이데올로기의 존폐가 그렇게 하찮은 것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어느 정도의 반감도 일어나긴 했다.
세 권의 역사소설은 아마도 한국 소설사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 같다. 김훈 작가만이 선보일 수 있는 문체와 작품을 통해 얘기하는 주제 의식이 참 독특하기도 하거니와 끊임없는 질문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 같다. 이 세 권을 나란히 책장에 진열해 놓는다. 60대에 쓰여진 이 작품들이 내가 김훈 작가의 나이가 되어 이 세 권을 다시 꺼내 읽어보면 또 다르게 읽힐 것 같다는 기대 때문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