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을 졸업할 때쯤 친구가 준 약도에는 구로공단 전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다섯 정거장 후에 내리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구로공단에 위치한 한 공간. 그 공간을 통해서 어렴풋하게나마 구로공단이라는 지역과 사람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 공간을 찾아간 때가 90년대 후반이었으니, 그 땐 80년대 노동운동의 열풍이 사그러지고도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그래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격정의 흔적만을 보고, 냄새만을 맡을 수 있었다. 그 때 보았던 맡았던 희미한 흔적과 냄새를 신경숙의 외딴방이란 소설은 떠올리게 한다.


신경숙의 외딴방이란 소설의 배경은 80년대 전후의 구로공단이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되고,YH 사건이 일어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구로공단을 메웠을 때, 그 한 쪽방을 차지하고선 낮에는 전기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여상을 다니던 한 여성노동자의 자전적 얘기를 이 소설은 담고 있다. 

혁명의 열기가 가득했던 80년대 시절, 현장에서 나오는 소리는 힘있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또한 머리숙이게끔 하는 처연함도 함께 전했을 듯 싶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 나오는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라는 표현은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대학생들의 가슴을 쳤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하지만, 외딴방이라는 소설은 첨예한 80년대 전후의 구로공단이라는 배경 하에서, 노동, 민중, 노조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이념적이고 정치적 성격을 정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국의 격정적인 현대사라는 배경에서 학교에 다니고 싶어 노조를 탈퇴한 한 평범한 여공의 그닥 드라마틱하지 않은 생활들을 감수성짙은 문체로 표현한다. 소설에서도 쿠데타, 광주사태 등에 대한 작가의 책임감에 대한 셋째 오빠의 지적에 대해 자전적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몰라, 오빠. 나는 그런 것들보다 그 때 연탄불은 잘 타고 있었는지. 가방을 챙겨들고 방을 나간 오빠가 어디 길바닥에서나 자지 않았는지.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 오빠. 그때 내가 정말 싫었던 건 대통령의 얼굴이 아니라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 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었어.”

하지만, 그런 여공 생활에 대한 평범해 보이는 서술이 아마도 그 때껏 다른 작품들이 잘 전달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지식인으로서 민중이라는 대상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시선이 도저히 실어나를 수 없는, 옆에서 바라보는 시선만이 가능케 한 사실주의가 이 외딴방이라는 소설을 특별하게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소설의 형식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대면하는 평행구조로 진행된다. 한 친구가 전화로 한 다음 얘기가 작가로 하여금 대면하기 힘든 과거의 나를 끄집어 내었던 게 아닐까 싶다.

“너는 우리들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네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걸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니. 넌 우리들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더라”

그 친구의 한 마디로 힘들고 불꽃같았던 시절의 "나를 찾는 고심어린 과정"은 또 한 번 시대 속에서 방황하며 삶을 힘겹게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을까? 30대 초반에 쓰여진 소설에서 보이는 아쉬운 부분들은, 그 힘겨웠던 삶의 무게와 솔직하게 자신의 얘기를 펼쳐 보이는 작가의 용기에 비하면 작게 보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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