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개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루터와 그의 개혁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폭넓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에 대한 정치적 지원의 바탕에는 로마를 향한 독일의 정치적 불만이 있었고, 여기에 루터 자신의 개인적 소명의식이 결합하면서 루터는 개혁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개혁가 루터의 목표는 정통 그리스도교의 회복이었으며, 그것의 핵심은 성경이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있었다.

1517년 '95개 논제'에서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루터는 개혁에 착수했다. 그보다 앞서 개혁을 시도한 인물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실패했던 곳에서 루터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의 배경에는 동료 및 다른 개혁가들의 활동, 인문주의와 출판 인쇄물의 혜택 등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정치 지도자들의 지지와 후원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종교개혁은 시초부터 정치적이었으며, 종교개혁의 운명을 결정할 사람은 루터가 아니라 카를 5세 황제였다. 황제는 개혁 세력에게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인 탄압을 가했고, 탄압에 맞서는 동안 루터와 그의 동료들은 지방에서 제국에 이르는 모든 층위의 정치와 얽히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교개혁은 정치와 복잡하게 얽혀들어 갔지만, 이 흐름에서 실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루터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루터의 95개 논제에는 '대사/면죄부'뿐만 아니라 교황에 대한 공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로마는 신속하게 루터를 파문했다. 로마의 대응에도 루터는 멈추지 않고 독일에 대한 로마의 착취와 폐해를 비판하는 글들을 출판했다. 루터의 저술들은 귀족들의 정치적 지지와 동료 학자들의 학문적 지원을 받으면서 로마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찼던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와 동시에 루터의 내면에는 개혁을 이끌도록 하느님이 자신을 부르셨다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로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루터는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신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이를 기초로 로마의 낡은 지침을 대체하는 신앙생활의 필수적 안내서들을 새롭게 펴냈다. 루터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개혁은 '하느님의 사업'이며, 자신은 그 일에 부름받은 '하느님의 대리자'라고 생각했다.

루터는 새로운 그리스도교가 아닌 정통 그리스도교의 회복을 원했다. 그가 바라던 그리스도교는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올바른 믿음과 선행 및 바른 성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다른 어떤 책보다 성경을 중시했던 루터는 성경을 직접 독일어로 번역했다. 루터의 성경 번역은 성경의 정확한 의미를 찾는 해석 작업이었으며, 해석의 기준은 복음이었다. 그는 복음을 그리스도에 대한 담론으로 정의했다. 이 복음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성경의 권위가 드러난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는 성경이 모든 쟁점에 대해 배타적 권위를 지닌다는 주장이 아니라 교회 안의 쟁점에 관해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의미이다. 루터에게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정의하고 강조한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중세 교회의 낡은 전통과 대립하며 그리스도교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혁이 실패할까 노심초사했으며, 실제로 돌이킬 수 없는 분열로 이어진 개혁의 결과는 그가 세웠던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비전이 실현될 수 없는 이상향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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