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믿음에 의한 의로움: 갈라티아서)


바울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믿음으로"와 "의롭게 된다"로 나누어 각각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바울이 처했던 당시 상황과 이 말을 해야 했던 이유도 함께 따져볼 것이다. "의롭게 된다"는 말부터 생각해보자.


바울은 "수동태 동사 '의롭게 되다'"를 사법적 의미 대신 일반적으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변화되다, 옮겨지다라는 의미로" 쓰고 있다. 바울에게 이 용어는 ""세례를 받"음, "그리스도를 입"음, 그분과 "하나"가 됨, "그리스도께 속함"이란 표현들"과 같은 의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마르틴 루터는 바울의 이 용어를 사법적 의미로 이해하면서 "한 그리스도인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은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루터에게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 "죄에 대한 가책"이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바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루터'라는 안경을 잠시 벗어 놓고, 바울이 처했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방인의 사도를 자처한 바울은 이방인의 할례 문제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충돌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들어오려면 "남자들의 할례를 비롯해 모세의 율법을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표준적 유다인이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바울은 창세기의 두 구절을 근거로 반론을 펼쳤다. ""아브람〔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주셨다"(창세기 15:6). "세상 모든 이방인들이 그를 통하여 축복을 받을 것이다"(창세기 18:18)." 따라서 "이방인들이 채워야 할 필요조건은 오직 믿음 뿐이다." 바울은 단순한 논리적 반박을 넘어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한 이들에게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분노한 것일까?


바울은 할례를 포함한 음식 및 안식일 준수 규정 등에 대해 "지킬 수도 있고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율법이라 보았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유다인과 같은 방식으로 살기를 "강요한" 데"에 분노했다. 이러한 강요는 구원받으려면 율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꼭 필요했던 것이 아닌 것처럼 된다." 바울의 분노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의 죽음과 부활로써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다는 신학적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에 들기 위해 율법을 지킴으로써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곧 죄에서 순종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율법 아래에서 은총 아래로" 옮겨지는 것, 이것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의 본질적 의미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 선언은 적대자들의 공격에 맞서 바울이 펼친 신학적 확신과 소명에 의한 강력한 변론이다. 바울은 이 확신과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보편종교로 확장해 나가는 그리스도교의 청사진을 그린다. 그의 설계는 4세기에 이르러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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