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
이도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주름살이 느는 것을 서러워하기보다 동네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기품이 더해짐을 흐뭇해하고, 점점 기억력이 떨어짐을 슬퍼하기보다 먼바다처럼 생각이 더 깊어짐을 기뻐하고, 글 읽는 시간이 차츰차츰 짧아짐을 안타까워하기보다 권태로운 소처럼 적은 글로도 많은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음을 흐뭇해하고,나이는 먹는데 더 높이 오르지 못하고 많이 갖지 못함을 안달하기보다 비보 숲처럼 낮은데 처하여 많은 이들 품을 수 있음을 즐거워하고,차츰 사람들이 멀어져감을 쓸쓸해하기보다 겨울 끄트머리에 먼길 떠나는 기러기떼처럼 함께 길을 걷는 사람 사이 정이 더 도타워짐에 거늑해지고, 사랑하고 베푼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음을 탓하기보다 바라지 않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함에 가슴 벅차고, 많은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함을 쑥스러워하기보다 한 노래를 더 원숙하게 부를 수 있음을 흥겨워할지니,세상이 정 모질고 몰강스레 두들기더라도 어두울수록 별이 맑게 반짝이듯 고통이 클수록 깨달음이 깊어짐에 기꺼워하자.

그리그리 또 그리 버티다 정녕 힘들거든,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기댈 언덕이 있는 한 그 삶은 의미로 빛나리니,
철없이 늙은 아내든 늙은 벗이든 찾아 술잔을 기울이거나, 늘 아름다운 저 산속 숲가에 고요히 앉아 능선과 하늘이 만들어준 여백에 쉼없이 기억을 수놓는 구름을 온몸으로 들이마시고 뱉으며 환희심으로 가득한 나를 다시 만나자.
하여, 채우기보다 비워지는 아름다움에 새록새록 물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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