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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마음을 치유합니다 - 트라우마를 넘어 내적 자기소외를 극복하는 통합적 심리치료
재니너 피셔 지음, 조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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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후반에 명상에 ‘아주’ 진심이었다.
배낭을 싸고 시골 민박집에 들어가서
일주일씩 나름의 용맹정진을 한 적도 많았고

어디 이름난 선생이 있다면
찾아가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암튼 그즈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노라면
자꾸 보이는 일종의 영상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소년이
비장한 표정으로 벌판에 서서
바람을 맞고 있는 장면이었다.

꽤 오래(1~2년 정도 반복적으로) 함께했던 장면이라.
막연히 저것이 나의 ‘내면아이’였나 싶었는데

나중에 상담심리와 최면, NLP 등
다양한 기법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우리 내면에 과거 트라우마로 인해
분리된 '부분들(Parts)'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당시 나름 클래식한 선(禪)적인 사고를 하던
나에게는 이게 정말 생소한 개념이었고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암튼 그랬다.

근데 이게 점점 이해가 되고 보니
명상도 잘 되고 임상에 적용하니
상담과 치료(라고 쓰면 좀 그런가?)도 잘 됐다.

이 ‘파트’라는 것은 이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근데 그렇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리해서
알아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게 우리인지라
해리된 '자기'들을 외면하고 무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고통은 더욱 가중될 뿐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이 고통이라고 한 것과
소태산이 파란고해(波瀾苦海)라고 한게
이 때문인 것이지...

암튼 최근 읽은 '조각난 마음을 치유합니다'에서는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먼저
내면의 안전감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또한 평소에는 외면당하던 상처 입은 '어린 자기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근데 이게 그냥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명상가의 관점에서 이 책을 보게 되는데

이 ‘파트’라는 것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가장 좋은 수단은 명상(이 킹왕짱임)이지 않을까?

이 책을 압축해서 요약한다면
"내 안의 ‘파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기 비난과 혐오 대신 연민과 이해의 자세로 바라보라.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받는 내면과 화해하고
점차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 될 것이다.

금방 되는 게 뭐 하나라도 있겠냐만
이 치유의 길도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다시금 책을 읽으면서 보니

들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당시 나의 내면 아이가 새롭게 이해도 되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필요성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변화시켜 외면하고 싶었던
또 다른 '자기'가 친구가 되는 것이
왜 치유와 직결되는지도 정리가 된다.
(난 극 T인데 책의 몇몇 대목에서 울컥함...;;;)

책이 좀 전문적이고 사전 지식이 있어야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최근에 이 쪽(심리, 명상, 치유 등)에
유행하는 소매틱, 내면가족체계(IFS), 마인드풀니스 등이
잘 어우러져 있어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꼭 추천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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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 마음은 삶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마음챙김
엘렌 랭어 지음, 이양원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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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삐죽 내미는 습관이 ‘있었다.
’ 과거형이라고 해서 지금은 입술을
내밀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뭔가 깊이 생각할 때 주로 나타나는 습관인데
몇 년 전에도 그렇게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 앉아 있다가
모친께 “꼭, 지 아부지처럼 하고 앉아 있네”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한 계기로 지금은 입술을
내밀 때마다 마음이 저절로 챙겨지게 되었다.
(안 내민다는 건 아니다! 안 내민다는 건!)
어떤 말이나 행동을 ‘생각 없이’ ‘무심코’ 하는 경우가 많다.
습관이 그렇다.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무의식에
차곡차곡 저장된 그것이 계기를 만나면 무심코 튀어나온다.
이것을 '마음놓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 인생 지가 조지’는 대표적인 사건은
주로 ‘마음놓침’에서 일어난다.
몇 년 전에 한 지인이 연예 상담을 해 왔다.
상대가 너무 좋아서 지속적으로 들이대는데
자기를 쳐다도 안 본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몇 번 해봐서 그 방법이 안 먹히면
전략을 바꾸든지 해야지 사람이 나무도 아니고
찍어대기만 하냐?”고 해주었다.
포커스가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맞춰져 있는데
이 사실을 놓치고 어떻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인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대인관계에서,
직장에서, 또는 사회생활을 하며 겪는 모든 문제는
직간접적으로 ‘마음놓침’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이 책은 흔히 ‘마음챙김’하면 떠오르는 명상에 관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명상에 대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아서
'명상가(ㅋㅋㅋ)'의 한 사람으로 반갑기까지 했다.
마음챙김과 상반된 개념인 ‘마음놓침’을 소개하면서
역설적으로 마음챙김의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저자인 엘렌 랭어는 “마음놓침은 도처에 퍼져 있다”면서,
마음놓침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크게 다섯 가지를 들었다.
‘숙련 또는 전문가라는 함정’, ‘선입견’,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 ‘시야를 좁히는 시간관’,
‘결과 지향적인 교육’ 그리고 ‘맥락의 힘’이다.
이런 이유로 마음을 놓친 채 살아갈 때 치르는 대가는 위력적이다.
우리는 편협한 자기상을 가진 채, 자기도 모르게 주변에 의도하지
않은 민폐를 끼치며 살아가게 될 수 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통제감의 상실, 학습된 무기력,
더 나아가 잠재력이 위축되는 것이
모두 ‘마음을 놓치고’ 살아가는 결과이다.
일상은 매일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런데 가운데 놓치게 되는 생생한 깨어남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우리의 생명력과 함께 말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구조나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대상을 접하면
그 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는
정신적 나태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익숙한 대상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때 우리는 마음놓침 상태로 끌려 들어간다”
오늘은 퇴근하고 늘 다니지 않던 샛길로 걸어가야겠다.
아침마다 의식처럼 진행한 아메리카노를 다른 걸로 대체해보겠다.
그리고 또 놓치지 않도록 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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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깨달음
스티브 테일러 지음, 추미란 옮김 / 판미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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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깨달음

스티브 테일러 (지은이), 추미란 (옮긴이) 판미동

 

보통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부사로는 일반적으로 흔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멋있는 뜻은 아니죠. 명사로도 특별하거나 드물지 않고 평범한 것. 또는 뛰어나지 않고 열등하지도 않아 중간 정도인 것정도니까 별다를 것 없는 그런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걸 한자로 풀어보면 좀 느낌이 달라집니다. ‘보통(普通)’, 넓고 광대하고 두루 미친다는 의미를 가진 보()와 통하고 환히 비춘다는 의미를 가진 통()자가 합쳐졌습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감싼다는 뜻의 보조(普照)’와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건지기 위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원통(圓通)’이란 단어로 설명합니다. 비범한 뜻을 담은 평범한 단어가 바로 보통입니다.

 

이런 의미로 새기다 보니 우리 법위 등급 여섯 가지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단계가 유무식, 남녀, 노소, 선악, 귀천을 막론하고 처음으로 불문(佛門)에 귀의한 사람들의 급인 보통급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거나 비천한 사람이라도 법신불의 품에서 두루 감싸 안아 한 가지 깨달음의 길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사람들인 것이지요.

 

인간의 지성이 담아낼 수 있는 가장 비범하지만 누구나 일으킬 수 있는 평범한 사건을 들자면 무엇이 있을까요? 종교체험 그 가운데에서도 깨달음 체험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님은 자신의 깨달음 체험이 일어나기 직전 몇 년간의 입정(入定)에서 깨어나 평범한 인간의 그것처럼 머리 빗고 손톱 자르고 세수를 했다고 합니다. 이외의 특별한 이적(異蹟)이나 치병(治病)의 기록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보통의 아침으로 깨달음의 빛을 뿌렸습니다.

 

책 한 권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보통의 깨달음이라는 제목의 도톰한 책입니다. 원제는 ‘The Leap: The Psychology of Spiritual Awakening (도약 : 영적 각성의 심리학)입니다. 뛰어넘다. 초월하다는 의미의 제목을 보통의 깨달음으로 옮겼습니다. 제법 그럴듯한 작명입니다. 이 책에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의 비범한 깨달음 체험이 따박따박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곳곳에 부처님이 계시고(處處佛象) 일마다 불공 아님이 없다(事事佛供)는 법문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저 높은 곳에서 벌어질 것 같은 각성(覺醒)의 체험이 이 책에는 아주 흔한 일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후 우울증을 겪던 여성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사람도 급작스럽게 깨어납니다. 서커스단에서 3년간 지극히 말을 돌보다가 깨달음을 얻은 이, 건강 문제로 금욕(?)을 하다가 어느새 깨달음을 체험한 사람 등 수많은 사례가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업종교인은 깨달음을 교조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유혹에 늘 시달립니다. 내가 얻지도 체험하지 못한 것을 가르쳐야 하는 이 황당함 속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깨어남이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깨어남은 끝이 아니라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깨어남은 길의 끝에 도달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길로 옮겨 갔다는 뜻이다.”

 

평정으로 온전하게 맞이해야 할 명상 시간은 깨달음에 대한 과한 갈망으로 어느덧 헐떡이는 깨달음의 경마장이 되고 맙니다. 한 방에 승부를 보려는 도박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깨어남은 찰나에 모든 걸 끝내야 하는 결투나 도박이 아닌 오늘도 변함없이 내딛었던 출근길과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퇴근길 그 사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이 책 보통의 깨달음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영적 체험을 나누는 시간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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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성소은 지음, 최진영 그림 / 판미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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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오강남, 성소은(지은이), 최진영(그림) 판미동

 

소는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에게는 친숙한 상징입니다. 힌두교에서는 신의 화신(化神)으로 숭상되기도 하고, 고대 이집트에서도 소를 태양신의 현신(現身)으로 보았습니다. ()을 닦는 분들에게도 수행의 과정을 드러내 보여주는 비유에 많이 쓰이는 대상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童子)나 스님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서 묘사합니다. 이를 십우도(十牛圖)라고 합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곽암사원(廓庵師遠)선사가 지은 선서(禪書)로 선()을 닦아 본래 마음을 찾아가는 순서를 밝힌 책입니다.

우리의 자성(自性), 불성(佛性), 영성(靈性)을 소에 비유하여, 마음을 찾아 깨치는 단계를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 가지 단계는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垂手)로 되어 있습니다.

 

소를 활용해 선을 설명한 또 다른 책으로는 한참 뒤인 명나라 때 보명 화상이 지은 목우십도송이 있습니다. 그 형식이 거의 비슷한데 곽암의 십우도가 본성을 찾아 이를 바탕으로 다시 세상에 뛰어드는 장면인 입전수수에서 마무리 된다면 보명의 목우십도송은 대상이 끊어지고 하나가 된 상태인 쌍민(雙泯)’으로 마무리 됩니다.

 

선종의 전통이 성성하게 살아있는 국내에서는 십우도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원불교에서는 목우십도송을 채택해서 공부를 합니다. 이는 열 가지 수행의 과정을 돈오점수적 또는 묵조선(묵묵히 앉아 있는 곳에 스스로 깨달음이 나타난다는 선의 관점)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곽암의 십우도는 돈오돈수적 입장에서 소는 인간에게 주어진 본래의 마음이므로 별도의 수행 없이 자각하기만 하면 되는 소입니다. ‘목우십도송에서 소를 길들이기 위한 고삐와 회초리가 동원되지만 십우도에서는 그것이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소는 그저 목동에게 자신을 맡겨도 저절로 돌아왔던 마음의 고향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그려집니다.

 

십우도는 좌선의 매뉴얼이라고 볼 수 있는 좌선의(坐禪儀), ()의 요체를 담은 신심명(信心銘)』 ․ 『증도가(證道歌)과 함께 선종사부록(禪宗四部錄)’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선 수행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책입니다.

 

십우도는 그림과 함께 함축적인 게송을 담고 있는 책으로 어지간한 내공으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힌 한글 도덕경예수는 없다와 같은 무수한 저서, ‘종교의 표층과 심층논의 등으로 많은 교무님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신 오강남 교수님과 예수의 말씀을 찾아 순복음교회와 성공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출가를 감행해 선수행자로 불조(佛祖)의 화두를 참구하기도 했던 성소은 선생님(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운영위원장)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이 출간했습니다.

 

특정한 종교적 전통에 의지하지 않지만 영성적인(Not Religious, But Spiritual)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 책은 몇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원문과 한글 영어 번역을 동시에 실어 기존의 해석을 과하게 뛰어넘지 않고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십우도 삽화가 책 읽는 맛을 더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단락을 마무리하고 거기에 해당되는 서적 두세 권을 동시에 소개해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여러 권의 독서를 한 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첫 단락인 심우尋牛에서는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와 오강남 예수는 없다를 동시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래 내 안에 있었지만 나의 무명(無明)과 미망(迷妄)에 의해 지금껏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의 무한한 가능성이다. 이 무명과 망상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나를 찾으려 발돋움하는 것이 바로 첫째 그림 심우(尋牛), 소를 찾아 나섬이다. 물론 이 소는 사람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사정이나 시기에 따라 다른 여러 가지를 상징할 수 있다. 독자는 각자 자기가 찾아 개발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소로 상정하고 그것을 찾아 나선다고 상상하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마리의 소입니다.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니다가 목동을 만나게 됩니다. 이 목동은 가족일 수도, 스승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에서 만나게 될 무수한 사람들 그리고 무수한 경계들일 것입니다. 아니, 결국 나 자신일 것입니다. 다만 열 가지의 장면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수백 수천 수만의 장면들이 소와 목동이 펼치는 한 바탕의 연극으로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이 길의 위에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게 될까요?

 

삶의 어느 지점이 다 이룬목적지가 될 수 있을까? 삶은 통째로 여정(旅程)일 뿐이다. 가면서 배우고, 배우며 기쁨을 맛보고, 나눔으로 배움의 가치가 더해 가는 변화의 과정이다. 내가 하는 나를 위한 공부에는 오직 하나, ‘믿음직한 나하나 있으면 족하다. 든든한 나는 샘솟는 힘의 원천인 얼나. 얼나와의 조우를 기대하며 각자 길을 찾고, 스승을 찾아, 자기 길을 가는 거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 여기,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그 길 위에 이 한 권의 책을 벗으로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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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감정 -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랜돌프 M. 네스 지음, 안진이 옮김, 최재천 감수 / 더퀘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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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간 불쾌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다. 일과 시간이 마무리 될 때면 그 불쾌한 기분이 더 증폭되었다. 그제 새벽에는 두세 번 정도 잠에서 깨었다 잠들었다를 반복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불성실한 태도로 논문 지도를 요청(?)해온 한 학생 덕분이었다.

 

이야기 하자면 길지만 졸업이 코앞인데 학년 중에 혼자만 논문 마무리를 못한데다가 지도에 따르지도 않고 더구나 버르장머리까지 없었다(라고 판단했다.) 그래 좋다. 나는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명상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상담하는 사람이니까... 나는...나는...나는...

 

내 위주로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주변은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지도교수 인데! 이런 꼰대력 대폭발의 이기적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렇게 울화통이 터지는 데 또 서평을 써야한다.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제목은 기분이 나쁘고, 대충 훑어본다.

 

질투는 비난, 폭력, 관계 파탄 같은 고통을 일으키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자연선택은 인간에게서 이 끔찍한 감정을 제거하지 않았다. ‘의과대학 출신의 세계 진화생물학 대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는 랜돌프 M. 네스는 그 이유를 생존과 유전자의 재생산이라고 꼽는다. 인간들이 생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자연이 불안, 우울, 슬픔, 수치심 등의 나쁜 감정을 인간이 느껴야만 하도록만들었다는 것이다.”

 

거부해도 달라붙는 이 감정은 결국 느껴야만 하도록 설계됐다는 것이라니. 요즘 내 심사를 느껴보면 수십 년의 마음공부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결국 느껴야만 한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몇 장을 더 넘겨본다. 심리학 서적이지만 과학적 연구결과가 탄탄하게 따라 붙는다.

 

연못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족을 위해 물을 길으려고 하는데 저 멀리 사자를 봤다고 치자. 우리 조상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사자의 힘에 감탄하고, 어떤 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사자의 밥이 됐다. 또 어떤 이들은 짐을 다 내던지고 제일 가까운 나무 위로 달아났다. 그들은 다음 날에도 살아남았다. 그들의 유전자는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그 불쾌한 감정에 의지해서 2~3일을 보냈다. 맞서지 말고 살살 이리 저리 굴리며 감정의 근원을 복기하니 흘려보낸 시간만큼 내 감정에 대한 이해는 깊어졌다. 책이 두꺼워서 절반 겨우 넘겼지만. 다 기록하지 못할 만큼의 인사이트가 넘치는 책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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