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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리더십 - 합의에 이르는 힘
케이티 마튼 지음, 윤철희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메르켈은 현대 정치인 가운데 가장 자주 회자되는 지도자입니다. 이제까지 메르켈을 잘 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메르켈에 관한 책이 나온 걸 보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메르켈을 잘 아는가?"
이 책은 이런 의문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결국 '나는 메르켈을 거의 알지 못했구나'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제껏 메르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건, 독일 총리, 여성 총리, 엄마 같이 푸근한 정치인 정도입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은 메르켈이 과학자 출신이란 겁니다. 물리학자. 동독 출신이란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통일 독일에 대한 기억을 가진 나로선 재밌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껏 그 어떤 나라의 지도자 가운데서도 과학자 출신은 본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보통은 직업 정치인이나 법조인, 군인 출신의 정치인이 많죠. 그런데 과학자 출신이라...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습니까?
메르켈이 과학자 출신이라 정치인으로서 갖는 미덕은 무엇일까요? 과학자는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뒷받침 할 증거들을 모은 후, 논리적 추론을 거쳐 비교적 움직일 수 없는 결론에 다가섭니다. 그렇다면 메르켈은 어땠을까요?
메르켈은 정치적, 외교적 협상 상대가 나타나면, 일단 합리적인 목표(가설)를 세웁니다. 그런 후 이 가설을 뒷받침할 자료들을 모읍니다. 통계적인 수치들도 포함합니다. 다음엔 이 자료들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합리적인 결론에 다가섭니다. 이 과정은 상대와의 협상 과정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감정이나, 정치적 자존심, 허영 같은 불순물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 과정을 거쳐 합리적인 합의에 이르는 겁니다. 중요한 건 결과물입니다. 메르켈이 목표로 한 건 구체적인 성과였습니다.
메르켈은 오바마와 달리 화려하고 영웅적인 연설과 거리가 멉니다. 그는 말이 앞서는 정치를 경계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실천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제 마음을 쏙 빼앗긴 메르켈의 매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말 많고 탈도 많고 무엇보다 싸움이 많은 우리나라 정치판을 생각하면, 메르켈의 장점이 더 도드라집니다. 나이스하지 않습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자에 대한 신뢰가 확 높아진 건 지나친 반응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