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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정성일.정우열의 영화편애
정성일.정우열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이 책의 표지는 고다르의 영화 <알파빌>의 안나 카리나가 폴 엘뤼아르의 시집을 쥐고 있는 장면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영화 속 도시 알파빌에서 '사랑'과 '왜?'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며 지금 시네필들에게 부족한 건 그 두 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영화를 본 다음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프레시안 인터뷰에서)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정도까지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들 중에 정성일키드라는 호칭이 있다. 정성일씨의 글을 읽으며 감탄과 경외를 가슴에 안고, 정성일을 한국의 앙드래바쟁으로 하고 자신은 제2의 정성일이 되리라 꿈을 꾸던 바로 그 아이들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비록 로드쇼 시절의 정성일은 알지 못했지만, 우연히 책방 앞에서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 오리지널 포스터를 준다는 문구 하나에 샀던 키노 1995년 5월호에서 난 처음 정성일이라는 이름을 알았다. 그건 어쩌면 90년대 중반 한국을 휩쓸었던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영화에 대해서 그렇게 바보같이 진지했던 그들의 시선은 나에게 새롭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과 변방의 새로운 영화를 알려주곤 했다. 그렇게 키노와 함께 7년을 보냈고(키노는 2002년 폐간했다.) 난 정성일씨를 포함해 그들의 글에 빠지고는, 다시 키노를 정성일씨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물론 다른 잡지 등에 기고하는 글을 볼 순 있었겠지만 그래도 키노가 없는 정성일씨의 글은 왠지 미완성같다.)
지금처럼 인터넷 따윈 없었던 그 시절의 키노는 다른 영화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으며 그리고 영화를 가르쳐주던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지금 정성일씨의 첫번째 영화평론집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가 나왔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의 평론집을. 그저 잡지의 한귀퉁이에 소개되는 글이 아닌 전체가 그의 글로 쓰여진 책.(사실 키노도 어떤 의미에선 정성일씨의 책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책은 새롭게 쓰여진 평론집이 아니라 과거에 쓰여진 글을 모아놓은 책일뿐이지만(그래서 가령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한 추도문은 이미 2번 정도는 읽었던 글이다) 그래도 그의 글을 책의 형태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소위 정성일키드에겐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가.(약간의 과장은 이해해자)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분들은 유의하자. 이 책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 아마도 저자의 말처럼 어떤 글을 싣고 뺄지는 전적으로 출판사에서 정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어느정도의 대중성을 고려할 수 없었던 출판사의 선택 상 가능한한 쉬운 글들을 선별하려했겠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다. 그건 들뢰즈를 푸코를 벤야민을 아도르노를 경유하고, 존포드를 장르누아르를 고다르를 오즈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책의 제목은 들뢰즈의 글을 인용했다고 한다.) 그가 그리는 지도를 따라가기에 우리는 여전히 앎이 부족하고 봄이 모자르다. 그가 언급하는 수많은 영화들을 우리는 보지 못했고, 그가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왜 그의 책을 글을 읽냐고? 나에겐 그걸 알기 위해서다. 난 여전히 모자르며 내가 아직 읽어야하고 보아야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다. 그럼으로써 그가 가지고 있는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모자람만 알 뿐이라면 책을 읽고 난 후의 허탈감이라는 후폭풍만 남지 않을까. 이 책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를 통해서 나는 영화가 세상을 만나는 방식을 배운다.(제목을 보라!) '영화는 결국 그 영화가 만들어진 역사 안에서, 그 역사에 대해서, 그 역사를 향해서 만들어진 것이다.'(87p) 난 진심으로 영화가 세상을 만나는 곳에서 영화의 진정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일반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이 영화는 얼마나 관객이 들 것 같아요?라면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것'이 참으로 '황량한 풍경'이라고 생각한다.(93p)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거장이 세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들의 표현을 궁금해한다.(차이밍량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만일 당신이 그저 어느 순간 우두커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거기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문제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다면, 왜 영화를 보는가? 차이밍량은 그러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서 영화를 만든다.(455p)) 말하자면 정성일씨의 글과 책은 내가 만날 수 없고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영화로의 초대이며, 궁금증에 대한 도발이고, 잃어버리고 잊어버렸던 영화에 대한 기억의 소환이다.(얼마만에 들어보는 고전영화 감독들의 이름인가!)
책 제목은 들뢰즈의 문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그 영화가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세상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영화를 사랑하는 건 세상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말하자면 영화를 사랑하고 또 하면서도 갈증에 시달리는 것은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만족할만한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결코 만족해선 안되는 사랑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55p)
대답이 될까?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 책은 영화를 바라보는 방식과 나를 바라보는 방식을 동시에 가르쳐준다. 그가 허우샤오시엔에 대한 글에서마지막을 장식했던 글. '나는 빨리 그의 다음 영화를 볼 수 있을만큼 더 성장하고 싶다. 아직도 나는 그의 영화 앞에서 미숙한 어린아이다.(438p)' 난 빨리 그의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을만큼 더 성장하고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직도 난 그의 책과 글 앞에서 미숙한 어린아이다. 다음에 읽을 책은 동시에 나온 또 하나의 책 '필사의 탐독'이다.
ps 행여 쉽지 않다고 욕하지 말지어다. '모든 영화는 아무나 볼 수 있다. 물론이다. 그러나 그걸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405p)' 책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