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이충걸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충걸의 두번째 단행본인 것 같다. 난 이충걸을 좋아한다. 그의 첫번째 단행본 <해를 등지고 놀다>부터 그랬다. 얼마 전에 주문한 세권의 책 중 마지막 책이다. 얼마나 읽고 싶었는데, 식탁위에 놓고 보고보고 또 보면서 재미없을 듯한 책을 먼저 읽으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마치 양반집 노인네가 젊은 여자를 탐하듯 호시탐탐 읽기를 기다려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이상한 인간인 듯. 그냥 익으면 될 걸.

이충걸은 독특하다. 그의 문체는 서구적이며 도시적이지만 보이지는 않지만 말하고 싶은 마음을 매우 사실적이고 탁월한 비유로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다. 그는 엄마를 몹시 사랑했던 모양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째서 그토록 애틋하게 엄마에 대해 적을 수 있을까? 물론 이충걸의 문장은 가끔씩 장난스럽고 억지도 부린 듯 하다. 그러나 난 그 장난과 억지까지도 사랑스럽다.

'어딜가니?'
'응, 친구 아들이 전시회 한데.'

넌, 친구 아들이 벌써 그렇게 큰 걸 보면 기분이 어떠니?'

'아유 자랑스럽지, 뭐'
'그리고?'
'그리고, 뭐?'
'정신차려, 이쪽저쪽 동서남북으로 정신 흐트려놓지말고.'
'넌 연인없니?'
'엄마, 묻겠는데, 내가 딴 여자 만나서 그 여자, 엄마보다
더 좋아하면 엄만 좋겠어?'
'그러나 그게 자연이다.'
'엄마는 나하고 사니까 좋아?'
'그래, 왜?'
'뭐가 좋은데?'
'내가 너말고 누구한테 가서 사니?'
'단지 그것 때문에?'
'그래.'
'아유 매력없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아들하고 사니까 좋지.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죽도 못 먹었을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50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즈음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고 있다. 사실 읽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는데 아직 중반도 들어서질 못하고 있다. 문자 중독자인 나는 요즈음 문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신문도 며칠 쌓아놓기만 하고 있다. 게으름이 극치에 달하고 있다. 느림은 내 몸 자체이다. 아마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느렸던 것이 아닌지. 내가 느린 것에 대해서 나는 상당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보다도 더 느린 충청도 사람과 함께 사는지도 모른다. 나는 최소한 그 느린 사람보다는 조금 빠르다고 자부하며 산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그토록 괴롭고 답답했던 느림은 어쩔 수 없는 굴레가 아니라 선택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렇다. 나는 느림을 선택했을 뿐. 어쩌면 나의 느림은 가면일지 모른다. 느림 안에 있는 나의 심장이 얼마나 뜨거운지 나만이 알고 있으므로. 너무 뜨거워 끌어 안을 수도 없는 심장을 갖었기에. 때론 펄펄 뛰는 고등어의 꼬리처럼. 그래서 조절력이 늘 부족했었지만. 삶에서 내가 느렸기 때문에 잘 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조금 더 빨랐어도 내 모습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