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명작선 소설 세트 - 전4권 한국문학 명작선
한국언어문화연구원 엮음 / 한우리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내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격리시켜 놓는 부루카를 입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눈만 내놓고 온몸을 다 가려버려야 하는 그 옷.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재산의 하나로 간주되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미국에 망명와서 의사가 된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 이란 소설이다.


부루카를 처음 입은 마리암은 처음에는 치맛자락이 발에 걸려넘어지고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종의 해방감도 맛보았다고 말한다. 부루카는 일종의 창 역할을 한다.


물론 부루카는 “해방”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한 구속과, 핍박과, 인권유린이 담겨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부루카를 입는 지방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보고싶지도 않았다. 세계의 골칫거리로 등장한 그들의 삶. 그것에 자연스럽게 동조했다. 보지 않는다고 그들의 삶이 없는 것인가? 한번쯤은 들여다 보자, 했는데 이렇게 “쓴 쑥”일지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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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그곳 사람들의 삶이 희생되고 유린되고 있다. 왕정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공산당도 등장하고, 공산당이 물러간 다음에는 권력을 잡고자 하는 각 파들의 대결, 미국의 공격등 어느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나는 건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남자들의 도움없이는 여행도 할수 없는 여자들의 삶은 현실의 땅의 일이 아닌 것만 같다.


정치적인 상황이 변할때마다 아프가니스탄을 구하기 위해 아들을 전장에 내보내야 했던 부모들이 있고, 전사자가 생기고, 나라는 또다른 집단이 권력을 휘두르고. 탈레반이라는 흉악범들은 모든 시설물을 파괴하고, 국민들을 우매화시키는 극단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언제 희망의 날이 밝을 줄 모르는 그런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나는 이따금 내 아버지가 그가 가진 날카로운 칼로 명예롭게 딸을 죽일 배짱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게 나한테 더 좋았을지 모른다.”

“아마 너한테도 더 좋았을 게다. 네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슬픔을 맛볼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 아버지는 겁쟁이 이었다. 그에게는 배짱이 없었다.”(14쪽)


자신을 죽이지 않았던 아버지를 원망하는 이 여인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딸아이인 마리암에게 너도 “태어나지 않았어야 해”라고 말하는 어미는 무언가 상당히 비틀린 것 같아 보였다.


나나의 딸은 아직은 꿈과 환상이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만나러 일주일에 한번씩 자신의 집을 방문한다. 아버지는 선물을 갖고 오고, 딸인 자신을 무릎에 앉히고, 내 어여쁜 딸이라고 말해준다.


엄마가 아빠를 비난하는 것과 다른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는다. 일하던 집 주인의 아이를 임신한 나나는 식구들에 의해 추방당한다. 그리고 외딴 오두막집에서 마리암을 키우며 살아간다. 마리암은 사생아다. 사생아는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단다. 한국이나 아프간이나 그점은 같다.


학교를 가고싶어하는 마리암에게 학교에선 “우리같은 여자들이 배울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참는 것”밖엔 없다며, 마리암의 요구를 일축한다.


처음엔 아무래도 나나의 사고방식에 적대감이 인다. 그녀의 닫힌 외곬수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마리암도 차차 인생을 겪게 된다. 자신에게 친절했던 아버지가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것도, 자신을 밀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먼지방 나이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은 그녀가 15살때다.


마리암의 엄마 나나는 딸의 가출에 목을 매어 숨진다. 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하길 바랬던 그녀는 결국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영화관에서 생일선물로 피노키오 만화영화를 보고싶어해서 아버지를 찾아나섰던 댓가로 마리암은 엄마를 잃는다.


그때부터 인생은 거의 무채색으로 흘러나간다. 검정색에 가까운 80%의 회색계열로. 그녀의 남편 라시드는 그 당시 40살쯤됐다. 구두수선공으로, 마리암이 아이를 임신하자 기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몇 번의 유산을 끝으로 마리암은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그의 무시, 냉대, 폭행이 이어진다.


그리고 또한명의 여인 라일라.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집안에서 자란, 평범한 소녀였지만, 전쟁통에 부모를 잃는다. 현대여성에 가까웠던 그녀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전장에서 잃고, 자신의 신념에 경도되어 살아가는, 정신적 충격으로 제대로된 일상생활을 못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라일라 가족이 국외탈출을 계획한 날, 폭탄으로 부모를 잃고 라시드의 집에서 도움을 받는다. 라시드는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그리고 남자의 육욕으로 라일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고자 한다. 라일라는 그 당시 타리크의 아이를 임신했고,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거진 60세에 가까운 노인의 첩이 된다.


라시드는 두 여성을 지켜준다는 미명아래 두 여인 위에 군림한 군주이다. 늙은이 주제에 14살 라일라를 첩으로 들이는 것이나, 그런 다음에는 첫부인 마리암에게 행하는 행동들, 그 모든 것들이 역겹다.


아프간의 여성들에게 삶의 혹독함은 너무 일찍 찾아온다. 겨우 열다섯 정도에 결혼을 해야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혹은 여러 여자를 거느린 남자의 아내중의 한명이 되어, 삶을 살아낸다.


소설은 적대적이었던 처첩간 마리암과 라일라가 서로 정을 주고받는 모녀같은 사이가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사실 여자들의 사회활동이 완전히 제한된 곳에서 한집에 살지 않는한 이야기가 구성되기도 힘들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의 도움으로만 외출할 수 있는 그런 여자들이 스토리를 갖기 위해선 처첩이라는 발상도 나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여자들이 살기에 피폐한 환경이라는 말이다.


라시드는 사람을 시켜 라일라가 좋아하던 청년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한다. 라일라에게서 태어난 딸에게는 관심이 없고, 두 번째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 보통의 남자들처럼 자식에게 온갖 사랑을 퍼붓고, 아들과 자신은 집안의 다른 여자들(두 처와 의붓딸) 위에 두는 집안의 신분체계를 공고히 한다.


라일라를 찾아온 옛 애인 타리크 때문에 라일라를 죽이려 했던 라시드를 마리암이 쳐죽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책임을 다하고 나머지 가족들을 구해내는 것이 마리암의 남은 삶의 모습이었다.


라일라와 타리크 그리고 두 아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피신했다가, 다시 고국에 돌아가 고아원 운영등의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소설이 끝난다.


라일라는 인간다운 삶을 맛보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마리암은 라시드 살인의 책임을 온전히 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참 지난한 소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한 정치가 사람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고 한다. 와중에 여자들에 대한 아프간 남자들의 전횡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심각함을 넘어 그 사회에 명백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새로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프간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것 같다. 교육이나 신념, 가치관을 고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같은 하늘아래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처참한 그들 내부를 고발한 소설이어서 사람들이 열광한다 싶다. 그저 조금 줄거리를 나열했을 뿐인데도 글쓰는 게 힘겹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알수 없는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이시간에도 꾸준히 발생한다. 인간의 역사는 어디로 나아가는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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