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윌리엄 H.맥닐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이 글을 쓴 그의 의도를 여러 번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역사학자로서, 과거의 역사학자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질병의 역할을 무시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갖가지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 양상의 변화가 인류 역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저술된 것으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인류 역사에서 전염병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현 시점에서 그다지 낯선 주제는 아니다. 대표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전염병의 문화사> (아노 카렌 지음)는 이 책과 굉장히 유사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또,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일부분만을 조명하고는 있지만 <생태제국주의> (앨프리드 크로스비 지음)도 이러한 맥락을 같이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록 유사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더라도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와 <전염병의 문화사>는 약간 다른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유사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는 역사학적으로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바라 보고 있다. 즉, 전염병과 인류 역사 발전의 상호관계에서 어떤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수 많은 미생물에 의한 많은 전염병들의 영향을 세분해서 보기 보다는 일반론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또, 미생물의 인체 기생을 미시기생이라고 칭하면서, 이에 대응되는 국가나 권력의 인간 기생을 거시기생이라고 칭하며 이 두 가지 기생현상을 통합적으로 보는 시각이 매우 흥미롭다.

다만, 한 가지 흠은 비교적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어서 최근의 새로운 질병에 대한 논의는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은 단지 시간적인 요인만으로 볼 수 없는 다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감염병학적인 연대기로 볼 때, 이 책이 저술된 1970년대는 인류가 이제 전염병들을 박멸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시기라는 점이다. 반면, 1980년대를 거치면서 AIDS라는 새로운 전염병의 유행, 항생제 내성 세균의 등장으로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시각이 변화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에 출간된 이 책에서는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현대적 시각이 반영될 수 없었고, 현대사에서 전염병의 역할도 고려될 수 없었다.

이런 모든 이 책의 특성은 <전염병의 문화사>와 대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염병의 문화사>는 비슷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각각의 전염병의 특성에 따른 비교적 세분된 영향들을 볼 수 있고, AIDS를 포함한 최근의 주제들을 볼 수 있다.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를 읽을 때 한 가지 짜증났던 점은 저자의 주장이 단정적이지 못하고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추측으로 일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점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를 회피하는 학자적 특성으로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학자적 특성은 다소 강박적인 참고문헌 인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주제의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을 위하여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와 <전염병의 문화사>를 다시 짧게 이야기한다면 전자는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려는 독자, 후자는 의학, 미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려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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