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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나란토야 - 상
이준희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많이 특이하고(작품의 색깔이 정서적으로 동양적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세계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요) 깔끔한 전개가 돋보이는 (사전준비가 상당히 지난했으리라 여겨지는) 멋진 작품입니다.
이준희 작가의 전작들을 속 끓이며(좋은 의미가 아님..)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던 저로서는 한시간 정도의 킬링타임용으로써 그저 알맞은 분량에 점수를 두어 도서대여점에서 상권만 달랑 빌렸더랬지요, 그런데, 그만, 순수하고 씩씩한‘아로’의 매력에 ‘발란’ 못지않게 홀딱 빠져서는 그날로 당장 상권· 하권을 모두 주문하고야 말았지요.~(^o^)>
먼저 우리의 여주 나란토야는, 중세 중앙아시아 투르판이라는 곳에서 풍족하지 못한 생활이지만 수사님들의 사랑 속에 자신을 천애고아 ‘아로’라고 알고 자라 막 성인이 된 어느날 수사님들로부터 자신의 본명은‘나란토야’이며 아기일 적에 귀한 집의 아녀자였던 어머니가 자신을 수사님들께 부탁하면서 반지와 상아빗이 든 비단주머니를 남긴채 운명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가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은 것에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그리고 자신을 키워주신 수사님들의 소원인 교단의 통사가 되고자)남장을 한 채 수사님들과 함께 다마쿠스로 사막 고행을 시작하게 되지요.
그리고 남주 발란백작은, 자신의 아버지가, 사랑하여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으면서도 마녀로 몰린 무슬림 어머니를 지켜내지 못하고 끝내 자살하는 모습을 어린 혼혈 아들에게 보게 해 버린 것을 용서할 수 없어 교회와 아버지를 증오하다 못해 이십대 중반인 나이에 전혀 걸맞지 않은 인간미를 모두 상실해 버린 살인귀가 되어 온갖 약탈을 일삼아 착복해 버리는 (타락한)십자군으로써 공을 세워 불모의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고독하고 진인한 자신의 분신인)크루크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아로는 다마쿠스로의 고행 중 졸지에 무슬림과 발란의 십자군에 차례로 포로가 되어 남장여자라는 것이 들통나 겁탈당할 뻔하지만 포악하고 뻔뻔하면서 의외로 귀여운 반란이 아로를 어여삐 여기는 바람에 발란의 소유가 되어 크루크성에서 성적인 무지함(진짜로 선머슴 같았으나 향기 있는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그 모습이 흥미롭지요)과 선천적인 당당함(남성위주의 집단에서 포로라는 신분에 있으면서도 기죽지 않는 그 꿋꿋함), 그리고 나름대로 올곧은 성격을 무기로 발란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뿌리 찾기(나중에 아버지도 만나는 기쁨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걸머쥐게 되지요.
특히나 후반으로 갈수록 여타 로맨스 소설(또는 역사소설)의 남주들처럼 자기 것은 몽땅 다 반드시 지키고 싸움은 무조건 이기며 절대로 많이 잃는 법 없는 지배자의 모습으로만 일관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모하는 발란에게 특히 더 마음이 가더군요.
더불어 아로를 길러주신 부모님과 같은 수사님들이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아로를 아껴주는 보호자로서)쭉~ 출연하는 것도 맘에 들었어요.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빠져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동방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대한민국이 아닌 이국적인 장소(사막, 오아시스, 지중해로 보이는 해변 기타 등등)에서 동양적이 아름다움을 지닌 아로와 함께 있는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질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거칠 것 없이 내리 쬐는 작열하는 태양아래 느릿느릿 움직이는 카라반 속에, 또는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에 흩날리는 피냄새 가득한 전장 속에서... 너무도 씩씩하고 장한(물론 조금 덤벙대긴 합니다만) 매력 만점의 여주 나란토야(저 개인적으로는 ‘아로’라는 호칭이 더욱 친근감 있던걸요)의 모습이 파노라마로 주욱~ 펼쳐져 보이는 것 같아 포근포근한 결말에 기쁨이 더 커졌었답니다.
물론, 이제는 이준희님이 언제 신간을 내실까... 눈을 번뜩이고 있는 중이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