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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이 있는 풍경 - 삼국유사 사진기행
김대식 글, 사진 / 대원사 / 2002년 3월
평점 :
다시 찾은 경주는 한때 화려했지만 이제는 낡고 고단한 잔해로만 남은 옛왕조를 목도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슬프고 아련했다. 불교의 이념으로 국치를 한 신라는 찬란한 불교문화로 그 화려함을 자랑한다. 현세와 무아를 제 입맛대로 구워 만든 온갖 조형물들은 형태와 기교 이전에 전설만으로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신라에서는, 악귀가 악귀만이 아니며, 선이 꼭 선하지만도 않다. 신과 인간이 한데 뒤엉키고 어우러져 악하기만 하거나 ,선하기만 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
그들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며, 권선징악으로 죄의 대가를 물을 뿐이다. 때로 무섭고 격렬하지만, 하나같이 애와 선을 가졌다. 더구나 인간과 신의 경계는 없다. 오히려 인간이 신의 허물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일도 있으니 불교와 민간신앙, 토테미즘이 결합된 신라의 사상이 지금보다 인간적이니 재미있는 일이다.
기와 한장에도 예술은 살아 숨쉰다. 문고리 하나, 창살 하나. 어디엔들 수고와 예술이 결합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신라인의 예술은 진정 장인의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뤄 유형의 문화재를 창조해 내는 그 창의력과 예술성은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아련하고 그립다. 이 세기에 무엇이 있어 완벽의 장인정신을 말할 것이며, 이 시대에 어떤 진정이 있어 예술과 자연을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삼국유사의 궤적을 따라 장인정신을 입증하는 아름다운 흔적들을 한 데 모은 <처용이 있는 풍경> 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역사가 따로 떨어질 수 없음을 낡은 사진과 소외된 신들에 관한 사진으로 반증하고 있다. 역사는 이미 지나버린 것이 아니라 흘러가고 다시 되돌아오는 자연의 이치이고 우주라고 했다. 현재는 역사를 발판으로 존재의 이유를 얻으며, 역사는 현재의 흐름으로 또 되돌오게 마련이다.경주는 반목을 거듭해온 우리 역사에 유례없이 공존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곳이다.
낯설음과 아늑함을 한곳에 갖고 있는 경주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새롭다. 내가 나의 과거를 낯선 곳에서 만나는 기분이 이러할까. 혹시 내가 경주 이 곳의 어느 땅을 일구고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며, 혹은 이땅 어딘가에 팔베게 하고 누워 지금의 이 하늘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이 땅, 이 하늘 어느 곳 하나 그저 지나칠 곳이 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