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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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은 바다의 밑바닥을 걷고 있는 듯한 묘한 나날을 보냈다.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와도 나에겐 그것이 잘 들리지 않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그것을 듣지 못하였다. 마치 내 몸 주위에 무언가 빈틈 없는 투명 유리막이라도 둘러쳐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막 때문에 나는 외계와 제대로 접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은 무력하지만 이렇게 되어 있는 한, 그들도 나에 대해 무력할 것이다.
나는 벽에 기대어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배가 고파지면 내 주위에 있는 것을 씹고, 물을 마시고, 슬퍼지면 위스키를 마시고 잠을 잤다. 욕탕에도 들어가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사흘이 지나갔다.-402p쪽

의식이 턱없이 이완되고, 음지 식물의 뿌리처럼 물컹하게 부풀어져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고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말아]라고 하던 나가사와이 말을 돌연 생각했다.-403p쪽

너와는 달리 난 살려고 결정했고 그것도 내 나름대로 올바르게 살겠다고 결정했다.너도 틀림없이 괴로웠겠지만 나 역시 괴롭다, 정말이야. 이렇게 된 것도 네가 나오코를 남겨 놓고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녀를 절대로 버리지는 않을 거다. 난 그녀가 좋고 그녀보다는 내 쪽이 강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난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다. 그리고 성숙해질 거야. 어른이 되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지.
난 지금껏은, 열일곱, 열여덟인 채로 있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아. 나는 십 대의 소년이 아니니까. 난 책임이란 것을 느낀다. 아아, 기즈키, 난 너와 함께 있었을 때의 내가 아냐.난 이미 스무 살이 된 거라구. 그래서 난 계속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404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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