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스 파시즘
노혜경.진중권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페니스 파시즘. 미약하나마 전류가 몸을 관통하는 듯한 선정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내가 찾고 싶은 단어는 이것이었는지도 몰라. 특히나 요즘 나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여러 성폭력/성희롱 사건을 접할 때마다, 대체 지겹게도 반복되는 이 야만과 폭력의 구조가 무엇인가를 규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문학씩이나 한다는) 박남철, 반경환의 여성시인 모독 사건을 중심으로 한참 논란이 되었던 운동 사회 내 성폭력 가해자 실명공개, 부산대 웹진 ‘월장’에 대한 예비역들의 테러(?) 등을 다루고 있다. 강준만, 진중권, 노혜경, 이명원 등 쟁쟁한 논객들이 비판의 칼을 들었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나의 분노심을 자극한 것은 박남철, 반경환의 여성 시인 모독 사건에 관한 글들이었다. 박남철 시인이 어떤 문학 잡지에 올렸다는 욕시(이걸 시라고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언어를 수단으로 한 폭력일 뿐이었다)와, 이를 두둔하고 나선 반경환, 그리고 이후 침묵으로 반응한 한국의 문학계까지,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나는 분노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가장 엘리트 그룹에 속한다는 시인이자 교수 김정란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했다는 사실은 전선이 어디에 있는지를 더욱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가 시인이든, 교수든, 여염집 처녀이든, 창부이든 폭력과 야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회의 남자들은 배웠다는 지식인이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마초든 성에 관한 의식수준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은 최근에 있었던 추미애 의원을 둘러싼 스캔들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정 받는 유능한 국회의원 추미애가 취중에 몇마디 상소리(‘곧은 소리’에 가까운)를 했단 이유로 물어뜯기고 할큄을 당했던 사건을 상기하라. 회기 때마다 TV를 짜증으로 물들이던 멱살잡이, 욕지거리꾼(주로 남성)들이 그러한 일로 언론의 밥이 되어버린 일이 있었던가?(있다고 해도 그건 의례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기는 일이 대부분)

사태가 이 지경이니 이 책을 읽으며 분노를 피할 도리가 없다. 나는 씩씩대다가 혀를 차기도 하고 짜릿한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며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렸다. 막연히 ‘이게 대체 뭐야?’라며 짜증만 내던 문제들이 여러 각도에서 조명이 되니 보다 선명해졌다. 한국사회의 야만적인 마초근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어나려는 시점에서 이 책이 그 맥을 적절히 짚어주었다고 생각한다.

p. s.
박남철, 반경환 여성 시인 모독 사건을 다룬 몇 편의 글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논자마다 이 사건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노혜경, 이명원, 강준만 이 세 사람 중에서 문제의 핵심을 ‘성차별’과 ‘성폭력’에 둔 것은 노혜경 시인 밖에 없었다. 강준만은 이 사건을 ‘진보 상업주의’의 결과로(진보를 가장한 창작과비평사에 대한 비판), 이명원은 ‘문인 신비주의’의 결과로(문학을 하는 예술가는 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방종에 허용되는 분위기를 비판), 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난 이 사건이 창작과비평사가 아닌 다른 진보적인 단체 혹은 지식인 그룹에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문인을 굳이 신비하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런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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