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후감 쓰려 워드 열어 놓고 몇 십 분 멍 때리고 있다. 도대체 뭐라고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이 책은 <야생 종려나무>와 <노인> 두 작품을 교체로 번갈아 실었다.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결국 어느 한 점에서 만나는 결말을 늘 염두에 두게 된다. 그렇게 되는지 아닌지는 알려드리지 않겠다.
먼저 <야생 종려나무>.
책을 열면 바닷가 이층 오두막집과 그 옆집. 집 주인은 48세의 통통한 의사. 이곳에서 사는 건 아니고 여기에서 6km 떨어진 시내에 전기가 들어오는 회반죽으로 벽을 바른 집에서 살면서 이곳을 별장 비슷하게 여긴다. 의사는 주립대 의대 4년, 뉴올리언스에서 인턴생활 2년을 제외하고 나면서부터 줄곧 한적한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 전혀 적성에 맞지 않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는 20세기 초반의 잘 큰 시골 범생이답게 의사 면허를 따 고향에 돌아온 다음 해 아버지가 골라준 배필과 결혼해서 아직까지 아이 없이 살고 있다. 아내가 이재에 밝아 결혼 10년 후에 바닷가에 이층 오두막과 옆집을 사서 휴가객에게 주 단위로 이른바 팬션업을 하는데 이게 의외로 쏠쏠하다.
이 두 오두막 집 옆에 종려나무가 서 있다. 바닷가라서 바람이 불면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야생의 소리를 내며 서로 부딪는 것이 인상 깊다. 제목이 이 장면에서 나왔다. 야생 종려나무가 야생 종려나무이려면 반드시 조금은 거센 바람이 불어야 한다. 그래야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야생의 소리”가 날 터이니.
독자는 처음부터 헛갈릴 수도 있다. 포크너가 의사 부부, 특히 의사에 대해 조금 과하게 정보를 주어, 중년의 의사가 작품의 주인공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아니다. 나흘 전에 남녀 한 쌍이 별장 옆 건물에 두 주일 일정으로 들어왔다. 이들이 진짜 주인공들.
여자는 어딘가 두려움에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노란 눈동자를 하고, 자크가 옆구리에 달린 여성용 바지가 아니라 격식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다리에 달라붙는 남성용 바지를 입은 여자는 쾡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의사가 척 보니 단순히 마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수척한 모습이다. 분명히 병든 모습. 1기 아니면 2기. 어쩌면 3기일 수도 있지만 심장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직 독자는 눈치채지 못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이이의 적성에 맞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 돌팔이 비슷한 지는 모를 단계라서.
작가 포크너가 묘사하기를, 여자의 증오에 찬 시선은 인류 전체를 향한 증오, 인류 전체가 아니라 남자들을 향한 혐오로 보인다. 의사 부부는 이미 알고 있거나 적어도 눈치채고 있었다. 이들이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라는 것을. 숱한 사람들을 겪은 부동산 중개업자가 틀림없다고 귀띔을 해준 상태. 그러나 부부는 이 사실이 매우 불쾌하지만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한다. 만일 말이 나왔다 하면, 그 순간에 의사가 이들을 내보낼 것이란 걸 둘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받은 2주치 집세를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어서. 그리고 따져 보니 그들, 숙박객의 전 재산이 20달러뿐이고 그것도 3일 전 이야기이며 여자 상태가 좋지 않아 인정상 내보내기가 껄끄러워서.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남자 해리 윌본이 의사가 머무는 2층 오두막집의 현관을 두드린다. 강한 바닷바람이 예의 종려나무 잎사귀에서 날카롭게 버석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는 한 밤중, 윌본은 집주인에게 급하게 의사의 왕진을 요청하는 전화를 해야 하겠다고 하고, 그는 자신이 의사라고 밝힌다. 해리 윌본과 함께 묵고 있는 여자 샬럿 리튼마이어가 피를 흘리고 있단다. 의사는 생각한다. 아하, 폐의 문제였구나. 심한 각혈을 하고 있다니.
해리 윌본. 나이 많은 의사 아버지가 두 번째 결혼을 통해 낳은 막내 아들. 두 살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아들의 의대 수업료와 재학중 생활비로 사용하라고 2천 달러를 상속했다. 자신이 어렵게 돈을 벌어가며 의사가 됐던 시절에 필요했던 2백달러의 열 배에 달하는 돈이니 충분하리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19세기 말의 관점이었을 뿐이라서 해리는 의대 4년, 뉴올리언스에서 1년 인턴 생활하는 동안 지독하게 근면해야 했기 때문에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딱지도 떼지 못했다.
그러던 하루, 절친이 강압하다시피 파티에 함께 가자고 재촉해 그의 정장을 빌려 입고 참석한 파티에서 필생의 여인을 만난다. 이이가 바로 샬럿 리튼마이어. 천생 신사이자 부르주아인 프랜시스 리튼마이어의 아내이자 두 딸의 엄마. 둘은 만나자마자 확 불이 붙는다. 물론 한 번도 사랑은커냥 딱지도 때지 않은 윌본은 그게 사랑의 불인 줄 그때는 몰랐다. 샬럿은 윌본을 자기 집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또 초대하고, 밖에서 만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화염에 휩쓸려버린다. 불 같은 여성. 사랑에 관한 한 절제도, 한계도, 다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화염 그 자체. 샬럿은 남편에게 애인이 생겼으며, 그의 이름이 해리 윌본인데 이제 둘이 떠나야겠다고 통보한다. 가톨릭 신자인 남편이 이혼해주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서 혼인의 청산은 바라지 않는다며.
쥐, 랫Rat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남편 프랜시스는 해리 윌본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3백달러 수표를 건네며, 해리가 샬럿을 책임질 수 없는 때가 오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샬럿을 다시 돌려보내라고 한다. 만일 그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반드시 사기 혐의로 고소할 것임을 통보하면서. 독자가 주인공 입장에서 스토리를 바라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 프랜시스 리튼마이어야말로 내가 보기에 신사 중의 신사, 부처님 가운데 토막 중에서도 가운데 토막의 사나이. 그러나 구습에 얽매인 조금 막힌 사내라서 자유분방하고 사랑 하나에 목숨 거는 샬럿한테는 맞지 않는 불운의 사나이다.
이래서 집 나가는 샬럿과 의대 졸업하고 2년을 채워야 하는 인턴 기간을 절반 밖에 수료하지 않은 해리 윌본. 일찍이 우리나라 탤런트 변우민이 말한 바 있다. “집 나가면 개고생.” 사랑은 좋지만 이들 앞에 닥친 것은 대공황과 아무 쓸모없는 의대 졸업장. 그리하여 우물 밖의 정글 속에 이들은 세월의 사나운 발톱질을 견디다, 견디다 무너져야 할 일만 남았으리.
다음은 <노인>.
때는 1927년 5월. 미시시피주에 대홍수가 있던 시절. 두 죄수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한 명은 25세 정도. 키가 크고 마른 몸매에 그을린 얼굴. 분노로 들끓는 눈매를 가지고 있다. 이 분노는 자신이 저지를 범죄를 막은 사람들을 향한 분노라 아니라 작가들을 향한 분노이며, 싸구려 소설에 등장하는 무형의 이름의 주인공들, 다이아몬드 딕이나 제시 제임스 같은 부류를 향한 분노였다. 특히 작가들이야말로 그를 현재의 곤경에 빠뜨린 주범이라 할 만했다.
이 키 큰 죄수가 범죄를 저지른 건 18세 때. 싸구려 소설에서 하도 많이 다이아몬드 딕과 제시 제임스 같은 서부의 무법자를 많이 읽어 그들을 흉내 냈다. 그리하여 다이아몬드가 했던 그대로 복면을 하고 (발포되지도 않는 고물 또는 가짜) 권총을 들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소설에 의하면)금고가 실린 칸에 들어가 총을 뽑기도 전에 경비원들에게 두드려 맞고 현장에서 붙잡힌 강도 미수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그러니 싸구려 소설과 주인공들과, 무엇보다 형편없는 소설을 쓴 작가에게 큰 분노를 갖게 된 건 당연한 일이다.
두번째 죄수는 키가 작고 통통한 몸집에 매우 흰 피부, 그리고 알 대머리의 남자. 아무도 이이가 무슨 죄를 지었는 지 모른다. 다만 형기가 199년에 이른다는 건 확실하게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범죄이길래? 그래서 독자는 이이의 범죄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짐작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이는 1927년에 미시시피강 홍수 때 키 큰 죄수와 함께 고립된 두 사람을 구하러 조각배를 타고 나섰다가 홀로 구조되는 인물일 뿐이다. 엑스트라와 조연 사이 정도의 무게감.
하여간 두 죄수는 미시시피 강이 범람하고 제방이 무너져 큰 난리가 나, 나무 꼭대기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여성과 건물 옥상에 고립된 남성을 구해오라는 명령을 받고 떠난다. 키 작은 죄수는 심지어 노를 저을 줄도 모르지만 하여간 키 큰 죄수를 따라 나섰다. 거대한 강에서 홍수가 나면 물길이 하나로 일관되게 흐르는 게 아니어서 애초에 나룻배 수준의 작은 배를 노 저어 간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 그리하여 소용돌이에 갇히는 일이 생겼고, 이때 헤엄도 치지 못하는 키 작은 죄수가 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큰 나무 아래라서 꼭대기에 올라 겨우 구조될 수 있었다. 이이가 나무에 올라 사방을 보니 이미 조각배와 다른 죄수는 시야에서 사라져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 교도소장과 부소장에게 그렇게 보고하여 키 큰 죄수는 법적으로 익사 처리됐다.
그러나 키 큰 죄수는 하잘것없는 조각배를 기어이 노 저어 가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여성을 구해냈고, 그 여성이 만삭이 임산부였는데 하여간 그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예정일이 남았지만 무사하게 출산하게 해주었으며 몇 주 동안 배를 곯지 않게 돌보았다. 독자는 이 죄수가 하는 행동을 읽으며 저절로 <야생 종려나무>의 주인공 해리 윌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는 짓이 비슷하다. 생각하는 것도 별 차이가 없다. 그리하여 죄수가 어설픈 열차 강도 미수범이란 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 민망해 피식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이 두 작품을 책 한 권에 교차 편집한 것도 나 같은 독자를 위해 그리 했으리라.
플롯은 두 작품 다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도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이라니. 별로 길지 않은 책을 오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읽었다. 이런 “책 읽는 즐거움”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며 즐기는 일. 참 근사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